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나는 아이디어의 주인은 누구일까?
어느 비누 회사에 있었던 일이다. 그들이 판매 중인 비누에서 불량품이 다수 발견되었는데,
황당하게도 포장지 속에 비누가 들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불량 비누를 구매한 소비자들은 회사로
항의전화를 걸어왔고, 공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 끝에 한가지 해결책을 마련했다.
포장까지 완료된 비누가 컨베이어 벨트의 마지막 단계에 오면, 엑스레이 스캐너로 포장지 속의
내용물을 확인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과정을 책임지게 될 직원과 설비를 추가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지만, 어찌 됐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더 좋은 방법이 없을 것만 같았다.
안타깝게도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엑스레이 스캐너는 불량 비누를 정확히 골라내지 못했고,
최종 검품 과정에 들어간 노력은 생산 라인의 효율을 점차 감소시켰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회사가 깊은 고민에 빠져있을 때 한 직원이 아이디어를 냈다.
“포장된 비누가 지나가는 컨베이어 벨트 옆에 선풍기를 틀어 놓으면
속이 빈 포장지는 그곳을 통과할 수 없을 거예요.”
아이디어로 먹고사는 시대라고 한다. 세상 모든 아이디어가 모여있다는 실리콘밸리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들은 아침 회의에서, 점심 미팅에서, 퇴근 길 맥주 한 잔에서도 무릎을 치는 아이디어를 찾곤 한다. 정확히는 서로가 처한 상황도, 필요로 하는 아이디어도 모두 다른 종류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갈구하는 모습을 보자면 비슷하게 자리 잡은 어떤 믿음이 있는 것 같다.
‘땅 파면 10원은 안 나올지 몰라도 아이디어는 나온다!’
아이디어를 대하는 자세
좋은 아이디어에 대한 조금 진부한 각본들 -자신의 승진을 위해 동료의 기획서를 훔친 누군가의 이야기, 혹은 경쟁사의 신제품 아이디어를 빼돌려 먼저 출시했다는 어느 회사의 이야기- 에서 처럼, 좋은 아이디어란 희소하며, 특별한 재능(혹은 열망)을 가진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는 걸까.
좋은 아이디어는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이 원론적인 질문에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 많은 학자들이 고민해왔을 것이다. 그리고 창의성이 시대의 인재상이 된 언제부턴가, 작은 아이디어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퍼졌던 언제부턴가 이 고민의 주체는 연구실 밖으로 나왔다. 서점에 진열된 책에서도, 작은 회의실의 칠판에서도, 가방 속의 노트를 채운 검은색 글자들에서도 아이디어를 향한 각자의 고민은 이 시대의 첨단에서, 혹은 가장 아래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에는 그의 작품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수많은 단서들이 담겨 있다. 열네 살 때부터 기록된 이 노트는 조금 엉뚱한 상상에서 일상의 경험과 영감, 철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가설과 탐구까지 수많은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다. 수십 년 동안 그는 무엇을 바라고 이 노트를 채워왔을까? 혹은 처음부터 목적이 부여된 습관이 아니었다면, 그 쓰임새를 찾아내는 과정에는 어떤 인사이트가 있었을까?
세기의 발명품을 개발한 천재 과학자나 예술가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창의적인 작업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이 시대의 크리에이터들은 각자의 라이프스타일과 사고방식을 아이디어가 필요한 곳에 최적화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패션디자이너로부터, 영화감독으로부터 혹은 괴짜 사업가로부터 떠올려지는 이미지에 뭔가 특별한 개성이 있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될 것이다.
어쩌면 딱딱하게 굳어버렸을 우뇌와 좌뇌로는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어렵다. 그래서 주변의 많은 것들을 익숙하고 당연하게 바라보는 대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것. ‘뇌를 말랑하게 만들기’는 모든 크리에이터의 DNA와도 같다.
아이디어에 다가가는 방법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고, 인사이트라는 무형적 가치를 엮어내는 일. 기획과 디자인 업무의 언저리에서 뇌를 말랑하게 만드는데 사용되는 몇 가지 툴을 간단히 소개할까 한다.
