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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수 Jul 08. 2020

한국드라마가 소수자를 다루는 방식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과 <이태원 클라쓰>를 통해

 들어가기 전, 본문과는 관계없는 이야기.

 영상매체 예술에서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는 점점 옅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매체의 차이만 있을 뿐, 큰 틀에서 보자면 드라마(TV 시리즈) 또한 영화의 일부로 포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영화를 비평하는 것과 같이 드라마를 논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본인은 이전 글인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비윤리성'이라는 글을 시작으로, 이미 감상한, 또는 앞으로 감상하게 될 한국 드라마들에 관한 글을 매거진으로 엮어보고자 한다. 부족한 글이지만 최대한 꾸준히 포스팅할 것이다.



 작년 하반기에 KBS에서 방영했던 <동백꽃 필 무렵>은 2017년 크게 히트했던 <쌈, 마이웨이>의 극본을 맡았던 임상춘 작가의 신작이었다. <쌈, 마이웨이>도 방영 당시 요즘 드라마 같지 않은 트렌디함을 겸비한 각본이라는 평을 들으며, 지상파 드라마에 등 돌린 지 오래이던 젊은 층의 관심을 크게 끌어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본인은 그 드라마가 너무 안일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2~30대의 감성과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을 드라마에 녹여내는 데에는 성공적이었지만, 드라마의 온갖 플롯과 시퀀스들은 인터넷 상에서 통쾌하다며, 속 시원하다며 흔히 소비되고 있는 '사이다 썰'들을 모아서 엮어놓은 듯한 인상이었다. 그나마 초반에는 극을 이끌어나가던 각본의 힘도, 드라마의 최후반부에 들어서서는 맥없이 무너졌다. 나름대로 볼만하긴 했지만 절대 수작이라고는 하기 힘든, 지상파 드라마의 한계점만 여실히 보여주는 드라마였다.

소재는 좋았지만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은 드라마였던 <쌈, 마이웨이>


 그렇다면 임상춘 작가의 차기작이며, 같은 지상파 드라마이기도 한 <동백꽃 필 무렵>은 어떨까. 이 드라마의 주인공 동백은 수많은 캐릭터성들을 전부 겸비한 인물이다. 하나 하나로 따지자면 여태까지의 드라마들에서 흔히 봐 왔던 캐릭터성이겠지만, 이 전부를 다 가진 인물은 흔치 않았다. 부모 없이 고아로 가난하게 자랐으며, 미혼모이고, 술집에서 일하는 여성이다. 그러면서 강력범죄의 생존자이기도 하다. 동백은 이 사회의 여성들의 소수자성을 대변하다시피 하는 캐릭터이다. 그리고 드라마는 이런 주인공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수많은 제약들을 떨쳐내고 자립해나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이 드라마는 이 과정에서 지금의 우리가 잊고 살았던 감수성을 다시 끌어올린다. 좋게 말하면 정, 투박함이겠고 나쁘게 말하면 참견, 무례함, 눈치 없음일 것이다. 주인공 동백 또한 처음에는 이로 인해 힘들어한다. 하지만 남성 손님들에게 하대당하는 상황 속에서, 연쇄살인마에게 살해 협박을 받는 상황에서, 자신의 과거로 아들과의 생활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 지역 공동체의 참견과 무례함은 동백에게 끈끈한 유대감과 정을 선사해주고, 과거를 딛고, 주변의 눈치에 굴복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동기를 준다.

작중에서 눈에 띄는 성장을 보여준 주인공 동백. 공효진의 연기 또한 매우 훌륭했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여주인공의 정신적인 성장/ 변화에서 여주인공은 능동적인 객체로서 기능하지 못한다. 남주인공과의 연애관계가 발전해나가며 남성이 지켜주는 것에 안도감과 편안함을 느끼고,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본인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고, 뭐 이런 식이다. 하지만 <동백꽃 필 무렵>은 다르다.

 물론 본작에서도 여주인공 동백은 남주인공 용식과 연애를 한다. 그리고 당연히도 동백의 성장의 계기 또한 용식과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용식 또한 기존의 드라마에서 보던 뻔한 남주인공과는 차별화된 캐릭터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흔히 볼 수 있던 나쁜 남자, 또는 밑도 끝도 없이 선한 남자, 또는 백마 탄 왕자처럼 나타나는 부잣집 도련님이 아니다. 솔직하고 투박한 '시골 촌놈' 용식이다. 언제나 동백에게 솔직하고, 당신은 잘난 사람이라고, 행복해져도 된다고 끝없이 이야기하며 옆에서 함께 있어주고 위로해주며 공감해주는 사람이다.

 또한 용식은 동백에게 지나친 간섭을 하지 않는다(자의든 타의든). 바로 여기서 이 드라마의 영리함이 빛을 발한다. 수차례 살인마에게 살해 위협을 받을 때, 동백은 스스로의 기지로 상황을 타개해 나간다. 살인마에게 쫓기는 와중에 용식이 와서 구해주는 뻔한 전개는 나오지 않고, 동백은 엘리베이터 속에서 기지를 발휘해 숨는다. 용식이 뒤늦게 현장에 왔지만 동백을 찾지 못한다. 그리고 동백은 본인의 의지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마지막 화에서의 동백은, 주변 아줌마들의 도움을 받는다(물론 이것이 그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다). 그리고 응징 또한 본인의 손으로 직접 행한다. 여기서 용식은 뒤늦게 쫓아와서 그들을 말리고 있을 뿐이다.

