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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Nov 27. 2023

주간 새미일기

2023.11.20(월)~2023.11.26(일)

2023.11.20 (월)

남편이 독일로 출장을 갔다. 독일과는 8시간의 시차가 난다. 그래서 생각보다 연락을 자주 주고받기 어렵다. 나는 그래도 낮시간에 카카오톡도 주고받고 잠깐 통화도 하는데, 아이들은 그 시간에 유치원이랑 어린이집에 가있어 연락이 어렵다. 아이들이 깬 아침 시간에 남편은 자고 있고, 남편이 교육이 끝났을 시간에는 애들이 자고 있는 식이라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도 하지 못한다. '뭐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뭐. 일주일 뒤면 돌아오는데 뭐.'라고 생각한 나와 달리. 남편은 아이들과의 소통을 위해서 영상을 찍어 보내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영상으로 아이들에게 인사하고, 자기가 묵는 숙소를 소개하고, 산책하는 길을 보여주면서 독일의 풍경까지 담아 보내주는 남편이었다. 그런 남편을 보고 있자니 참 다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또 한 번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아이들이 그렇게 해달라고 요구한 것도 아니고 본인도 그곳에 놀러 간 게 아닌데도, 일방적인 방향으로라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애쓰는 사람. 그래 맞다. 당신이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었다. 내 예상과 달리 아이들은 그 영상들을 무척 좋아했다. 아빠의 질문에는 대답도 곁들이면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영상을 보던 아이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영상을 찍어 보내주는 남편에게 고마웠다. 먼 곳에 있는 아빠지만 아이들도 그 마음의 따뜻함을 몇 번이고 느꼈을 것이다.


2023.11.21 (화)

동생과 이케아를 갔다. 이것저것 물건을 골라 나오면서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는데, 내 물건들 담는 것을 도와주던 동생이 말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언니도 참 애들것만 샀다.ㅋㅋㅋㅋ" 본인도 애들것만 잔뜩 샀으면서 남 말한다 싶어 웃었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진짜 애들것만 샀더라. 4900원짜리 귀여운 산타인형을 사긴 했지만, 그것도 집안 인테리어용이니 온전한 내 것이라고 하긴 어려웠다. 결혼을 하고 육아와 가사를 도맡아 하다 보니 대부분의 물건들은 내가 사는 형태가 되었다. 아이들것도 남 편 것도 생필품도 다 내가 산다. 그런데 아이들 것이나 남 편 것, 집안에서 함께 쓰는 용도의 물건들은 흔쾌히 잘 사는 편인데, 이상하게 내 것을 살 때는 많이 망설이게 되는 나를 종종 발견한다. 근데 그러지 말아야지 싶다. 다음번 이케아를 갔을 땐 꼭 내 것도 하나 사야지 싶다. 딸내미 책상 스탠드를 산 것처럼 내 책상 스탠드도 사야지 한다.


2023.11.22 (수)

오늘 친한 언니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언니의 옷장에 대한 고민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어, 또 다른 언니의 고민이 이어졌고 희한하게도 우리는 결론적으로 '글을 쓰자!'라고 하면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근데 글을 쓴다는 것은 참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생각보다 시간도 무지 많이 든다. 아이들 육아하고 가사까지 하고 나면 꼼짝없이 누워서 아무 생각 없이 넷플릭스나 보고 싶은데, 그 피로함을 이겨내고 앉아서 이렇게 글을 쓰기란 여간한 마음가짐 없이는 힘든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글을 쓰자고 했을까. 그 글을 쓰는 작업을 통해 내 마음을 돌아보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자는 취지였다. 사실 나도 이렇게 열심히 일기를 쓰고 있지만 종종 '현타'가 올 때가 있다. 이렇게 내가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들여 일기를 쓰는데, 사실 읽는 사람도 별로 없고 이걸 쓴다고 내가 돈을 버는 일도 아닌지라 이렇게까지 애써서 계속해서 일기를 써야 하나 가끔 의문이 들 때가 있긴 하다. Input 대비 Output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래도 '그래도!' 글을 쓰는 것이 분명히 나에게 도움이 될 것임을, 내가 들이는 이 노력들이 언젠가는 빛을 바라게 되는 날들이 있을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받았다. 방구석에서 혼자 낑낑대며 쓰다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니 힘이 됐다. 남편의 출장으로 독박육아하느라 힘드니까 이번 주 일기는 쉴까 했지만, 그래도 써야지 싶다. 분명 나는 이 글들로 더 단단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2023.11.24 (금)

