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이중적 양상을 이해해 보자.
얼마 전, 한 브랜드의 요청으로 마케팅 제안을 하러 갔다. 그들의 주 타겟층인 밀레니얼 세대를 고려하여 마케팅 방안을 제안해야 하다 보니, 요즘 젊은 세대들이 보이는 라이프 스타일과 소비 성향에 대해 구체적 예를 들어가며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프레젠테이션 내내 50대의 팀장님은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심란한 표정을 보였다. 도대체 이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었다. “왜 저런 걸 사는 거지? 그리고 저걸 왜 찍어서 올리지? … 당최 이해가 안 가네….” 그러자 옆에 있던 40대의 또 다른 관계자분이 웃으며 말했다. “이해하려 하지 마세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이시면 돼요.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요.”
하지만 단순히 세대 차이로 치부하고 말기에는 그들이 너무 중요한 소비자층이 되었다.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시장에서 도태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그 전에 그들은 누구인가?
전 세계적으로 밀레니얼 세대가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기업들은 이들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데이터와 글로 배우다 보면, ‘이런 줄로만 알았던’ 그들이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하고, 한 사람이 양립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정반대의 특성을 동시에 보여주기도 해서 당황하고 만다.
고객의 욕구를 파악해야 잘 팔리는 상품과 서비스를 낼 수 있을 텐데, 지금까지의 시장 눈으로 바라보면 예상을 빗나가 버리고 마는 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지난해 여름,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주인공인 그보다 더 주목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그의 딸 이방카 트럼프. 당시 인종차별에 여성비하 발언 등으로 이미지가 급하락되었던 아버지 도널드 트럼프를 위해 이방카는 자신이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 임을 강조하며 찬조연설을 시작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양분되는 뻔한 정치 시스템을 거부하고, 과거의 관습을 무조건 따르기보다 자기 삶과 가치를 중시하며 도전을 즐기는 젊은 세대의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젊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한 것이다.
그녀가 자신을 스스로 칭하며 적극적으로 다가가고자 한 ‘밀레니얼 세대’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당시의 사회적, 환경적 영향을 함께 받음으로써 비슷한 코드가 형성됨에 따라 세대를 나누고, 그 세대에 닉네임을 붙이는 것은 미국에서부터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출산 붐이 일 때 태어나 미국의 번영을 이끌었던 대표적 세대를 베이비붐 세대(1946년~64년 사이에 태어난)라 하고, 물질적 풍요가 가득했던 90년대를 누린 이들을 X세대(60년대 중반~70년대 후반)라 부른데 이어서 지금 2000년대의 사회와 문화, 경제 그리고 정치를 이끄는 세대로 ‘밀레니얼 세대’가 부상한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를 구분하는 정확한 출생 연도는 없으나 대다수의 전문가는 1980년대 초부터 2000년까지 출생한 세대를 주로 일컫는다. 1981년 이후에 태어난 성인들로 현재 19세에서 35세 사이를 말하기도 하고, 2000년 즈음에 성인이 된 이들을 말하기도 한다. (참고로 이방카 트럼프는 81년생이다. 위의 기준에 따르면 간신히(?) 밀레니얼 세대인 셈.)
미국에서는 2015년, 밀레니얼의 인구가 윗세대인 베이비붐 세대의 인구수를 앞지르게 되면서 전 세계의 소비 30%를 담당하는 주요 소비층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들이 여러 방면에서 소비를 주도하고, 새로운 문화를 선도하면서 변화를 이끄는 세대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기업들은 밀레니얼들의 성향을 분석하고 파악하는데 촉각을 세우고 있다. 매년 각기 다른 주제로 밀레니얼 세대를 연구한 ‘밀레니얼 임팩트 리포트*’ 같은 경우는 2009년부터 발행되고 있고(*www.millennialimpact.com), 2013년에 발간된 제프 프롬의 <Marketing to Millennials(국문명:밀레니얼 세대에게 팔아라)>를 보면 디지털과 함께 자란 최초의 세대인 ‘밀레니얼’들의 소비 성향과 트렌드에 대해서 부인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주로 미국을 기점으로 진행된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연구 결과들은 우리나라 밀레니얼 세대들이 가진 양상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밀레니얼들은 전체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고학력에 임금 수준이 높아 요즘 소비의 주체로 여겨지지만, 한국의 18~34세는 그 윗세대보다 적은 인구수(인구 노령화 현상)에 ‘3포 세대’라고 불릴 만큼 소비력이 약하다. 점점 더 악화되는 취업률에 일자리의 질까지 저하된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평균 소득은 낮고, 대학 학자금의 부담을 안고 사회에 진출한다. 경제력이 약하다 보니 미국의 밀레니얼들이 자연보호, 인권 등에 관심을 가지며 사회 공헌도 높은 기업과 브랜드를 선호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제품을 선택할 때 관념적인 가치보다는 가격이나 효용성 등 경제적 가치에 더 중점을 둔다. 또한, 미국의 밀레니얼들은 지역 사회나 국가에 대한 본인의 역할이나 기여도를 생각하는 반면, 한국의 밀레니얼들은 헬조선이라 칭할 정도로 국가 만족도가 낮고 청년실업, 복지 문제 등 한국 사회의 부조리함을 보고 있다.
