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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개미 Apr 11. 2022

엄마는 나를 대충 키우는 것 같아

엄마의 인생을 가져도 될까요?

“엄마는 나를 대충 키우는 것 같아.”


하루는 다섯 살 난 딸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들고 쳐다보니 뾰루퉁한 표정의 딸이 팔짱까지 끼고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만 들어보니 자신이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엄마인 내가 계속 듣는 둥 마는 둥 했다는 것이다.


회사원이면서 작가로 살고 있는 나는 최근 두 번째 에세이를 출간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그날도 머릿속으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느라 딸의 수다에 귀 기울이고 적절한 리액션을 할 여유가 없었다. 요 며칠 그런 엄마에게 서운함을 느꼈을 딸이 날린 경고의 메시지였다. 속으로 뜨끔해진 나는 이러한 상황에 관해 변명하듯 늘어놓다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엄마인 내가 나의 일에 주의를 기울인 것이 대단한 잘못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딸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좀 억울하다. 내가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이렇게 미안해야 하는 일일까? 그렇다고 아이에게 소홀했던 것도 아니다. 그날도 이른 아침부터 잠든 딸을 안고 집을 나와 어린이집에 맡긴 후 출근을 했고, 퇴근 후엔 부랴부랴 아이를 데리고 미리 주문해 놓은 저녁을 함께 먹은 후, 잠자리에 들기 전 목욕을 시키던 중이었다. 낮에 출판사에서 요청한 자료들은 아이를 재운 후에나 할 참이었다. 이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엄마는 나를 대충 키운다’는 말은 좀 너무한 것 아닌가?




엄마가 되고 난 후 유독 ‘엄마는’, ‘엄마가’로 시작하는 말을 들으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욱하고 무언가 치미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시작하는 말들은 대체로 엄마인 내게 어떤 역할을 강요하는 것처럼 들린다. 한 번은 저녁 메뉴로 짜장면이 먹고 싶다는 아이에게 다른 메뉴를 제안했다가 ‘엄마가 자기 먹고 싶은 것만 고른다’는 남편의 말에 버럭 했던 적도 있다. 엄마는 먹고 싶은 음식도 맘껏 고를 수 없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뿐만 아니라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자주 미안해진다. 말로는 회사 다니는 건 정말 힘들다며 마지못해 다니는 것처럼 푸념을 늘어놓지만, 막상 일 없이 살 생각을 하면 자신이 없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욕심도 많은 나는, 육아보다 일을 할 때 더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이런 내게 훌륭한 엄마의 태도를 ‘희생과 헌신’이라 말하는 과거의 모성애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엄마도 엄마의 인생이 있는 거야.”


어린 시절 내가 반찬 투정을 할 때마다 우리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긴 세월을 일을 하며 살아온 엄마에게 나는 자주 심술을 부렸다. 친구들의 엄마들처럼 끼니마다 새로운 반찬을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비를 걸었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 대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당시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엄마의 반찬이 부실했던 것은 내게 소홀했던 것도 아니고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그저 엄마는 최선을 다해 엄마의 삶을 지키고자 하셨다는 걸 이제는 안다. 반찬의 가짓수로 엄마의 역할을 규정하고 평가했던 나의 어리석음에 뒤늦게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더 이상 딸에게 미안한 마음은 갖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이렇게 말해 주었다.  

“엄마가 요즘 바빠서 서운했지? 엄마는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그래서 열심히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느라 조금 바빴어. 그리고 네가 이해해 준 덕분에 엄마가 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어. 우리 내일은 함께 서점에 가볼까?”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이내 방긋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우와 엄마 정말 멋지다! 나도 커서 엄마처럼 회사도 다니고 작가도 되고 싶어!”

그다음 날은 퇴근 후 아이의 손을 잡고 서점에 갔다.




요즘 들어 자주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누구보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지만 내 인생의 후반부도 알차게 꾸려가고 싶은 나에게, 엄마도 엄마의 인생이 있다는 말은 마치 격언처럼 여겨진다. 엄마인 나도, 그냥 나도, 모두 다 같은 나다. 그러니 내가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미안해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일하는 엄마라 미안하다는 말 대신, 최선을 다하는 나의 모습과 성취의 기쁨을 아이와 함께 나누려 한다. 마찬가지로 내 딸도 누군가를 위하는 삶을 살기보다는 스스로를 아끼고 위하는 삶을 살길 바란다. 딸이 또 다른 희생을 위해 자란다고 생각하면 슬플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오늘도 열심히 스스로의 삶을 사느라 미안한 마음에 자책하고 있을 엄마들에게도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엄마도 엄마의 인생이 있는 거라고, 엄마의 인생을 가져도 된다고 말이다.  

노루홀딩스의 투자로 설립된 두꺼비선생의 인테리어 디자인 시공중개플랫폼 <DOOSIL>에 ‘엄마의 삶’을 주제로 기고한 글과 그림입니다. https://doosil.com



/그림: 김세경(꽃개미)

오늘도 아이와 함께 출근하는 워킹맘이자 작가.

엄마가 되었지만 나도 소중하다 외치며 지금도 종종 '엄마인 나'와 '그냥 나' 사이 어딘가에서 방황합니다.

<엄마가 되었지만, 저도 소중합니다>,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의 저자


메일: sammykhim@daum.net

인스타: @sammyk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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