아 오늘은 정말 피곤한 날이다.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잤기 때문이다. 둘째가 자꾸 깬 데다가, 첫째까지 안방으로 넘어와서 셋이 한침대에서 낑낑거리다 다시 아이들 침대로 옮겨가서 잤다가 새벽 내내 난리도 아니었다. 안방문을 잠그고 자던지 해야지 원. 한동안 통잠 잔다고 좋아했는데, 자다가 왜 깨서 이 난리들인지... 갑자기 출장 간 남편이 부러워졌다. 영어로 교육받는 게 쉽지 않고 긴 비행에 시차까지 고생한다고 해도 적어도 그는 '혼자 잔다'. 출장 가기 전날 남편이 교회 카톡창에 독일로 출장 간다고 하니, 다들 부럽다는 반응이었다. 놀러 가는 거 아니라며 영어로 교육받는 것도 쉽지 않다는 남편의 말에, 그래도 애 볼래 출장 갈래 하면 출장을 택하지 않겠냐고 내가 응수를 했다. 직장을 다니는 교회 동생도(이 친구도 애엄마다.) 자기 같아도 육아보단 출장을 택할 거라며 맞장구를 쳤다. 출장 가서 고생 안 하는 거 아니겠지만, 그래도 육아가 그보다 더 힘든 일인 게 다. 나도 너처럼 한참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서 아이들을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해보고 싶다. 하... 오늘은 독일에 있는 네가 정말 부럽다.


2023.11.25 (토)

금요일에 잠 못 잤다고, 육아 힘들다며 투정 부려서 그런가. 벌을 받았다. 둘째가 아프다. 아... 어느 정도 콧물 흘리고 기침하는 거로는 소아과 안 가는데, 열이 난다. 금요일 새벽에 39도는 넘기는 걸 보고 소아과행을 결정했다. 오늘 아침 소아과 오픈런을 했다. 열감기인 듯했다. 낮에는 고열까진 없었는데, 저녁부터 고열이 시작됐다. 해열제를 먹어도 열이 잘 내리지 않았다. 컨디션이 안 좋은 아이는 내내 안고 있으라고만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저녁에 친정엄마가 와주셔서 그나마 간단한 저녁이라도 먹을 수 있었다. 엄마와 번갈아가며 애를 안고 있었다. 아이는 깊이 자지 못했고, 새벽 내내 열이 났다. 그래도 고열이 계속되는 것에 비해서 처지거나 토를 하거나 경기를 하거나 그러진 않아 다행이었지만, 해열제를 먹여도 열이 떨어지지 않으니 좀 무서웠다. 물수건으로 좀 닦아주려 해도 오열을 하면서 난리난리를 치니 도저히 해줄 수가 없었는데, 새벽 4시에도 고열에 아이가 깨니 이번엔 진짜 물수건으로 좀 닦아주어야겠다 싶었다. 해열제가 들지 않으면 물수건으로 닦아주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그래서 아이에게 기차 실물 동영상을 유튜브로 틀어주고는 어르고 달래 가며 물수건으로 얼굴과 다리를 닦아주었다. 그랬더니 열이 좀 떨어졌다. 그렇게 새벽 5시가 되었고 아이는 다시 잠들었다. 다시 한번 독일에 있는 남편이 부러웠다. 다행히 첫째는 동생이 봐줘서 동생네 가있었고, 밤새 친정엄마가 같이 있어주셔서 내가 잠깐씩 잘 수 있었지만, 이 폭풍 같은 날을 겪지 않는 남편이 부러웠다. 더 군다가 남편은 교육이 끝나고 토요일 하루는 뮌헨 시내를 관광할 수 있는 날이어서 더 그랬다. 멋진 성당을 구경하고, 오래된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맛난 음식을 먹는 사진을 보내오는 남편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여기서 13킬로짜리 애를 계속 안아주느라 손목이 아프고, 애 열이 1도 오르고 1도 떨어지는 것에 일희일비하면서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남편은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있다는 사실이 힘든 나를 더 서글프게 했다. 

