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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개미 Nov 24. 2021

다시, 바다에 갑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아픈 분들께 바다를 권합니다

오랫동안 바다를 멀리하며 살았다.

물 공포증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지만, 실은 바다를 생각하면 가슴 한 편이 시리기 때문이다. 막 사춘기의 문턱을 지날 무렵 우리 가족은 전남 완도의 소안도라는 섬으로 여름휴가를 갔다. 이른 아침부터 작은 차에 다섯 식구의 몸을 욱여넣고 바다로 향하는 마음이 무척이나 설렜다. 난생처음 커다란 배를 타고 바다를 달리는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상쾌했다.

그렇게 도착한 섬마을은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그곳에서 우리는 매일 아침 바다로 달려 나가 종일 몸을 적셨고, 놀다 지치면 쉬었다. 저녁이면 생선 요리를 배불리 먹고 밤하늘의 별을 세다 잠이 들었다. 유난히도 행복했던 여름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엔 바다를 배경으로 처음 가족사진도 찍었다.


불행히도 그것은 우리의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 이듬해 부모님은 갑작스레 이혼하셨고, 그 후엔 먹고살기 바빠 휴가는 꿈도 꿀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따금 남몰래 그때 사진을 꺼내 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자주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사진 속 환하게 웃는 부모님과 그 옆에 옹기종기 서 있는 나와 동생들의 모습은 행복했던 시간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그렇게 추억에 젖어 있다가도 문득 정신을 차리면 슬픈 마음이 들었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흔적은 사춘기 소녀에게 꽤 아픈 것이었다. 바위에 부딪쳐 흩어지는 파도처럼 산산조각 나버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나는 괜한 추억을 남겼다며 바다에 원망을 돌리곤 했다. 바다가 미웠다.


다시 찾은 나의 바다

몇 년 전 지독한 마음의 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회사에서 상사의 모진 말에 충격을 받아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것이다. 처음 경험하는 마음의 병은 두려웠고, 혹시라도 낫지 못할까 봐 자주 불안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희망과 절망을 오갔다.

일상의 모든 것이 무너져 혼란스러울 때 남편의 손에 이끌려 향한 곳이 바로 바다였다. 망연자실한 나와 달리 눈앞의 바다는 평온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바람 한 점 파도 한 점 없었다. 마치 내게 "다 괜찮을 거야. 이렇게 평온해질 거야."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런 바다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바다가 건넨 위로에 마음이 움직인 걸까? 아니면 시간의 흐름이 내 날카로운 생각과 감정을 무던하게 다듬어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바다는 내게 잘못한 것이 없다. 그저 이별을 앞둔 한 평범한 가족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주었을 뿐이다. 그 너그러움 덕분에 내가 평생 기억할 추억이 남았다. 바다가 지켜준 것이다.

이처럼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고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곳. 견딜 수 없이 슬프거나 아픈 이에게 말없이 위로를 건네는 곳. 바다는 그런 곳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사실 내 속마음은 바다에서 쌓은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더는 바다가 밉거나 원망스럽지 않았다.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바다로 떠나고 싶다.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코로나19로 불안한 마음도, 일상에서 상처 받고 지친 마음도 그곳에 가면 위로받게 될 것 같다. 어떠한 방해나 규칙 없이 멈추고 싶을 땐 언제든 쉬어가면서,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유와 평온을 되찾고 싶다.


성공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경쟁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요즘, 주변에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자주 본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고 힘든 상황을 견뎌야 하는 마음은 쉽게 상처 나기 마련이다. 나는 이런 이들에게 바다를 권한다. 부디 불안한 시절도 아픈 마음도 그곳에서 위로받길 바란다.

이미지 출처: Pixabay



글. 김세경(꽃개미)

광화문으로 출근하는 회사원이자 작가.

한바탕 마음의 병을 앓고 난 후 자주 마음을 돌보려 노력합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는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 <엄마가 되었지만, 저도 소중합니다>가 있습니다.


※ 매거진 <빅이슈> 256 특별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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