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범수 Feb 20. 2020

폭력의 참회록

마틴 스콜세지의 <아이리시맨>

 2019년, 마틴 스콜세지는 "마블 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다"라며 비판했다. 의견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반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 당신이 말하는 시네마는 뭔데?" 그리고 이 영화는 그 물음에 대한 아주 훌륭한 답이다.


 이 영화는 <대부>와, 스콜세지의 전작들인 <비열한 거리> 등에서 보이던 흔한 장르의 구성을 그대로 답습하는 듯이 보인다. 실제로 초반 150분 가까이는 그렇다. 연출 상의 몇몇 특이점이 있지만, 세 명의 인생을 중심으로 당대 미국 사회를 들여다보며 하나의 일대기를 써 내려간다는 점에서 장르의 공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초반부가 평범하다거나 의미 없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조금 늘어지는 듯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속에는 꽤나 강렬한 서스펜스가 존재하고,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는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도 조 페시의 연기가 압권이다. 스콜세지 특유의 연출력 또한 여전하며, 촬영은 두말할 것 없이 좋다. 하지만 그것은 스콜세지의 이전 작들에서도 이미 충분히 보여주었던 것들이다. 자가 복제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리시맨>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어린 여자아이가 있다. 동네 슈퍼에서 물건을 떨어트렸다고 가게의 직원한테 밀쳐졌다.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하소연을 한다. 이 이야기를 아이의 아버지가 듣게 되고, 아버지는 혼내주겠다며 아이의 손을 잡고 다시 가게로 데려간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직원을 흠씬 두들겨 패며 손가락을 부러트린다. 아이는 그 광경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이제 아이의 시점으로 옮겨가보자. 아버지가 요즘 자꾸 밤늦게 나간다. 무서운 어른들과 어울리는 것 같다. 가끔 총도 들고나간다. 아버지가 나갔다 온 다음날이면, TV와 신문에서는 어김없이 살인/방화 등 강력범죄 사건들이 보도된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뉴스를 말없이 보고 있다.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 것 같다.

 아버지의 무서운 친구가 자꾸 친하게 지내려 한다. 선물도 사주고 여러 이야기도 해주지만, 무서워서 웃을 수가 없다. 하지만 최근에 사귄 다른 친구분은 좋은 사람 같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고 하고, 맛있는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이야기도 잘 들어준다.

 그분이 실종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일이 있다며 며칠 동안 안 들어오다가 이제야 들어왔다. 소식을 이야기했으나 덤덤한 반응이다. 어머니가 부인분께 연락해봤냐고 하자, 아직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째서? 십 년 넘게 모른 척했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는 주인공 삼인방의 마초적이고 폭력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적은 분량이지만 꾸준히 프랭크의 딸 페기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아이리시맨>은 <좋은 친구들>과 <비열한 거리>, <대부>에서 벗어나 차별화된다.

 <아이리시맨>은 주인공 프랭크가 과거를 회상하며 시작되는 영화이다. 노년의 프랭크는 줄곧 누군가에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특이한 점은, 이들의 이름과 함께 이들이 몇 년도에 어떻게 사망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등장과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이겠다. 결국 지금 보여지는 이 이야기들은 모두 과거일 뿐이고, 이들의 끝은 이렇게 덧없을 뿐이라고 영화는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시대를 풍미했던 짐 호파는 프랭크에 의해 사망한다. 그러고 나서 영화는 급작스럽게 시계를 빠르게 돌린다. 프랭크와 러셀, 그리고 수많은 마피아 동료들은 모두 감옥에 수감되어 비참하게 늙어간다. 러셀은 감옥의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프랭크는 지팡이 없이 걷지 못하는 노인이 되었고, 가족들은 모두 그를 버렸다. 결국 노인 요양원에서 간호사에게 의미 없는 말이나 던지며 남은 여생을 살아간다.

 어째서 스콜세지는 수많은 제작비를 감당하면서까지 CG를 사용해서 한 명의 배우로 인물의 일대기를 표현하려고 했던 것일까. 나잇대별로 다른 배우를 기용하면, 하다못해 분장을 했으면 되는 문제 아니었던가. 그러나 스콜세지는 이 영화로 폭력과 마초성 그 자체의 덧없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간의 절대적인 힘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그렇기에 210분의 긴 러닝타임도, CG도 이 영화에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그의 전작들은, 그리고 <대부> 같은 마피아를 다룬 장르영화들은 모두 폭력과 마초성을 미화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그러한 비판들 속에서, 스콜세지가 여든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마피아 장르물은 시대에 뒤쳐졌다는 소리를 듣는 2010년대에서야 비로소 나온 <아이리시맨>은, 스콜세지와 할리우드가 숱하게 찍어냈던 마피아 장르영화, 폭력성과 마초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던 본인의 과거작들에 대한 자기 성찰이자 참회록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