아프니까 계속 안고 있으라는 둘째


2023.11.26 (일)

오늘 아침까지도 계속 열이 나면 일요일에 진료를 하는 소아과를 찾아가려고 했는데, 물수건으로 닦아준 효과였는지 땀을 흠뻑 흘리고 잔 아이는 아침에 거짓말처럼 열이 뚝 떨어졌다. 그렇다고 컨디션이 완전히 돌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열이 떨어졌다는 사실 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ㅠ 오늘은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이다. 아이가 아프면 알아서 버스 타고 오라고 하려 그랬는데, 그래도 고열은 면했으니 아이들을 데리고 공항에 데리러 갔다 왔다.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아이들은 잠이 들었고, 남편은 독일 관광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애들 보며 고된 날들을 보내는 동안, 여러 가지 새로운 경험들을 한 남편이 또 부러웠다. 역시 애 보는 것보단 출장이 낫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그래도 양육자 한 명이 돌아왔으니 한결 낫겠지 했는데 웬걸, 아직 좀 열이 나는 둘째는 여전히 안으라 칭얼 대는데 절대 아빠는 안되다는 거였다. 무조건 엄마 보고 안으라 그러고 TV를 틀어줘도 꼭 나한테 안겨서나 내 옆에 기대서 보겠다고 난리다. 양육자가 둘인데, 하나는 싫다 하니 하나가 와도 의미가 없는 상황. 갑자기 화가 났다. '애들 둘 다 우리 둘이 같이 키우는 건데, 우리 둘이 같이 부모인 건데, 왜 나만 이 고생을 해야 하는 거야!!!' 짜증이 확 솟구쳤다. "이제 출장 가지 마!!!" 아픈 애를 안고 남편에게 버럭 화를 냈다. "내년에는 내가 독일 갈 거야!! 내가 일주일 독일 갈 거야!!!!!" (남편은 일 년에 1번씩 독일 본사에 가서 교육을 받는다.) 씩씩...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점심에는 애가 먹고 싶다는 메뉴 먹고! 저녁에는 너가(남편이) 먹고 싶다는 메뉴 먹고! TV도 애들 보고 싶은 것만 내내 보다가! 이제는 너가 보고 싶은 거 보고!! 나는 왜 이러고 살아야 돼!! 내가 하고 싶은 건 언제 해!!!" 남편은 '나 혼자 산다'에 기안84가 풀코스 마라톤을 뛰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출장 가기 전에 미처 다 보지 못한 마라톤 뛰는 편을 마저 보고 있었다. "대단하다... 진짜 대단하다... 나도 2년 뒤에 풀코스 도전해 봐야지..." 하는 남편에 말에 나는 와르르르 화를 쏟아 냈다. "풀코스 마라톤 안돼!!! (그거 연습하고 준비하고 나가 뛸 동안 또 애들은 내가 봐야 되잖아!!!) 저까 짓게 뭘 대단하다고 난리야!! 대단하다고 치면 내가 더 대단하지!!!! 애 둘 낳고 키우는 내가 더 대단하지!!! 내가 얼마나 고생하고 힘든지 봐봐!!!! 풀코스 마라톤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뛰느라 발목 아프고 저런 게 뭐!! 나는 애 낳는라 뼈가 다 늘어났어!!! 애 낳는 게 얼마나 아픈지 알아!! 난 그걸 두 번이나 했다고!! 그러고도 애 키우는 건 또 얼마나 힘들어! 너가 기안84 보면서 감동받을 때가 아니라고!!!! 너 없는 동안 고생한 나를 생각해 봐!!!!" 아... 지금 글로 다시 쓰는데도 화가 난다. 기안84의 성취를 깎아내릴 생각은 없었다. 물론, 그 도전과 성취에 나는 박수를 쳐주고 싶다. 다만, 아이가 아프면서 내 시간을 못 가진 것이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 나도 도전하고, 성취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걸 좋아하는데, 육아를 하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그런 것들을 하지 못한다는 게 아쉬워서 그랬다. 더군다나 남편은 바깥세상을 보고 왔는데, 나는 집안에만 틀어박혀 이렇게 또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게 서글퍼서 그랬다. 나는 '남편이 출장 간 동안 일주일 잘 버티기!' 이런 성취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게다가 아이가 아프면서 그것조차 성취를 못했다는 건 더더욱 슬프다.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는 기분이다. 나도 독일에 그 멋진 성바울 어쩌고 하는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성찬도 하고 싶다... 기도도 하고 싶다...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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