관념 깨기- Brainstorming
특별히 소개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보편화된 발상법, ‘브레인스토밍’은 말 그대로 뇌를 깨우는 활동이다. 각자의 창의성을 조금 더 쉽게 발휘하도록 하는 브레인스토밍 기법은 생각의 폭을 넓힘으로써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한다. 브레인스토밍의 핵심은 사고(思考)의 프레임을 최대한 열어두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소규모의 팀을 꾸려 진행했을 때 더 많은 생각의 확장이 일어난다.
하지만, 브레인스토밍은 관념의 재정렬(Restructuring)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기도 한다. 브레인스토밍 과정에서 사용되는 단어, 이미지는 각자의 인식 속에 한정된 언어이자, 추상화된 경험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브레인스토밍의 동생, 고든법:
고든(Gordon, W.)이 브레인스토밍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아이디어 발상법의 하나로 추상적인 사고법이다. 브레인스토밍과 마찬가지로 4가지 규칙(비판금지, 자유분방, 다다익선, 결합개선)이 적용된다. 브레인스토밍은 구체적인 테마가 제시되지만, 고든법은 키워드만 제시된다. 예컨대 초콜릿을 한 단계 더 추상하면 과자가 되고 과자는 음식물로 생각된다. 이처럼 초콜릿을 개량하려면 초콜릿으로 생각하기보다 과자라고 생각하거나 음식물이라고 생각하게 해서 더 많은 아이디어를 생성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맥락적으로 생각하기- Observation
일상 속의 다양한 현상을 관찰하고 질문을 던지다 보면 기존에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관점과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개념적으로는 문화를 이해하는 학문인 Ethnography에서 파생된 관찰조사는 ‘탁상공론’의 한계점을 보완하는 현장 중심의 아이데이션 툴이다. 누군가가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 음식을 주문하는 모습을 관찰하다 보면 ‘왜 저런 제스처를 보였을까?’, ‘왜 오랫동안 메뉴를 고르지 못할까?’와 같은 조금은 엉뚱하기도, 혹은 당연하기도 한 궁금증이 생기는데, 그 답을 확인하게 될지, 혹은 영원히 알 수 없는 궁금증으로 남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이 과정 자체로 우리는 전혀 다른 형태의 ‘사고의 확장’을 경험하게 된다. 약속된 언어, 일방향적인 논리를 활용하는 브레인스토밍 기법에 비해 더 많은 정보량과 맥락을 고려하게 되므로, 관찰 조사에서 얻어지는 아이디어의 질은 보다 실제적이고 총체적이다.
서로 다른 접근하기- Co-creation Workshop
어려운 문제일수록 협업과 시너지는 중요하다. 기업을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 사이에서 수평적인 의사소통이 점차 중요시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코 크리에이션 워크샵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 다양한 분야의 구성원이 모여, 주어진 이슈에 각자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아이데이션 방식이다. 이 활동의 장점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보다 객관적으로 정의하고, 아이디어의 실행가능성과 지속가능성을 빠르게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좋은 아이디어가 특정 의사결정권자에 의해 사장되거나, 반대로 좋지 않은 아이디어가 무조건 관철될 위험을 줄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의 이슈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을 수평적인 관계에서 시너지로 연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위해 현장에서는 퍼실리테이션 기술의 전문화와 더불어 레고플레이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툴을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아이디어를 길러내는 주인
얼마 전 방영된 KBS의 다큐 <축적의 시간>에서 강연자는 ‘우리 사회는 좋은 아이디어에만 목적을 두는 것이 문제’라고 역설한다. 좋은 아이디어를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작고 연약해 보이는 아이디어라도 꾸준히 다듬고 스케일을 키워가는 ‘개념 설계’의 노하우가 부족한 것이 우리가 가진 진짜 한계라고 말이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원하는 좋은 아이디어란, 처음부터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수많은 실험과 보완을 거쳐 단단한 짜임새를 갖춰갈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처음부터 다 자란 아이디어에는 주인이 없다.
먼지 쌓인 일기장에서 시작된 베르베르의 소설처럼, 실험실 한 켠에 버려진 접착제에서 태어난 포스트잇처럼, 작은 단서들에 물을 주는 누군가에 의해 아이디어는 탄생한다.
좋은 아이디어를 원하는 모두와 이 질문을 공유하고 싶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잘생긴 아이디어인가, 혹은 그것을 길러낼 충분한 영양분인가.'
아이디어에 모범답안이 있을까요.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BXRS | 배지훈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