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라이브 선샤인!! 1기를 보고
"러브라이브는 장난이 아니야!"
처음 이 대사를 들었을 때, 황당해서 웃음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이 애니메이션의 장르가 '러브라이브'라지만(필자는 러브라이브 시리즈를 뮤지컬적인 연출과 초전개, 성장 서사로 이루어진 '러브라이브'라는 하나의 컬트 장르물로서 판단하고 있다. 이 애니메이션은 일반적인 작법으로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다), 이렇게 오글거리는 대사를 진지한 표정으로 할 수 있다니. 방영 당시에도 이 대사는 꽤 임팩트가 컸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밈처럼 자주 쓰이며 놀림감이 되고는 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 대사야말로, <러브라이브 선샤인!!> 1기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하게 말하겠다. 필자는 처음 <러브라이브 선샤인!!> 1기를 방영 당시에 감상하면서, 이유모를 불쾌감을 느꼈고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애니 자체의 완성도는 꽤나 훌륭하고(어디까지나 장르가 '러브라이브'임을 감안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연출이나 작화의 퀄리티도 출중했으며 캐릭터들도 매력적이었고 그다지 싫어할만한 이유가 없었을 테인데도 말이다. 아니다. 사실 이유야 있지만 그게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을 본인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렇기에 애써 외면하고 감추려는 것이다.
<러브라이브 선샤인!!> 1기가 방영된 시기는 2016년 3분기였고, 그때의 본인은 <러브라이브! School idol project>속 μ’s의 마지막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때는, 내심 μ’s가 끝난 이유가 Aqours와 <러브라이브 선샤인!!>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모종의 피해의식마저 가지고 있었을 때이니까. 물론 지금은 그것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안다.
이런 식으로 <러브라이브 선샤인!!> 이야기를 하면서 μ’s를 언급하는 것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분들께는 죄송하지만, 필자가 받아들인 <러브라이브 선샤인!!>은 <러브라이브! School idol project>, 그리고 그 극장판인 <러브라이브! The School Idol Movie>의 주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그렇기에 μ’s를 논하지 않고서 <러브라이브 선샤인!!>에 대해 논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러브라이브! School idol project>는 '호노카와 μ’s가 본인들의 꿈을 이루어나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야기'였다. 호노카는 본인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자신, 그리고 μ’s만의 아이덴티티가 분명했다. 그들은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 그만한 결과를 내주었다. 그렇다면 Aqours는 어떤가? μ’s가 조금 더 우상/ 신화적인 스탠스의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었다면, Aqours는 그에 비해서 조금 더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이야기를 다룬다(분명히 말하지만, 이것은 어느 쪽이 더 좋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조금 전 본인은 <러브라이브 선샤인!!>1기가 <러브라이브! The School Idol Movie>의 후속작이며 이어지는 주제의식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러브라이브! The School Idol Movie>는, 쉽게 말해서 '러브라이브라는 시리즈 자체의 방향성에 대해 μ’s와 호노카의 입장에서 고민하는 이야기'였다. "μ’s는 이미 해산하기로 결정했지만, 러브라이브는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고민 속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그 계속되는 러브라이브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러브라이브 선샤인!!>1기이다.
"저희는 그 반짝임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믿는 힘을 동경해서 스쿨아이돌을 시작했습니다.
목표는, 스쿨아이돌 μ’s입니다!"
"그녀들은 말했습니다. 스쿨아이돌은 앞으로도 퍼져나갈 거라고. 어디까지라도 갈 수 있다고. 어떤 꿈도 이룰 수 있다고요."
<러브라이브 선샤인!!>의 주인공 타카미 치카는, μ’s를 보고 동경하며 '나도 스쿨 아이돌이 될 거야!'라는 꿈을 꾸게 된다. 그러나 거기에 치카 본인의 의지와 아이덴티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즐거워 보이니까', 'μ’s가 멋져 보이니까'가 전부이다. 어떤 일을 하든 'μ’s는 어땠는데'라며 Aqours에 대해서보다도 μ’s만 이야기하기 일쑤고, 심지어 우라노호시 여학원의 통폐합이 결정되자 폐교가 된다며, 자기들도 이제 μ’s처럼 학교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며 신나 하기까지 한다.
이 장면에서 초반부터 본인이 느꼈던 미묘한 불쾌감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러브라이브 선샤인!!>에서 μ’s는 모든 스쿨아이돌들의 우상, 신격화된 존재로서 기능한다. 치카 또한 마찬가지로 μ’s를 동경하며, 목표로 삼는다. 허나 그뿐인 것이다. μ’s를 따라 하려고만 하지, 그 속에 Aqours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따라 하기만 할 뿐인 것은, 제대로 된 존중의 태도라고는 하기 힘들다. μ’s를 응원하던 팬들은 그러한 시리즈의 자가 복제를 납득해줄 수 없다.
다이아는 작중 초반부터 줄곧 치카의 스쿨아이돌 활동을 반대한다. 그것은 그저 <러브라이브! School idol project>의 아야세 에리에 대한 오마주인 것일까? 아니면 과거 3학년끼리 했었던 스쿨아이돌 활동의 트라우마 때문일까? 둘 다 맞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치카의 스쿨아이돌 활동에 분명한 목표의식과 자신들만의 정체성이 보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스쿨아이돌과 μ’s를 응원하고 사랑하는 다이아이기 때문에 그런 치카의 스쿨아이돌 활동에 진정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건 지금까지의 스쿨아이돌들의 노력과 마을 사람들 전원이 있어서 성공한 거예요. 착각하지 마세요!"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저 보고 있는 것 만으로는 시작되지 않는다고,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지금밖에 없는 순간이니까. 그러니까 빛나고 싶어!"
