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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수 Jun 01. 2020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비윤리성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고

 처음에 KBS 예능 <남자의 자격>을 연출하던 신원호 PD와 <1박 2일>의 메인 작가를 맡던 이우정 작가가 tvN에서 드라마를 제작한다고 했을 때, 대다수 사람들은 의구심을 금치 못했다. 예능 출신의 PD나 작가가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은 누가 봐도 평범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거짓말같이 응답하라 시리즈는 3연타 흥행을 이루어냈고, 지금의 tvN 드라마를 일구어냈으며, 대한민국 안방극장의 판도를 바꾸어놓았다(작품에 대한 호불호와 관계없이, 이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기존의 두 작품과는 타겟층을 조금 다르게 잡고 더욱 큰 성공을 이루어낸 <응답하라 1988> 이후, 차기작은 무엇일지에 대해 관심이 쏠렸다. 의외로 이들은 응답하라 시리즈 대신 새로운 드라마인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제작했고, 이 또한 흥행에 성공했다. 물론 <슬기로운 감빵생활> 또한 큰 틀에서는 응답하라 시리즈와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드라마였다. 그리고 올해 3월, 슬기로운 시리즈의 후속작인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방영되었다.

201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응답하라 시리즈

 한국 드라마를 작가주의적인 관점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조금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신원호와 이우정의 합작은 그러한 시선을 자연스레 갖게 한다. 이들의 작품들에는 공통으로 공유하고 있는 정서가 있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아이자, 순수한 사랑에 대한 예찬이며, 정(情)과 인간 자체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다. 정말 진부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가장 한국적인 정서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안방극장에서 보기 힘들었던 수많은 신인 배우/무명 배우들을 발굴해내는 기막힌 능력이 있다(박보검과 유연석을 제외한 배우들이 이들의 드라마 밖에서는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그들의 캐릭터를 구성하는 능력과 연기의 디렉팅이 탁월하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게다가 누구나 좋아하고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성하고, 이를 뒷받침해줄 각본과 대사를 짜는 능력 또한 있다. 음악을 적절히 배치해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능력마저 있다. 물론 이들의 이 빼어난 스킬들은 이번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하지만 본작에서는 그 종착점이 잘못된 방향을 향하고 있다.


극 중에서 채송화 역을 맡은 배우 전미도

 이 드라마의 완성도에 대해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상업적인 흥행에 관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흥행은 두말할 것 없이 성공했고, 전미도라는 새로운(뮤지컬 계에서는 이미 탑급 스타였지만) 배우를 발굴해냈으며, 캐릭터 또한 언제나와 같이 매력이 넘쳤다. 재미도 여전했다. 어머니와 같이 매주 목요일을 손꼽아 기다렸고 등장인물들의 연애 이야기를 두근거리며 보았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본 드라마의 OST를 듣고 있다. 완성도는 두말할 것 없이 훌륭하다. 하지만 본인은 이 드라마를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의대 99학번 동기 의사 5인방이다. 20년지기 친구들인 이들이 마흔 살이 되어서 병원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들은 소위 말하는 엘리트이며, 대부분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으로 묘사된다. 성격이 까탈스럽거나 소심한 인물들도 있지만, 이것은 큰 결점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중에서도 극의 메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이익준(조정석 분)과 채송화(전미도 분)는 결점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캐릭터이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그랬다. 신원호와 이우정의 드라마는 대부분이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평범한 인물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연세대 엘리트들의 이야기였고, 의대생과 잘나가는 대학 야구선수의 이야기였고, 전세계적인 바둑 기사의 이야기였다. 대리만족이라는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전작들은 이런 인물들을 다룰 때의 최소한의 윤리성은 지켜왔다.


  현실에 이런 성숙한 인격을 가지고 능력 또한 출중하며 환자들에게 친절한, 완벽한 의사들이 얼마나 많겠냐는 문제는 제쳐둔다. 우리가 직접 겪어온 의사들과는 많이 다른 등장인물들만 나오지만, 드라마니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수많은 단역 환자들, 그 캐릭터들의 모습은 주인공 의사들의 모습에 비해  너무나도 볼품없다. 이들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이고, 가난하거나 이기적이고, 속 좁고 배려심 없고, 그러니까 속된말로 '구질구질하다'. 그리고  단역 캐릭터들은 주인공들의 배려심 깊고 따뜻한, 인간미 넘치는 '완벽한'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의 캐릭터성을 공고히 하기 위한 재료로 아낌없이 사용되고 버려진다. 이런 표현은 너무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너무나도 기만적이고 불쾌하며 역겹기 그지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는 내가 여태까지 봐 왔던 수많은 드라마보다도 비윤리적이다.


 시즌2가 제작된다고 들었다. 후속 시즌에서는 조금 더 섬세한 이야기와 도덕적인 고민을 담은 드라마를 보았으면 한다. 나는 신원호와 이우정의 세계를 계속해서 응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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