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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수 Nov 15. 2019

시네마 전쟁

마블 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다?

 10월 초, 마틴 스콜세지의 아이리시맨 관련 인터뷰가 논란이 되었다. 그가 인터뷰에서 '마블 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의 코멘트는'마블 영화는 영화도 아니다'라는 꼰대식 발언으로 확장되었고, 수많은 팬보이들의 심기를 건드렸으며 국내외에서 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켄 로치같은 시대의 거장 감독들부터 시작해서, 마블 영화에 참여했던 수많은 감독들과 배우들, 그리고 디즈니의 수장 밥 아이거까지 수많은 인물들이 이에 대해 코멘트를 했다.


 이 논란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cinema의 정의이다. 한국에서는 cinema와 film, movie가 모두 '영화'로 퉁쳐서 읽힌다. 하지만 이 셋의 개념은 비슷하면서도 꽤 다르다. film과 movie는 영미권에서도 혼용되어 쓰이며(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지만 여기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둘 다 일반적인 영화를 지칭하는 데에 쓰이지만, cinema는 수많은 영화 중에서도 감독의 작가주의적인 면모가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그러니까 쉽게 말해 예술적인 측면에서의 영화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네마가 아니라고 해서, 이것이 영화가 아니다 라고 말할 순 없다.

 물론 시네마의 정의는 명확하지 않고, 개개인마다 각자의 기준점이 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누군가에게는 마블 영화 또한 시네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범위에서 마블 영화를 시네마라고 지칭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스콜세지가 인터뷰에서 수차례 지적했듯이, 그것들은 오로지 '팔리기 위해', '상업적으로 수익을 거두기 위해' 철저한 계산 아래에서 기획되고 제작된 공산품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논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마틴 스콜세지의 첫 인터뷰 원문을 옮겨온다.


“I don’t see them. I tried, you know? But that’s not cinema,” Scorsese told Empire. “Honestly, the closest I can think of them, as well made as they are, with actors doing the best they can under the circumstances, is theme parks. It isn’t the cinema of human beings trying to convey emotional, psychological experiences to another human being.”


 "내가 생각하는 것들은 배우들이 그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테마파크이다.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경험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는 시네마가 아니다."

(출처: https://comicbook.com/marvel/2019/10/03/marvel-movies-not-cinema-martin-scorsese-the-irishman/)


마틴 스콜세지 감독


 이 발언 뒤에 수많은 팬들과 대중들, 그리고 마블 영화에 참여했던 영화인들의 반응은 조금 의아했다. 그들의 반박은 대부분 "마블 영화는 재밌다" (나탈리 포트만), "영화(films)는 영화(films)이다. 모두가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사무엘. L. 잭슨), "우리는 이 영화에 열정과 마음을 담아 만들었다"(조스 웨던) 등 논점을 한참 벗어난 이야기들이었다. 물론 스콜세지의 처음 발언에서, 지금 할리우드의 상업성과 몰개성에 대한 비판이라는 맥락을 읽어내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네마에 대해 논하면서 재미있으니 된 것이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나, 우리는 열정적으로 만들었다 라는 이야기는 영화인으로서 할만한  제대로 된 답변이 아니지 않은가?


 그 후에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대부>의 감독), 켄 로치(<나, 다니엘 블레이크>,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감독)등이 코멘트를 하면서 이 논쟁은 작가주의 시네마의 거장들과 평론가 등을 비롯한 지식인 계층과 마블의 팬들& 상업영화인들의 대립 비슷한 구도로 흘러갔다. 이제 두 감독의 발언을 옮겨온다.



"When Martin Scorsese says that the Marvel pictures are not cinema, he's right because we expect to learn something from cinema, we expect to gain something, some enlightenment, some knowledge, some inspiration. Martin was kind when he said it's not cinema. He didn't say it's despicable, which I just say it is."


"스콜세지가 마블 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라고 했는데, 그가 옳다. 우리는 시네마로부터 깨달음, 지식, 그리고 영감 등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마틴은 친절하기 때문에 그것들이 시네마가 아니라고 말했고, 경멸해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허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다."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출처: https://news.yahoo.com/coppola-backs-scorsese-row-over-marvel-films-173112180.html)


Ken Loach has told Sky News he finds the Marvel superhero movies "boring" and "nothing to do with the art of cinema".

