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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Nov 21. 2023

주간 새미일기

2023.11.13(월)~2023.11.18(토)

2023.11.13 (월)

책을 읽는데, 내 '목표'를 써보라는 거였다. 나는 삶에 있어 어떤 목표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글을 써서 (혹은 나의 창작물로) 돈을 벌고 싶다고 썼다. 나 스스로는 좀 의외였다. 왜 그냥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다고 썼을까. 난 일단 내뱉고 생각하는 사람이니 생각을 곰곰이 해보았는데, 내가 하는 모든 노동에는 대가가 따르지 않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가사와 육아라는 것이 그렇다. 하루종일 힘들게 일해도 돈은 벌지 못한다. 오히려 나는 주로 '소비'를 하는 입장이다. 장을 보고, 아이들 옷과 장난감을 사고, 생필품을 사고, 가구나 가전을 사고... 돈을 벌지는 않는데, 계속 쓰는 입장이다 보니 내 것을 살 때 이유 없이 멋쩍을 때가 있다. 물론, 나는 남편이 회사에 나가 돈을 벌어 올 수 있도록 내가 육아와 가사를 전담해주고 있으니 남편이 벌어오는 돈의 반은 내가 노동한 값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내가 하는 노동을 누군가를 고용해서 하게 된다면 엄청난 금액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만큼의 돈을 내가 버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사회는 가사와 육아를 노동으로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게 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나는 노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데, 가사와 육아는 결과물이랄 것이 잘 없을뿐더러 (끊임없는 반복이 있을 뿐) 급여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더욱 내 노동의 대가는 무엇인가 고민하게 된다. 육아와 가사는 매우 매우 가치 있고 중요한 그리고 필수적인 노동인데, 그 노동에 대한 가치를 전혀 인정받지 못한 다는 느낌을 나는 자주 받는다. (직장에 다니지 않는 가정주부를 집에서 논다고 표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나는 아마 돈을 벌고 싶다고 썼던 것 같다. 게다가 그 돈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벌게 되면 참 좋겠다 싶어 적긴 적었는데, 적고 나니 참 현실성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꿈같은 생각을 한 번 해봤다. 그랬다.


2023.11.14 (화)

화요일은 남편의 자유시간 날이다. 저녁식사를 정리하고 아이 둘과 식탁에 마주 앉았다. 첫째가 그림을 그리자고 해서였다. 각자 종이 한 장 씩 가지고 앉았는데, 첫째는 좀 전에 읽어주었던 책을 보고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다. 그림책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곧잘 따라 그리는 첫째를 칭찬해 주었다. 나중에는 책 표지를 그대로 따라 그리고 싶은지 커다란 네모를 그려두고는 그 안에 책 제목과 저자, 출판사이름까지 똑같이 따라 쓰는 것이었다. 그녀가 만들어 낼 작품이 기대가 되었다. 둘째는 혼자서 여러 가지 색깔 색연필로 열심히 끄적이더니, 지루해졌는지 여느 때처럼 나에게 기차를 그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첫째처럼 책을 찾아왔다. 둘째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탈것들이 나와있는 책이었다. 둘째는 신이 나서 "이거 그려줘! 이거 그려줘!" 하면서 지하철, 중장비, 경찰차를 차례대로 가리킨다. 그럼 나는 둘째가 가리키는 차들을 차례대로 따라 그렸다. 문득 첫째 어릴 때가 생각났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첫째도 어릴 때는 매번 나에게 그려달라고 해서 종이에 이것저것 엄청 그려줬었던 것이 문득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이제는 커서 혼자 저렇게 잘 그리는구나 싶어 내심 기특해하고 있는데, 첫째가 책 표지에 있는 그림을 그려달라는 것이 아닌가. 아까는 책에 나온 캐릭터를 그렇게 잘 따라 그리더니, 그 똑같은 캐릭터들이 소파에 앉은 겉표지 그림은 못 그리겠다는 첫째. 잘 못 그려도 괜찮고, 좀 다르게 그려도 괜찮으니까 혼자 한 번 그려보라는데도 싫단다. 표지 그림이 어려우면 그림책 안에 있는 그림을 그려보자는데도 절대 싫단다. 책 표지를 똑같이 그리고 싶은데 똑같이 그릴 자신이 없으니 나더러 그리라는 첫째. 그 모습이 아쉬운 건 나였다. 내가 대신 그려주는 것을 끝내 거절하자 첫째는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미워!" 하면서 소파로 달려가 얼굴을 파묻고 울기시작했다. 어릴 때는 그렇게 수많은 종이에 수도 없이 그림을 그려주었으면서, 나는 왜 첫째의 부탁을 거절했던 걸까. 아마도 아이가 그 책 표지를 완성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도 쉽게 포기하는 아이가 안타까웠던 것 같다. 그것을 포기라고 하는 것도 결국 내 생각이지만 말이다. 조금 진정되어 돌아온 아이는 '같이' 그림을 그리자 해놓고 왜 엄마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래, 그게 뭐라고 좀 그려주면 될 것을 즐겁게 그림 그리자고 모여놓고 나는 또 너를 울리고 말았구나.' '결국은 그마저도 내 욕심이지.' 싶어 표지 그림을 성심껏 그려주었다. "엄마 정말 잘 그린다~!" 하며 그제야 방긋 웃는 아이. '그림은 내가 더 똑같이 그릴지는 몰라도 사실 엄마는 서툰 네 그림이 훨씬 더 좋은데...' (아 맞다 서툴다는 것도 내 생각이지...) 지금 생각해 보니 동생에게는 군말 없이 자동차를 잔뜩 그려주면서 자기가 부탁한 그림 하나는 안 그려주겠다는 내가, 네 입장에서는 퍽 매정하다고 느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많이 서운했겠구나... 울만 했지... 그마저도 나는 너를 재워두고 일기를 쓰면서 깨닫네... 미안해...' 지금 보니, 내가 그려준 그림을 예쁘게 색칠하고는 완성된 표지그림을 가위로 오려놓은 첫째였다. 그림을 보니 괜히 짠하다... 다음부턴 너에게도 군말 없이 그려줄게....ㅎ


