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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개미 3시간전

궂은 날씨를 이겨내는 수박의 마음

대충 살았던 하루

   

    

     

      

       

       


지독한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쏟아고, 비가 내리지 않아도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가 불쾌한 마음을 부추깁니다. 이런 날씨를 핑계 삼아 무기력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모든 게 날씨 탓입니다. 그날 힘겹게 틔워낸 생명과 마주했습니다. 바로 '수박'입니다. 


이 수박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초등학교 1학년 딸 준비한 선물입니다. 하루는 하교 후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제게  이 있다 불쑥 내민 손에수박씨 2개가 색종이에 고이 쌓여 있었습니다. 식물을 좋아하는 제게 잘 키워보라는 선물이었어요. 순간 저는 상상했습니다. 돌봄 교실에서 간식으로 나온 수박을 맛있게 먹고, 씨앗을 퉤 퉤 뱉어 정성스레 씻었을 모습을 말입니다. 행복했습니다.


그 후 샤는 자주 수박의 근황을 물었습니다. 왜 여태 수박을 심지 않는 것인지, 혹시 자신의 선물이 맘에 들지 않냐면서 저를 다그쳤습니다. 그때까지도 수박을 키울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요, 아이의 실망스러운 표정을 보고 나서야 부랴부랴 씨앗을 심습니다.

열흘이 지나 한 개의 새싹이 돋았고, 다른 하나는 한참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습니다. 실패한 듯 보였습니다.  두 번째 수박이 세상에 나온 것입니다. 그것도 이 궂은 날씨에 보란 듯이 말죠.


언제부턴가 환경을 탓하는 일에 익숙해졌습니다. 유리한 여건이 주어지지 않아서, 기회가 부여되지 않아서,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등등. 사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패턴은 사실 상처받기 위한 자기 방어적 생각이라는 것을요. 실제로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두 번째 수박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나 좀 보라고. 폭염과 장마로 사악한 날씨에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조금 늦었지만 천천히 해내고 말았다고요. 실제로도 수박의 이런 작은 외침이 들리는 것은 기분 탓이겠죠.ㅎㅎ


구구절절 말이 길어졌네요. 사실 오늘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입니다. 폭염과 장마에 힘내시길, 지치지 말고 조금씩 나만의 싹을 틔워내시길 바랍니다 :)





글, 그림: 김세경 

낮에는 인사부서의 교육담당자로 일하고 퇴근 후 그림일기로 일상을 기록하는 사람. 공황장애 에세이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 <엄마가 되었지만, 저도 소중합니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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