"They're made as commodities like hamburgers, and it's not about communicating and it's not about sharing our imagination. It's about making a commodity which will make a profit for a big corporation - they're a cynical exercise. They're market exercise and it has nothing to do with the art of cinema. William Blake said 'when money is discussed - art is impossible'."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는 지루하며, 시네마 예술과는 관계가 없다. 그것들은 햄버거와 같은 공산품으로 만들어졌고, 커뮤니케이션(소통)에 관한 것이 아니며 우리의 상상력을 공유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대기업에게 이익을 줄 상품을 만드는 것이다(냉소적인 활동이다). 그것들은 경제활동이고 시네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돈이 논해질 때 예술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 켄 로치

(출처: https://news.sky.com/story/ken-loach-marvel-superhero-films-boring-and-nothing-to-do-with-art-of-cinema-11841486)


켄 로치 감독

 코폴라의 코멘트는 꽤 격하고 자극적이었다. 반면 켄 로치의 코멘트는 조금 더 문제의 본질에 접근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할리우드 영화들의 시장경제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마블 영화는 영화예술로써의 '시네마'보다는 상품으로써의 영화라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것은 일평생 동안을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폐악에 대한 영화를 찍어오던 켄 로치이기에 할 수 있는 코멘트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마도(물론 스콜세지 또한 코폴라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스콜세지가 말하고자 하던 본질 또한 바로 이 문제이다. 여기서, 비교적 최근에 나온 마틴 스콜세지의 또 다른 코멘트를 언급해 보겠다.



“My concern is losing the screens to massive theme park films, which I say again, they’re [their] own new art form,” Scorsese said. “Cinema now is changing. We have so many venues, there are so many ways to make films. So enjoyable. Fine, go and it’s an event and it’s great to go to an event like an amusement park, but don’t crowd out Greta Gerwig and don’t crowd out Paul Thomas Anderson and Noah Baumbach and those people, just don’t, in terms of theaters.”


 "내 관심사는 거대한 테마 파크 영화에 스크린을 뺏기는 것입니다. 테마 파크 영화들은 새로운 예술의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공간이 있고, 또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다양한 방식들도 있습니다. 그것들을 즐기세요. 좋습니다. 놀이 공원 행사 같은 이벤트를 즐기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레타 거윅을, 폴 토마스 앤더슨을, 노아 바움백을, 그 사람들을 극장에서 몰아내지 마세요."

(출처: https://www.thewrap.com/martin-scorsese-expands-on-marvel-movies/)



 "테마파크 무비들이 지금의 극장을 점령하고 있고, 우리는 그 속에서 시네마들의 설 자리를 지켜줘야 한다"

결국 스콜세지의 발언을 요약하자면 이것이다. 마블 영화는 디즈니로 위시되는 거대 자본기업들이 주도하는 영화의 프랜차이즈 산업화의 최선봉에 서있고, 그렇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언급되었을 뿐인 것이다. 물론, 지금의 마블 영화들이 전 세계적으로 이례 없는 흥행을 써 내려가고 있고, 블랙 팬서의 오스카 작품상 노미네이트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남우주연상 노미네이트 시도(다행히도 불발되었다) 등 그들의 시네마의 영역을 넘보기 시작한 것에 대한 반발심리도 일정 부분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시네마들을 지키기 위해, 예술영역으로써의 영화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너네가 뭔데 시네마의 정의를 내리며, 멋대로 다른 사람의 창작물과 거기에 들인 노력을 폄하하냐고. 하지만 그들은 착각하고 있다. 이것은 마블 영화에 대한 공격도 아니고, 그 영화에 노력을 쏟아부은 제작진들과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의 열정을 깎아내리는 것 또한 아니다. 단지 그것은 시네마가 아니라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기획되고 만들어진 영화들이고, 이 영화들이 너무나도 많은 극장 생태계의 파이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시네마들의 설 자리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일 뿐이다. 지금의 마블 영화를 만들어온 존 파브로, 조스 웨던, 제임스 건, 루소 형제, 라이언 쿠글러, 타이카 와이티티 등의 감독들 또한 모두들 어린 시절 시네마를 보며 자라왔고, 그것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 비록 추구하는 지점은 정반대에 있지만, 어찌 되었든 지금의 마블 영화에 시네마가 기여한 바는 모두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크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비교적 최근, 11월 5일에 뉴욕 타임즈에 기고된 스콜세지의 사설을 옮겨온다.