2023.11.15 (수)

가끔씩 가을이의 따뜻한 마음씨에 문득 놀랄 때가 있다. 오늘은 동생과 두 조카가 우리 집에 놀러 왔었다. 첫째 조카는 가을이보다 한 살 많은 남자아이인데, 요즘 축구교실을 다니고 있다. 지난번 축구교실 수업에서 조카가 세 골이나 넣었다고 해서 모두가 한 마디씩 축하를 해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도 더 지난 일이라 잊고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가을이가 오빠에게 편지를 써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그때 세 골 넣은 오빠에게 자기가 제대로 축하인사를 못했어서 편지로 축하인사를 전해주고 싶다는 것. "가온이 오빠 세 골 넣은 거 축하해"를 어떻게 쓰냐고 묻길래 공책에 써주었더니, 자기 책상에 앉아 색종이에 그 문장을 똑같이 따라 쓰고는 하트까지 5개를 덧붙여 쓴 가을이였다. 비록 가온이 오빠는 '세 골'을 '서 골'로 썼다며 틀린 글자를 지적하기에 바빴지만, 지난 일을 꼭 축하해 주고 싶었던 가을이의 마음만은 나를 감동시켰다. 다른 이가 잘한 일을, 마음 다해 축하해 주는 일. 어른인 나도 실은 잘 못하는 일 중에 하나가 아닌지. 오늘도 난 5살 딸아이에게 따뜻한 마음과 멋진 태도를 배운다. 


2023.11.16 (목)

나는 예쁜 얼굴이 아니다. 그냥 평범하게 생겼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내 얼굴에 단점이 많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행히도 자기애가 매우 높은 편이라 단점이 많은 내 얼굴도 애정하는 편이었지만, 나를 꾸미는 방식으로 원래의 내 모습을 많이 가리려고 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모자를 쓴다거나, (도수가 없는) 안경을 쓰는 것을 즐겼었다. 화장도 진하게 했다. 아이라인도 언더라인까지 해서 두껍게 그리고 더 꾸미고 싶은 날에는 속눈썹도 잘 붙이고 다녔다. 이러한 방법들로 나는 내 얼굴의 단점들을 가려보려고 했던 것 같다. 주로 작은 눈을 가리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나만의 습관(?)이 있었는데, 나는 사진 찍을 때 치아가 보이게 잘 웃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눈을 조금이라도 크게 뜨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치아가 보이게 입을 크게 벌리고 웃으면 자연스럽게 눈이 감기는데, (나는 웃으면 완전 하회탈이다.) 그럼 눈이 작아 보이기도 하고 치아가 보이게 웃는 내 얼굴이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다 보니 화장을 할 시간이 없어졌다. 나를 꾸미는데 쓸 에너지가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화장도 간단하게만 하게 되고, 머리도 맨날 하나로 질끈 묶고, 모자와 안경은 거추장스러워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다 보니 내 맨얼굴을 드러내게 되는 날이 많아지면서 나 스스로도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던 것 같다. 아이라인을 그리지 않은 내 작은 눈 그대로에 익숙해지고, 꾸미지 않은 나의 맨얼굴에 익숙해지면서 이 모습도 점점 더 애정하게 되었달까. 그러다 얼마 전 지인들과 찍은 사진 속의 내 모습을 보면서 문득 깨달았다. '아, 내가 이제 치아를 보이게 활짝 웃으면서 사진을 찍을 때가 많아졌구나.'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는데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나는 나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눈썹을 그리지 않고는 외출을 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계속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더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자유해지니까. 


