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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개미 Oct 26. 2022

우리가 마음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용기

공황장애, 극복 할 수 있을까?

어릴 때 밤마다 자주 이불에 오줌을 쌌다. 처음 한두 번은 괜찮다며 나를 다독이시던 어머니는, 어느 날 내가 오줌을 누자 옆집에 가서 소금을 얻어오게 하셨다. 그래도 또 오줌을 누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윗집에, 다음에는 그 윗집에, 어머니는 계속해서 내게 소금 심부름을 시키셨다.

처음엔 신이 나서 소금을 얻으러 다녔던 나는 곧 그것이 놀림거리가 되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바가지를 들고 초인종을 누르면 그 집 어른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나를 보며 웃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 웃음 앞에선 왠지 부끄럽고 창피한 느낌이 들었고, 그 후로 쉽게 초인종을 누르지 못했다. 매번 바가지를 들고는 대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곤 했다.



나약하고 한가한 사람이라는 ‘편견’


처음 정신건강의학과의 문 앞에서 머뭇대던 순간을 기억한다. 벌써 3년이나 지난 일인데 말이다. 회사원이면서 작가인 나는 그 당시 반복되는 공황발작으로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하루아침에 모든 일상이 무너지고,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일조차 두려운 일이 되었다. 고민 끝에 찾아간 병원 문 앞에선 한참을 들어가지 못하고 서 있기만 했다. 왠지 이곳에 들어가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하게 느껴져 열지 못한 것이었다. 마치 소금 바가지를 들고 남의 집 대문 앞을 서성이던 그때처럼 말이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겨우 들어선 병원에서 주변을 둘러본 나는 조금 당황했다. 그동안 막연하게 상상했던 어둡고 차가운 분위기가 아닌 평범한 대기실의 풍경과 그곳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젊은 또래 직장인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예상과 다르게 평범한 분위기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심도 되었다. 각자가 어떤 이유로 이곳을 찾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다는 사실에 위로받았던 것이다.

나는 그날 병원 문을 여는 것이 왜 그리 힘들었을까?

대체 아픈 마음을 치료하는 데 왜 그토록 용기가 필요했던 걸까?


공황장애는 불안장애의 일종으로 갑작스러운 공황발작이 특징인 정신과 질환이다. 공황발작은 예측할 수 없는 공포가 갑자기 밀려오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공황발작을 경험하게 되면 전혀 위험하거나 두려워할 만한 상황이 아닌 데도 죽을 것 같은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 공황을 유발하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과도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공황장애입니다.”

의사로부터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엉엉 울었다. 슬픔의 눈물이 아닌 억울함의 눈물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신했던 내가 이런 몹쓸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간 생각해왔던 공황장애는 나 같은 성실한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병이었다. 간혹 가다 TV에서 연예인들이 불쑥 공황장애를 고백하고는 잠시 쉬다 오면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속으로 내심 꾀병처럼 생각했던 터였다. 누군가 정신과에 다니는 사람은 나약하고 한가하다는 말에 무언의 동조를 했던 적도 있었다. 결국 그날 내가 흘린 눈물의 이면에는 공황장애에 관한 어떤 편견이 존재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


엉엉 우는 내게 의사는 휴지를 건네며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 병은 사실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마음의 병이라고. 마음이 힘들어서 생긴 것이니 마음을 편하게 가지면 좋아질 거라고 말이다. 그 말은 마치 ‘너 잘못 알고 있어. 공황장애는 부끄러운 병이 아니야’라는 어떤 위로의 말처럼 들렸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한참 동안이나 병원 문을 열지 못한 이유는 내가 가진 마음속 편견 때문이었고, 그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나는 다시 전처럼 편안했던 일상을 되찾기 위해 공황장애를 극복해 보기로 다짐했다.


