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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실 Mar 29. 2018

감정나눔

감각과 자연의 소리

1992년 노래패 동아리 겨울 엠티 장소는 강원도 양양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한 선배의 집이었습니다. 우리는 오후 늦게 도착해 저녁을 해먹고 밤새 달렸습니다. 그리고 잠들었는데 다음 날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소리에 깼습니다.

‘사아악 사아악’

처음 제가 이 소리를 듣고 깼고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를 모르겠어서 사람들을 깨웠습니다. 한참을 듣다가 모두 방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의 정체는 눈 쌓이는 소리였습니다. 한적한 강원도 산 속 집에서는 눈 쌓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시골에서 살 때는 자연의 소리 때문에 항상 귀가 열려있었습니다. 봄에는 개구리소리, 여름엔 매미소리, 가을엔 풀벌레소리, 겨울엔 개짖는 소리가 항상 우리의 귀를 잡아두었습니다. 이것은 원시시대 자연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감각기관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도시에선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자연을 그대로 놔두지 않고 없애버리니까요. 대신 층간소음이 그 자리를 대신할 때가 있긴 하지만요.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우리의 감각기관은 특별한 소리에 대한 반응 외에는 열려있지 않습니다. 그만큼 감각이 무뎌져있습니다.

무뎌짐 감각 때문에 계절마다 느끼던 감각도 무뎌져있고, 감각 때문에 활성화되었던 감정도 무뎌져있습니다. 그러니 자연에 와서 자연의 소리를 들어도 큰 감흥이 없습니다. 그저 잠깐 좋구나를 외칠 뿐입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이어폰을 끼고 인위적인 소리를 들으려할 뿐입니다.

감각은 자연에 의해 자연스럽게 깨어있거나 열려있어야합니다. 그래야 감정도 다양해질 수 있습니다. 태평양 바다를 바라보면 시상이 떠오르는 게 관계없지 않습니다. 자연의 소리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주 애월에서 파도치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여러가지 생각들이 나고 여러가지 감정이 들어서 몇 자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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