2023.11.17(금)

날씨가 오락가락하는 날이었다. 아침에는 햇살이 쨍하게 비추더니, 오전 운동을 마치고 나오니 하늘이 어두컴컴 해지고 바람에 손이 시렸다. 그러다 눈이 내렸다. 첫눈은 반가웠지만, 어둡게 내려앉은 구름에 하늘이 가려 왠지 움츠러들었다. 이 눈이 비가 되면 안 되는데, (그럼 하원할 때 힘든데) 생각하며 집에 들어가서는 겨울이 성큼 다가온 것을 실감하며 이불속에 폭 파묻혀 있었다. 한참을 이불속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 지도 못하며 핸드폰만 들여다보다가 세탁기가 다 돌아갔다는 알람에 뒷베란다로 향했다. 세탁물을 건조기에 옮겨 넣는데 왠지 하늘이 밝아진 것 같아 창 밖을 내다보는데 웬걸, 아까와는 다른 날인 양 하늘이 개었다. 파란 하늘에 하얀색 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데다 쨍하게 비추는 햇살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 풍경이 너무 예뻐서 제대로 보고 싶은 마음에 방충망까지 열고 멍하게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했다. 다음 주 남편 출장에, 이사에 괜히 심란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 침대에만 누워있었는데, 그래도 세탁기 덕에 이렇게 잠깐 나와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어서 기분 전환도 되고 얼마나 좋은지. 잠깐이라도 일상 속에서 이런 소소한 행복들을 잘 발견하는 내가 되기를, 그리고 그 행복들을 잘 누리는 내가 되기를 바랐다. 오늘의 행복은 이 하늘이었다. 


2023.11.18 (토)

남편이 후식을 먹기 위해 방울토마토를 씻고 있었다. 다 씻은 방울토마토의 꼭지를 떼고 있었는데, 떼어낸 꼭지를 보더니 갑자기 가을이가 자기가 가져도 되냐고 묻는 것이다. '잉? 방울토마토 꼭지를 뭐에다 쓰려고 그러지?' 의아했지만 안 줄 이유는 없었다. 남편이 가져가도 된다고 했더니, 방울토마토 꼭지 여러 개를 챙긴 가을이는 신나서 방에 들어갔다. 사실 거기까지도 나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음식물쓰레기로 버릴 방울토마토 꼭지를 가져가는 것이 좀 엉뚱하다 생각은 들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아이는 그 방울토마토꼭지를 가지고 자기 방 책상에 앉아 한참을 노는 것이었다. 나에게 이것저것 요구하지 않고 혼자 잘 놀아주면 땡큐다. 그렇게 한참을 방안에 있더니 상기된 표정으로 나와서는 플라스틱 그릇이나 통을 줄 수 있냐고 묻는 아이. 마침 배달음식에서 소스가 담겨왔던 투명한 플라스틱통이 분리수거함에 있어 (물론 깨끗이 씻겨있었다.) 그것을 찾아 꺼내주었다. (뚜껑도 함께) 아이는 자기가 찾던 것이 딱 이거라는 듯, 통을 받아 들고 기쁘게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아이는 그 통 안에 무언가를 담아가지고 나왔다. 바로 방울토마토였다! 종이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리고 오려내, 그 위에 테이프로 진짜 방울토마토 꼭지를 붙인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작품에 웃음과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남편의 반응도 나와 같았다. 우리 둘의 반응에 아이는 더 신이 났다. 뿌듯해하는 마음이 입가의 미소를 타고 번져 나왔다. 아이의 작품을 바라보는데 왠지 뒤통수를 딱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른들이 버릴 것들을 가져가 아이는 자기만의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이의 창작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감탄하면서 얼마 전 남편과 갔던 전시회 생각이 났다. 우리가 늘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들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작품들을 보면서 계속 뒤통수를 맞았었다. 덕분에 나의 편견을 깨보고 새로운 시각을 가져보게 되어 너무 좋았던 전시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이의 가짜(혹은 진짜) 방울토마토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멋진 갤러리에 전시된 작가의 작품만큼이나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네가, 나에게는 누구보다 멋진 예술가고 아티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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