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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수 Jul 30. 2020

한반도 정세에 대한 그럴듯한 우화

<강철비2: 정상회담>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1세기에서 냉전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것은, 꽤나 매력적인 소재이다. 다만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로 이 소재를 잘 활용한 미디어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나온 것이 기껏해야 <은밀하게 위대하게>나 <공조> 같은 소재마저 낭비해 버린 영화였지 않은가. 그중에서 분단의 현실을 로맨틱 코미디로 녹여낸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그나마 훌륭한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와중에 등장한 양우석 감독의 전작인 <강철비>는 남북관계와 정치를 직설적인 화두로 접근하는 영화였다. 그 접근법과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 또한 많겠지만, 최소한 소재를 허투루 낭비한 영화는 아니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본작 <강철비2: 정상회담>또한 이러한 양우석 감독의 뚝심이 그대로 이어진 영화라 할 수 있겠다.



 남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되던 도중 북한의 쿠데타가 발생하고, 각국의 정상 셋이 북한의 핵잠수함에 납치된다는 설정은 꽤나 파격적이다. 이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관객에 따라 다르겠으나, 본 영화는 관객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중국과 일본을 끌어들여 복잡한 한반도 국제정세를 활용한다. 중국 정부와 일본의 극우단체가 북한의 쿠데타를 사주하고, 그 극우단체의 원조가 일본 정부의 묵인 하에 자행되고 있다는 황당한 초반 설정만 넘기면 영화는 꽤나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미국의 저명한 배우인 앵거스 멕페이든이 연기한 미국의 대통령은 배우의 체구부터 해서 캐릭터의 성격, 스타일, 화법까지 모두 현 미국의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를 빼다 박은 인상이다. 하지만 유연석이 맡은 북한 위원장과 정우성이 맡은 대한민국 대통령은 현실의 인물들에 대입시키기엔 조금 괴리감이 있다. 이는 영화의 정치성을 최대한 희석시키기 위한 감독의 다분히 의도적인 선택이다. 우리가 유연석과 김정은을 동치시키긴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이 선택은 성공적이었고, 덕분에 우리는 북한의 위원장이 나름 유식하고 합리적인 인물로 등장한다고 해서 이 영화가 북한과 김정은을 미화시키는 영화라고 생각하지도 않게 되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정의감과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그리고 잘생긴) 대통령으로 나온다고 해서 이 영화가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부를 미화하는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게 한다(만약 그렇게 판단하는 관객이 있다면 정치 이데올로기에서 한 발짝만 떨어져 보라고 말하고 싶다).


 각 나라의 정상들이 좁은 공간에서 모인 순간부터, 이 영화는 캐릭터들을 각각의 나라에 대응시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야기하는 일종의 우화가 된다. 현실의 도널드 트럼프처럼 미국은 위대하다고 되뇌기만 하는 스무트 대통령에게 미국이 위대한 이유는 민주주의를 이룩했기 때문이고, 포용과 관용을 베풀기 때문이라고 항변하며, 북한 위원장에게 미국과 대화하려는 자세가 되어있긴 하냐면서 반문하는 한경재 대통령을 보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영화의 종반부에 이르러 북한 위원장과 미국 대통령을 퇴장시킨 이후, 이 영화는 대한민국 그 자체를 상징하는 한경재 대통령과 북한이, 북한의 강경파와 일본을 상대로 맞서는 이야기로 변모한다. 나름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이야기를 펼쳐왔던 전반부와는 다르게, 이때부터는 감독의 가치관이 직접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일본 자위대에게 뻔한 악역 대사를 주어주지 않고(애초에 자위대 등장인물들은 비중이 거의 없다) 그저 잠수함과 어뢰, 전투기로만 등장하며 최대한 감정적인 묘사를 자제하려 한 노력이 엿보이지만, 그럼에도 북한군 부함장과 대한민국 대통령이 해가 뜨기 시작하는 독도를 바라보는 쇼트에서 감독의 메시지를 외면하기는 힘들다.


 영화의 에필로그에서 북미 간의 종전협정이 체결되고, 미국의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와서 같이 사진을 찍자며 제안한다. 서울에 북한 위원장이 방문하고, 광화문에서 대한민국 대통령과 합동 연설을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통일을 하고 싶으십니까?"라며 되묻는다. 한재림 감독의 <더 킹>의 마지막 대사가 연상되는 엔딩이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본 영화와 <더 킹>에서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이야기하는 화자는 모두 정우성이다. 필자는 영화의 전체적인 메시지에는 공감하는 편임에도, 영화매체에서 이런 직설적인 화법에는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심지어 이 영화에서는 본편의 이야기와도 어우러지지 못하는 느낌만 들고 교조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 부분이 못내 아쉽다.


PS1. 세 주연배우들의 호연과는 별개로, 본 영화는 신정근 배우의 원맨쇼에 가까운 영화였다. 결국 영화가 끝나면 남는 것은 신정근의 눈빛뿐이다.

PS2. 영화 군데군데 개그가 쉴 틈 없이 삽입되어 있는데, 필자의 취향에도 맞지 않았고 극의 흐름만 깨트린다는 인상이었다. 다만 다른 관객들은 자주 웃었던 것으로 보아 본인의 개그코드가 대중적이지 못한 듯.

PS3. 극 중 국제정세는 2018년~2019년 초의 상황에 더 알맞은 것 같다. 각본이 이 즈음에 쓰였을 수도 있고. 또한 이런 화제에 관심이 없는 관객들은 극의 초반부에 따라가기가 버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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