Some say that Hitchcock’s pictures had a sameness to them, and perhaps that’s true — Hitchcock himself wondered about it. But the sameness of today’s franchise pictures is something else again. Many of the elements that define cinema as I know it are there in Marvel pictures. What’s not there is revelation, mystery or genuine emotional danger. Nothing is at risk. The pictures are made to satisfy a specific set of demands, and they are designed as variations on a finite number of themes.

They are sequels in name but they are remakes in spirit, and everything in them is officially sanctioned because it can’t really be any other way. That’s the nature of modern film franchises: market-researched, audience-tested, audience-tested, vetted, modified, revetted and remodified until they’re ready for consumption.


혹자는 히치콕의 영화에서 동질성이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이것은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히치콕 또한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는 프랜차이즈 영화의 동질성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것입니다. 저 또한 시네마를 정의하는 데에 필요한 많은 요소들이 이미 마블 영화 속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압니다. 대신 마블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일깨움, 미스터리 또는 진심 어린 감정적 고조와 위기입니다. 그 영화들에는 진정한 위험이 없습니다. 그 영화들은 특정한 요구사항들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지고, 몇 개의 테마의 변주에 불과할 뿐입니다.

 마블 영화들은 말로는 속편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리메이크에 가깝고, 극 중 모든 요소들은 모두 제작사의 허가 후에 삽입됩니다. 이것이야말로 현대 프랜차이즈 영화의 실상입니다. 시장 조사, 테스트 상영, 조사, 수정, 재조사, 재수정, 이 대량 소비를 위한 일련의 과정들이요.

(출처: https://www.nytimes.com/2019/11/04/opinion/martin-scorsese-marvel.html)



 물론 마블 영화를 시네마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디즈니와 마블 입장에서는, 이 일련의 논쟁들이 매우 불쾌할 수 있겠다(디즈니의 CEO인 밥 아이거의 코멘트에서 이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마블 영화를 열렬히 사랑하는 팬들에게도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들에게는 이 영화들이 감정적으로 충분히 큰 울림을 주고, 진심 어린 이야기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그 영화들은 자본논리로 인해 제작된 상품들이라는 사실이다. 마블 영화들의 개별적인 완성도에 이견을 가지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다만 그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획일적인 톤, 유머, 액션, 내러티브에서 진정한 다양성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이 바로 모두가 이야기하고 있는 논쟁의 포커스이고, 그 이유는 당연히도 순전히 이 영화들이 '잘 팔리는 공식'에 의해서 짜여 있기 때문인 것이다.


미국 ABC 채널의 TV 시리즈 <트윈 픽스>


 최근 몇몇 영화 평론가들 사이에서, 올해의 영화(시네마)를 꼽을 때 심심치 않게 TV 시리즈들이 언급되고는 한다. 2017년도의 <트윈 픽스 시즌 3>, 그리고 얼마 전 HBO에서 방영되었던 <체르노빌> 등이 주로 언급되고는 했다. 그들에게는 TV 시리즈가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들과 다를 바 없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혹자는(꽤 많은 기성 영화 업계인들은) 시네마의 필수조건으로써 극장 상영을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가장 시네마다운 영화라고 할 수 있을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는 어느 제작사의 투자도 받지 못하고, 인터넷 스트리밍 플랫폼인 넷플릭스 산하에서 제작되고 방영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로마>는 시네마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영화산업과 극장 생태계, 그리고 시네마는 변하고 있으며  경계는 이미 허물어지고 있다(조만간 이에 대해서도 글로 다뤄보고자 한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마블의 <블랙 팬서> 영화 자체의 주제가 확실하게 다가왔고 감정적인 울림이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마블 유니버스 시리즈의  익숙한 톤이 느껴지지 아서 인상적이었다. 최소한 뻔한 영화는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은 <블랙 팬서> 시네마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마블 영화들이 시네마로서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날이  지도 모른다. 그리고 본인 또한 그렇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다.



*11월 5일 뉴욕 타임즈에 기고된 마틴 스콜세이지의 인터뷰 전문 번역은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nouvellevague&no=453428&exception_mode=recommend&page=1)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번역의 몇몇 부분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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