극 중 주요 조연으로 등장하는 게장골목 아줌마들.

그렇기에 다른 관점에서, 이 드라마는 여성들의 연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드라마의 극초반을 보면, 여태까지의 한국 드라마들에서 흔히 다뤄져 왔던 여성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여성들, 전형적인 '여적여 프레임'을 보여준다(변호사 자영, 게장골목 아줌마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든든한 지원군이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인물들로 변모한다. 남편인 규태가 동백과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했던 자영은 나중에 본인의 남편을 고소한 동백에게 무료 변호까지 해주며 돕는다. 대놓고 텃세를 부리던 게장골목 아줌마들은 본인들 특기인 여론전(?)으로 동백을 지원해주며, 마지막에는 직접적인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주기도 한다. 반면 용식은 동백을 도와주려 하지만, 그 도움들은 대부분 뜻대로 되지 않거나 간접적인 도움을 주는 선에서 그친다(예외의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 <동백꽃 필 무렵>은 한 여성이 본인의 트라우마를 딛고 자주적으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이며, 동시에 여성들 간의 연대에 대한 이야기이고,  약자들의 연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제 다른 작품을 언급해본다. <동백꽃 필 무렵> 이후에 큰 흥행을 기록한 드라마로, 비교적 최근에 완결 난 JTBC의 <이태원 클라쓰>가 있다. 원작이 웹툰으로서 크게 흥행한 작품인데, 왕도적인 만화의 전개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리고 본 드라마 또한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이더라도 다루는 주제에는 꽤나 차이가 있다.

 <이태원 클라쓰>의 주인공 박새로이는 전과자이다. 그의 가게이자 작품의 배경이 되는 이태원의 술집 '단밤'에는 각양각색의 직원들이 있다. 박새로이와 같이 교도소에서 만난, 전직 조직폭력배 출신인 최승권이 있다. 트랜스젠더(MTF) 여성인 마현이가 있다. 외국인으로서 불법체류 상태인 토니가 있다. 어찌 보면 조금 애매하기도 하고, 본작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인 도구로 편하게 사용한다는 느낌이 있지만, 소시오패스인 조이서도 있다. 그렇다. 이들 또한 사회에서 기피당하고 무시당하는 소수자이며 약자이다. 

본작의 주요 무대인 '단밤'의 일원들을 보여주는 포스터.

 다른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도 물론 존재하지만, 본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마현이 캐릭터의 이야기에 주목해보겠다. 필자가 아는 한에서는, 한국 메인스트림 드라마에서 트랜스젠더 캐릭터의 이야기는 제대로 다루어진 적이 없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시청률이 15프로에 근접하는 히트작이다. 그리고 드라마 방영과 비슷한 시기에 트랜스젠더 군인으로 강제 전역당한 변희수 하사의 이야기나,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 포기 사건 등이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었다. 우연의 일치였지만 시기 또한 매우 적절했고, 드라마에서 이 이슈를 접근하는 방식 또한 현명하고 훌륭했다.

 작중에서 마현이는 요리 방송에 출연하게 되어 많은 주목과 인기를 얻지만, 원치 않는 아웃팅을 당하게 된다. 두려워하는 그에게 주변 등장인물들은 "도망쳐도 괜찮다. 아니 잘못한 게 없는데, 도망치는 게 아니다. 네가 너인 것에 다른 사람을 납득시킬 필요 없다."며 위로한다. 이 시퀀스는 작중에서 가장 공들여서 연출한 부분이라는 것에 의미가 있으며, 그와 동시에 하현우의 '돌덩이'라는 OST와 어우러져서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공들인 연출과 배우의 연기, 노래의 가사가 합쳐져 훌륭한 씬이 완성되었다.

 조금 엇나간 이야기이지만, 본인의 부모님은 나름 그 세대 분들 중에서 열린 마인드를 가지고 계신 편이다. 하지만 그런 부모님도, 트랜스젠더 이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선을 견지하고 있던 것이 사실이다. 허나 두 분은 이 드라마를 보시며 자연스럽게 마현이라는 캐릭터를 응원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눈물까지 글썽이셨다. 물론 <이태원 클라쓰>도 여러모로 나이브하거나 고민이 부족하다고 느낄 지점이 많았다. 1화에서 박새로이의 정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 오수아 캐릭터를 이용하는 방식이 그러했고, 트랜스젠더 캐릭터에게 여성 배우를 기용시킨 선택 또한 그러했다(물론 대한민국에서 메인스트림 드라마에 트랜스젠더 배우를 기용했을 때에 쏟아질 혐오를 고려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필자의 부모님처럼, 본 작을 통해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인 시선을 덜어낼 수 있었던 시청자 또한 많았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한국 사회가 소수자들을 포용할 수 있는 저변을 넓히는 데에 기여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미디어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하다. 데이트 폭력이 난무하는 연애 드라마를 보고 자란 청소년들은 데이트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여성들이 밥 차리고 시댁 살이 하는 드라마를 보며 자란 세대들은 은연중에 '밥은 당연히 여자가 해야지'라는 사고방식을 가진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여성들은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이를 보면서 사회에서 조금 더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고, 한국 사회는 <이태원 클라쓰>를 통해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과 편견이 줄어들게 된다. 그렇기에 최근 한국 드라마에서 인기를 끄는 드라마들이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여성들의 이야기를, 현실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일 것이다. 아직은 많이 부족할지 모르겠지만, 한국 드라마를 사랑하는 시청자로서 더 나은 변화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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