그러나 나라마다 이 연령대가 보이는 특징이 다소 다르다 할지라도, 이들이 18~34세의 청년층이라는 점에서 생산 활동의 주축으로서 소비를 주도하고, 새로운 문화를 선도하며 변화를 이끄는 세대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이해하고, 알아가려는 것은 단순히 세대에 대한 이야기로 국한될 수 없다. 이들에 대한 이해는 변화에 대한 이해인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달라지고 있는 이 사회의 변화 주체로서, 변화의 중심에 있는 세대이다 보니 그들을 규정하는 순간 이미 그들은 달라져 있다. 이제 좀 알겠다 싶을 때, 그들은 또 다른 낯선 면모를 보이며 그들을 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준비하는 이들을 당황하게 한다. 하물며 그들이 보이는 특성들을 키워드로 규정하다 보면 하나의 키워드가 또 다른 특성을 설명하는 키워드의 정반대인 경우가 있다. 이들의 이런 이중적 양상은 그들을 더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렇게 그들이 보이는 현상만 쫓아가기만 하면 우리는 끝끝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중적인 그들의 행동을 좀 더 살펴보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좀 더 근본적인 이해의 실마리를 찾아보도록 하자.
1. 혼자 하는 것을 즐기는 개인주의 같은데… 끊임없이 ‘소통’과 ‘관계 맺기’를 원한다?
밀레니얼 세대 이들은 혼자 하는 것을 괘념치 않는다. 그래서 혼밥, 혼술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혼자 밥 먹기에도 난이도에 따른 레벨 차이가 있는데, 편의점 도시락이나 햄버거 먹기는 초급, 일반 식당에서 맛집을 시도하는 단계는 중급,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구워 먹는 고깃집에서 1 인식을 하는 것은 최고 난도로 친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최고 난도를 도와줄 ‘혼자 고기 구워 먹는 식당’까지 나타났다. 식당 문 앞에 ‘혼자서 편하게 드세요’라는 팻말을 내붙인 이곳에서는 대부분의 식당이 일부 공간에 1인석을 마련한 것과는 달리, 진짜 1인 식사를 위해 세팅된 내부 구조로 쉽게 1인 고깃집 시도를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그냥 혼자 먹지 않는다. 혼자 밥을 먹는 순간을 SNS에 인증샷으로 올리며 ‘좋아요’와 댓글을 받으며 소통한다. 혼자 밥을 먹는데 또 다른 누군가가 식사하는 먹방(*<아프티카TV>에서 먹기만 하면서 찍은 방송이 유명해져서 생긴 용어, 먹는 방송의 줄임말)을 관중하며, 별풍선을 날리면서 소통한다. 혼자 먹고 싶어 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온라인 너머 있는 누군가와 수다 떨며 먹는 것이다. 실제로 <아프리카TV>에서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먹방' 채널은 제법 흥하는데, 그 이유를 혼자 밥 먹는 일이 잦아진 사람들의 외로움 때문으로 보기도 한다. 누군가와 함께 먹고 싶어 하는 욕구를 대체하기 위한 개인방송이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인기를 얻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경향 칼럼, 2013). 이들은 혼자 밥을 먹되 혼자 먹는 것이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짙었던 기존 X세대에 비해 지인과의 소통과 연결고리를 중시한다. 이들은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좀 더 독립적이라고 표현하는 게 어울릴 것 같다. 지난 세대와는 달리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에 더 집중하고, 다른 사람들의 취향과 행동도 좀 더 존중한다. 좀 더 ‘너는 너, 나는 나’를 챙기면서 동시에 함께 어울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2. ‘3포 세대’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돈이 없다면서, 저런 데다 돈을 쓰네?