극복 외에 결심한 것이 또 하나 있다. 나는 정신과적 질환이 가지는 사회적 시선과 편견 때문에 정작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치료를 망설이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은 마음에, 치료의 여정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처음 공황발작을 만나 두려웠던 마음, 지하철을 타는 게 힘들어 일상을 포기하려던 순간과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을 넘어 공황을 마주하고 극복하기까지. 그 모든 순간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글과 그림으로 담아내 브런치와 SNS에 연재했다. 그림 에세이『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는 그렇게 탄생한 책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신과 진료실에서


책을 출간하고 종종 독자들의 연락을 받는다. 대부분 나와 비슷한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들이다. 한 번은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학생의 메일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동안 가족들에게도 숨기며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고 했다. 책을 읽고 용기를 내게 되었다며 고마움을 전한 그는 곧 내게 새로운 고민을 털어놓았다. 자신도 밖으로 나가 이 병을 치료하고 싶은데, 병원에 가야 할지 상담센터에 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조언을 구한다는 이야기였다. 실은 이와 비슷한 연락을 받을 때마다 나는 정답을 콕 집어 제시하기보다는 본인이 더 내키는 쪽을 선택할 것을 권하곤 한다. 중요한 것은 어디를 가느냐가 아니라, 드디어 절망의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해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사실이니까.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잘 알지 못하는 이에게 내면의 아픔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도대체 어디까지 드러내야 할지 몰라 가끔은 두렵고 혼란스러운 마음이 든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줄곧 내가 가진 취약한 부분은 감추어야 한다 배워왔고, 그래야 잘 사는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러니 마음의 병을 드러내는 일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상처를 무조건 꼭꼭 숨겨선 안 된다는 거다. 아픈 부위를 열어 소독하고 적절히 치료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짜로 잘 살 수 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상처 입은 마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이 있다. 도무지 빛이 들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혀 어느 방향으로도 발을 뗄 수 없어 막막할 때, 그들은 기꺼이 우리와 함께해 준다. 때론 두서없이 쏟아내는 내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 주고, 절망에서 빠져나올 가장 현실적인 방법들을 알려주는 사람들. 나는 그들의 숭고한 일을 ‘상담’이라 부른다. 다행히도 그들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병원에서, 상담센터에서, 때론 전화기 너머로도 만날 수 있다.


나의 경우 정신과 진료실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그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 다정한 응원에 힘입어 공황장애라는 절망의 터널을 천천히, 그리고 무사히 빠져나왔다. 마음의 아픔을 모두 회복한 지금은 신기하게도 전보다 더 행복하고 편안한 일상을 즐겁게 살아간다. 공황장애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고, 어떤 부분에 취약하며 그럴 땐 어떻게 마음을 돌보며 살아야 하는지를 배운 덕분이다.

나는 이 귀한 경험을 마음의 병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리고 알려주고 싶다. 우리는 충분히 이것을 극복하고 전보다 더 잘 살 수 있다고. 그러니 더는 혼자서 두려움에 떨며 울지 말라고.


여전히 정신과적 질환에 관한 곱지 않은 시선과 편견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내야 한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용기는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니다. 더는 병원 문 앞을 서성이다가 스스로 못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발길을 돌리지 말고, 그저 손을 뻗어 문을 여는 작은 용기. 들어가 주저앉아 눈물을 쏟더라도 우선은 그렇게 한발 앞으로 내딛는 것에 있다. 아픈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가져야 할 용기는 바로 이것이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순간도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모든 이에게 책의 한 구절을 전하고 싶다.


정신과에 가는 게 꺼려져 제대로 된 치료조차 시작하지 못한 분들에게 병원 문을 열 수 있는 용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자신의 병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해지기를 바랍니다. 방광염이나 지루성 피부염처럼 몸과 마음이 힘들 때 찾아오는 증상이라고 생각해보세요. 마음이 한결 나아질 겁니다.







글/그림: 김세경

광화문으로 출근하는 평범한 회사원이자 작가. 한바탕 공황장애를 앓고 난 후 자주 마음을 돌보려 노력합니다. 완벽하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대신, 부족한 나 자신을 꼭 안아주며 천천히 나아갑니다. 공황을 극복한 지금은 불안과 스트레스에 흔들리는 마음을 단단히 지키며 전보다 행복하고 건강한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 sammykhim@daum.net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도서정보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1504777

※ 매거진 <기획회의> 569호에 개제 된 글/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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