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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수 Oct 05. 2019

분노를 선동한다

토드 필립스의 <조커>에 대한 단상

 분명 이 영화는 이전부터 코믹스 팬, 영화 팬들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던 물건이었다. 마틴 스콜세지가 제작에 참여한다는 이야기가 떠돌 때부터 이 영화는 기존의 코믹스 기반 상업영화들과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고(실제로 제작에 참여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 배우로 참여한다고 하자 그런 생각은 점점 확신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나온 예고편은 그 기대치를 한껏 높이기에 충분했고, 영화는 보란 듯이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되었다.

 당연하게도, 올해 베니스 영화제 최대의 관심사는 <조커>였다. 결과적으로는 코믹스 원작 영화 중 최초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마블과 디즈니가 전 세계 영화시장을 좀먹고 있는 지금 시대이지만, 여전히 영화팬과 일반 관객들은 코믹스 기반 영화에 그냥 가볍게 즐길만한 팝콘무비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물론 본인 또한 그렇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노선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70년대 스콜세지의 누아르들을 떠올리게 하는 비주얼과 분위기, 찰리 채플린을 위시한 고전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존중이 있을 것 같았다. 이러한 예상은 모두 들어맞았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그보다 더 중요한 논쟁거리가 이 영화에 들어 있었다.



 일단 먼저 오롯이 영화만을 놓고 얘기해보자. 영화적인 완성도 자체는  수했다. 감독의 연출력이 뛰어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호아킨 피닉스라는 거물 배우의 연기에 영화 자체가 계속 끌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니까. 사운드는 약간 과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고, 그에 비해서 촬영은 훌륭했다. 그리고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조차도 이견을 가지기 힘들 정도로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대단했다. 물론 여전히  영화가 황금사자상을 탈만고 묻는다 대답을 망설이겠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이 영화가 꽤 마음에 들었다.


 기존의 배트맨을 다룬 미디어에서 조커는 어떠한 인물로 비추어졌는가? 혼돈과 광기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과 같았다. 물론 거기에는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 붙었다. 조커의 광기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 <조커>에서의 아서 플렉에게는 이유가 주어진다. 그것도 한 시간 반 이상을 할애해가면서.

 물론 조커라는 캐릭터에게 내러티브와 동기를 부여했다는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는  아니다. 혹자는 그런 말을 하기도 했지만, 본인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인에게 내러티브는 필요하며, 우리는 거기에 더 주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어쨌든  정도야 캐릭터의 재해석의 범주 안이라   있고, 여태까지 영화에서만 3명의 조커가 각기 다른 영화와 배우로 다루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이런 변화는 당연히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조커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인데,  캐릭터에 아무런 이야기적인 배경도 없으면 말이  되지 않는가. 중요한 문제는,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부분이다.



  영화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의 행동에 관객들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공감하게 만든다는  있다. 영화는 주인공의 감정선을 중심으로 따라가며 진행되고, 카메라의 시선은 대놓고 주인공을 동정하는 듯이 바라보고 있으며, 스코어와 사운드는 불필요한 지점에서도 쿵쾅거리며 관객들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흥분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관객들은 아서 플렉의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에 공감하게 되고, 살인과 일련의 범죄행각들을 응원하게 된다. 영화는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 심지어 조커를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혁명가로써 그려내고야 만다. 나에게는 이 지점이 너무나도 끔찍하게 느껴졌다(표현을 순화해보려 노력했지만, 찾지 못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살인을 일삼던 악역 캐릭터에게 사회적 약자라는 캐릭터성을 부여하고, 사회 시스템에 의해 망가지고 분노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관객 또한  분노와 행동에 공감하게 만들고, 심지어  캐릭터를 자본과 계급에 저항하는 혁명가로 그려낸다면, 이걸 선동이 아니고 뭐라고 말할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여태까지 나왔던  어떤 영화보다도 폭력적이고 교조적이다. 차라리 <시계태엽 오렌지> 훨씬  양호하다는 의견이다.


 여기서 먼저 하나 짚고 넘어가겠다. 본인은 실제 사회에서 일어나는 폭력/혐오범죄  상당수가 개인의 문제이기보다도 사회 시스템이  기능을 다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범죄들은  좋은 사회를 만들고 법과 제도를 보완함으로써  이상은 예방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어찌 보면 터무니없다고 느낄 수도 있을 정도로 이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 시스템의 보완을 통해 범죄를 막고 소수자들을 보호하며 지켜내자는 그런 논의는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며,  적극적으로 지향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조커>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영화는 다르다. 범죄행위를 보여주는 과정 속에서 결국 관객들이 범죄자에게 동조하게 되고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게 만든다면, 이것은 여전히 현실 속에서 혐오, 폭력범죄들이 멀쩡하게 일어나고 있는 지금 사회의 범죄자들에게 '타당한 이유' 제공하는 것과 같다. 오해의 여지가 있어서 부연하자면, 그들이 범죄행위를 저지른 이유를 살펴보는 것과, 범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이다. 전자는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시켜 그러한 범죄의 발생을 막자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후자는 단순히 범죄자의 범죄행위를 합리화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톤과 연출방식에 의해 이 미묘한 차이가 판가름나며, 그렇기에 극에서 범죄자의 이야기를 조명할 때에 더욱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감독인 토드 필립스, 주연배우인 호아킨 피닉스, 그리고 수많은  영화의 지지자들이 항변하는 것처럼  영화가 그런 사회 시스템과 구조에 대해 비판하는 목적으로 제작된 영화였다면, 그것은 방법론적으로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영화 전체가 차갑고 냉소적인 톤으로, 감정적인 격앙 없이 담담하게 그려냈다면 납득할  있겠지만 지금의 나에게  영화는 아주 위험한 선동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조금이라도  나은 사회를 위해서 지금도 밖에서 투쟁하고 있을 사람들에게도 실례인 것이다.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영화에 선동당해 조커라는 인물을 우상시하게 되고, 집단적인 폭력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캐릭터에게 감정적으로 공감하게 되었다고 해서,  감정을 현실에까지 끌고 오고 행동을 실행에 옮길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주 만약에 혹시라도, 위험한 가치관을 갖고 있거나 심각한 정신적인 문제가 있거나 사회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한 사람이  영화를 접하게 된다면,  결과는 결코 지금 사회에 좋은 방향이 아닐 것이라는 데에는 자신할  있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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