Aqours는 잘 나가는 듯이 보이지만, 8화에서 뼈저린 실패를 겪는다. 그들은 폐교를 막기 위한 입학설명회 희망 인원, 러브라이브 경연에서의 등수, 득표 수 같은 숫자와 결과에 집착하고 있었다. 거기서 0표라는 충격적인 득표수는, 본인들이 왜 스쿨아이돌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
"아무것도 안보였어. 하지만, 그래서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했어. 나는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앞에 있는 게 뭔지, 이대로 계속해도 제로인지. 아니면 1이 되는지, 10이 되는지. 여기서 그만두면 전부 모르는 채로 끝난다고. 그러니까 난 스쿨 아이돌을 계속할 거야. 왜냐면 아직 제로니까!"
"지금부터 제로를 100으로 바꾸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 하지만 혹시 1로 만들 수는 있을지도 모르잖아?"
이 에피소드에서야 비로소 '0부터 1로 나아간다'는 Aqours의 정체성이 확립된다. 그 뒤에 μ’s와 Aqours의 다른 점을 찾기 위해, μ’s가 어떻게 오토노키자카를 구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위해 다시 한번 도쿄를 찾는다. 그리고 μ’s가 해산을 결정했던 그 해변가에서 비로소 자신들만의 답을 찾는다.
"아마, 비교하면 안 되는 거야. 쫓아가면 안 되는 거야. μ’s도, 러브라이브도, 반짝임도."
"1등이 되고 싶다든지, 누군가에게 이기고 싶다든지. μ’s는 그런 게 아니었지 않았을까?"
"응, μ’s의 대단한 점은 분명 아무것도 없는 장소를 있는 힘껏 달린 것이라고 생각해.
모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자유롭게, 올곧게. 그래서 날 수 있었던 거야!
μ’s처럼 빛나겠다는 건 μ’s의 뒤를 쫓는 게 아냐. 자유롭게 달릴 수 있다는 거 아닐까?
있는 힘껏 아무것도 구애받지 않고 우리 마음에 따라서!"
"호노카 씨, 저는 μ’s가 좋아요. 평범한 학생이 빛나고 있던 μ’s를 보고 나서,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는지, 호노카 씨처럼 리더가 될 수 있는지, 계속 생각해봤어요.
드디어 알았어요. 저라도 좋은 거죠? 동료만 보고 눈 앞의 풍경을 보고 일직선으로 달린다, 그게 μ’s죠? 그게 빛나는 거죠?
그러니까 저는 제 경치를 찾을게요. 당신의 뒷모습이 아니라, 저만의 경치를 찾아서 달릴게요. 모두와 함께!"
μ’s가 어떤 자세로 러브라이브에 임했는지 깨달은 치카와 Aqours는, 그제야 μ’s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을 깨닫는 순간 '함께 빛난다는 것이 가장 즐거운 것'이라는 μ’s의 가치관에 가장 가까워진다. 그리고 비로소 μ’s의 모두가 받았던 흰색 깃털을 이어받게 된다.
<러브라이브 선샤인!!>1기는 타카미 치카를 중심으로 한, Aqours의 자아 찾기이다. 큰 틀에서 바라보면 μ’s와는 다른 Aqours만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과정이고, 개별 에피소드로 보자면 Aqours 9인 각각이 본인들만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즉, 우상을 뒤쫓아가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본인들만의 반짝임을 쫓는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필자가 처음 느꼈던 불쾌감은, 극의 마지막을 향해 가며 거의 해소되었다. 그리고 내가 <러브라이브 선샤인!!>에 바라던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본인과 러브라이브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애니메이션에 바라던 것은 가벼운 마음으로 μ’s를 따라하기 보다는, Aqours 본인들만의 반짝임을 찾아나가는 그런 이야기였으니까. 그런 면에서 <러브라이브 선샤인!!>은 그 어느 애니메이션보다도 '러브라이브'스러웠다. 물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시청자들도 여전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러브라이브 선샤인!!>은 <러브라이브! School idol project>와 이 러브라이브 시리즈 자체, 그리고 무엇보다도 μ’s에 대한 존중이 묻어있는 작품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러브라이브! 시리즈의 어디에 매력을 느끼고 빠져든 것인가? 소녀들이 자신들만의 반짝임을 찾아서 노력하는, 스쿨아이돌을, 러브라이브를, 학교생활을, 인생을 최대한으로 즐기는 그 반짝임에 매료된 것이 아니었던가. 본인의 정체성과 나아갈 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패도 겪으며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자연스레 소녀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대입시켜서 보게 된다. <러브라이브! School idol project>가 우리의 현실을 대리 만족시켜주며 희망을 노래했었다면, <러브라이브!! 선샤인>은 결과에 연연하지 말자고, 너 자신만의 반짝임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며 현실의 고됨을 위로해주는 애니메이션이다. 우습게 들리기도 하겠지만, 본인은 이 애니메이션으로 상상 이상의 많은 위로를 받았고 도전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러브라이브 시리즈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우리가 러브라이브를 좋아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