흔히 밀레니얼 세대들의 특징으로 가성비를 꼼꼼히 따지며 합리적 소비를 하는 세대라고들 말한다. 경제 불황의 한가운데 있는 세대로서 부모 세대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자랐고, 97년 IMF 외환위기와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지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부에 대한 개념도 과거 세대와 많이 다르다. 그래서 쿠폰이나 할인율에도 민감하며, 가격이 구매 결정에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에겐 브랜드 파워가 예전만큼 먹히지 않는다는 시선도 있다. 샤오미처럼 가성비만 좋다면 중국 브랜드임에도 마다치 않고, 열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그들의 행동이 또 이중적으로 보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만의 가성비 기준과 합리적 소비의 기준에 따라 구매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무조건 가격이 싼 것을 선택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매력 소비’를 하는 이들은 자기가 매력적으로 느끼고, 자신이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소비를 한다. 남들이 보면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자가용도 없고, 오토바이도 없으면서 300만 원짜리 자전거를 산다든지, 한 달 내내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뮤직 페스티벌 3일권을 산다. 300만 원짜리 자전거를 살 때, 라이딩 액세서리를 증정하는 이벤트 프로모션 기간을 이용하고, 신용카드 할인에 멤버십 가입 이벤트를 활용한다. 25만 원짜리 록 페스티벌 3일권 티켓을 얼리버드 기간에 30% 할인가로 구매하며, 티켓 판매 사이트 멤버십 등급 할인까지 덤으로 받는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가성비와 합리적 구매 방식이다. 이러다 보니 더는 잘 샀고, 못 샀고에 대해 남이 왈가왈부할 수 없게 된다.
대학내일 20대 연구소에서는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에 대해 ‘쓸로몬’이라는 신조어를 내놓았다. 자신만의 쓸모를 찾아 가치 있는 물건에만 소비하고, 소유보다는 경험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공유나 대여 등의 공유 경제가 활성화된 것도 이들이 효율성 있는 소비 방식을 선호하는 특징이 있어서일 것이다.
3. 자신감 넘치고, 자기애가 강하지만… 사실 같은 세대의 시선을 강하게 의식한다?
자기가 매력을 느끼는 기준과 중요시하는 가치에 따라 선택과 결정을 할 만큼 주관과 자기애가 강하지만, 반대로 같은 세대의 시선을 강하게 의식하며 그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쓴다. ‘나만 좋으면 돼’라며 아무도 살 것 같지 않는 '덕후' 아이템을 구매하다가도 친구들에게 멋져 보일 수 있을만한 아이템이 있다면 이 역시 강력하게 구매를 고려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구매한 아이템과 경험은 SNS를 통해 공유된다. 날 것으로 드러내기보다 일종의 편집을 통해 자신이 살고 싶은 라이프 스타일로 ‘있어 보이게’ 공유한다. 그래서 이들의 특징을 남들에게 있어 보이게 하는 능력을 뜻하는 ‘있어빌리티’(‘있어 보인다’와 ‘Ability’를 합친 단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들이 공유하는 일상을 '가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현실을 교묘히 편집해서 온라인 세상 속에서 더 나아 보이는 또 다른 인생을 만들어낸다고 누군가는 비꼬지만, 태어날 때부터 온라인 세상에서 네트워킹하며 자라온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는 그러한 구분이 의미 없게 여겨질 것이다. 오프라인에서의 자아도, 온라인 속 자아도 결국 다 현실에 실재하는 자신이라는 점에서 그들은 당연한 듯 오프라인과 별개의 온라인 활동을 한다. 온라인 세상 속 SNS 계정도 마치 온라인 주민등록증처럼 엄연한 자신인 것이다.
디지털에 친숙한 세대이자 쇼핑의 DNA가 완전히 다른 밀레니얼 세대. 그들 자신도 알아채지 못하는 그들의 숨겨진 욕구를 알아내는 것은 앞서 말했듯 '세대 차이의 극복'이라기 보다 변화의 주체인 그들에 대한 '관심과 이해'에서 비롯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코드가 다름이 각 세대를 구분 짓는 특성이 된다면, 이렇게 서로 다른 코드가 내재되어 있는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해'란 결국 머리로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하는 것이기에 밀레니얼 세대들이 보여주는 현상만 납득 가능하게 해줄 뿐이지, 한발 앞서 그들의 마음을 살만한 무언가를 제시하기엔 역부족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Good eXperience를 만들겠단 사명을 가진 우리는 이해를 넘어 '공감'을 시도한다. 그들의 입장이 되어 보고, 감정 이입을 하는 단계까지 가보게 되면 관계없이 흩어진 일개의 현상들로만 보였던 것들이 맥락 안에서 연결이 되고, 아직 찍혀있지 않은 다음 연결점이 어렴풋이 보이게 된다. 고객도 모르는 자신들의 니즈를 한 발짝 앞서 채워줄 수 있는 지점 말이다.
'공감'이라니. 막연한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지 않은가. 고객의 욕구와 니즈를 채워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고객 중심, 사용자 중심의 접근법을 수없이 강조하지만 우리는 이 '고객/사용자 중심'의 기본을 종종 놓치곤 한다. 데이터와 텍스트로 보여지는 표면적 현상에 현혹되지 말자. 분석하려고만 하지 말자. 그들이 하는 행동을 직접 보든 듣든 겪든, 그 속에서 그들이 한 '경험'을 체득하고 느낀다면, 데이터가 의미하는 숨겨진 바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세대 차이여. 안녕.
epilogue..
밀레니얼 세대라는 나도 아리송한 밀레니얼 세대.
BXRS | 김현진 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