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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partners 샘파트너스 Dec 22. 2017

디자이너가 바라보는 범죄예방

- CPTED -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이미 일을 그르친 후 후회해도 소용없다.’라는 옛 속담은
얼마나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말인가.
소를 잃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더 튼튼한 외양간을 만들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
예방은 더 나은 삶을 위한
필수적 수단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

“디자이너요? 저 좀 그려주세요!” 
디자이너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말들. 여전히 디자이너가 단지 그림을 그리는, 예쁜것을 만드는 직업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작업물은 디자인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본질을 이해하고 사용자에게 좋은 경험을 전달하는 작업물을 만드는 것이다. 이 점이 많은 사람이 디자인은 문제 해결의 과정이라 말하는 이유다.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수많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CCTV증설, 지역 순찰 강화 등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어두운 골목, 노후화된 주택 등으로 이루어진 마을은 관리가 더욱 이루어지지 않아 생활형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하드웨어 위주의 솔루션이 대부분인 기존의 범죄 예방의 방법은 투입 비용과 운영, 관리 측면의 한계가 많고, 실제 주민들이 체감하는 범죄 예방 효과도 지속적이지 않은 한계가 있다.

디자이너는 이런 사회적 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을까?

염리동 소금길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디자이너와 이해관계자


환경디자인을 통한 범죄 예방
셉티드 (CPTED)


위키백과의 사전적 정의를 빌려 각색하면 ‘범죄 예방 환경 설계(CPTED)란 건축 환경 설계를 이용해 범죄를 예방하려는 연구 분야로서 다양한 안전시설 및 수단을 적용한 도시계획 및 건축설계.’ 라고 한다. (어렵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행동유도관점에서 범죄 가능성을 애초에 배제해주기 때문에 범죄 예방에 효과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학교, 공원등 다양한 공간에서 활용되는 셉티드는 슬럼화가 진행되는 올드 타운에서 특히 많이 사용 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을 시작으로 기존의 물리적인 환경 개선 뿐만 아니라 주민 커뮤니티 회복과 활성화를 통한 접근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국내 CPTED의 시작
염리동 소금길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염리동은 노후된 지역 환경으로 인해 주택 무단침입, 특수절도 등의 범죄 기회 요소가 작용하는 동네였다. 주민 사이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거리감 또한 주민들에게 범죄 피해 두려움을 유발하였다.
서울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CPTED를 활용하였다.

먼저 오래전 소금 창고에서 유래한 지명의 의미를 살려 ‘소금길’이라는 마을 이름을 만들었다. 단순히 범죄예방의 원칙만 내세우는 게 아닌 마을을 브랜딩하는 이유는 마을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과 애착심, 이웃과의 유대감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요소이다.
소금길의 범죄예방 핵심 아이디어로는 인적이 드물고 두려웠던 골목길이 활용되었다. 2개 코스로 이루어진 1.7km의 소금길은 도보로 40분이 소요되는 운동 코스이다. 소금길의 전신주는 코스 안내지도, LED번호 표시, 안전벨 등이 설치되었다. 지역 주민들의 산책코스로 바뀐 골목길은 유동 인구를 늘게 하여 자연스럽게 범죄예방 효과를 높여주었다.
또한 ‘소금지킴이집’은 비상벨과 IP카메라 등이 설치되어 주민들이 위급할 때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이다.

출처 :(주)샘파트너스 홈페이지

염리동 소금길의 사례는 범죄예방의 5가지 주요 원리(자연적 감시, 접근 통제, 영역성 강화, 활동의 활성화, 유지관리)를 실현하여 범죄 예방의 효과를 가져온 것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참여를 자연스럽게 유도하여 관계를 회복하고 서로 긍정적인 관계로 발전하게 된 데 의미가 크다.
프로젝트 후 설문에 따르면 78.6%의 주민이 범죄 예방에 도움을 느끼고, 42.3%의 주민이 이웃과의 관계가 좋아졌다고 응답했다. 관리 부족으로 낙후된 동네는 안전하고 이쁜 동네로 급부상하였고 셉티드의 대표적인 사례로 많은 지역에 벤치마킹되었다.

2012년 염리동 소금길이 만들어진 이후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 염리동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골목에 사람들은 돌아다니지 않으며 전신주 사인에는 전단지가 붙어 있고 사람들이 떠난 집 앞은 쓰레기로 가득하다. 재개발로 인해 많은 주민이 마을을 떠난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주민끼리 소통하고 많은 사람이 찾던 동네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울보파파 (heryunjeong)
출처 :네이버 블로그 울보파파 (heryunjeong)

염리동 소금길 뿐 아니라 이미 많은 동네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고장으로 작동하지 않는 시설물, 다시 단절되는 주민과의 소통 등 마을을 대상으로 하는 CPTED의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주민이 범죄예방의 실체가 되는
CPTED 2.0

지역사회를 위한 공공디자인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속가능성’이 아닐까 싶다.
마을에 범죄예방 시설물이 적용되면 처음엔 주민들이 관심을 둔다. 하지만 지속해서 주민들의 관심과 행동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 실패한 프로젝트가 되고 만다.
주민이 솔루션의 실체이자 주체가 되어 시간이 지나도 자발적으로 진화하는 형태가 앞으로 CPTED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동작구 흑석동
'함께하는 6번가'

2016-17년 진행된 동작구 흑석동의 사례는 기존 CPTED에 대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중앙대 중문에 위치한 해당 지역은 건물 대부분이 노후화되고 밀집되어있었다. 주민의 80%는 중앙대 학생들이고 학기 중에만 단기로 거주하기 때문에 원주민들과 유대감 형성에 한계가 있었다. 특히 마을 환경 관리 문제로 많은 주민이 갈등을 갖고 있는 동네였다.

프로젝트전 중앙대 중문 지역


‘함께하는 6번가’라는 마을 브랜드는 프로젝트의 컨셉인 ‘빛’을 모티브로 하여 젊은 주민들과 오래된 마을이 조화로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해당 지역의 주민들이 가장 두려움을 느끼는 요소인 어두운 골목은 주민들이 스스로 밝히는 안전한 골목이 되었다.
대문현판과 함께 설치되는 LED 대문 방범등은 집주인이 전기료를 부담한다. 물론 가로등의 전기를 사용할 수 있지만, 핵심은 이를 통해 대학생들이 집주인을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우리 동네’ 안전에 관해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이웃으로서 인식한다는 점이다. 또한, 집주인들은 함께 부착된 대문 현판을 통해 더욱 쉽게 세입자를 받을 수 있고 내가 관리하는 안전 시설물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인지하고 관리하게 된다.
그 밖에 빗자루 사용 횟수가 누적되어 조명이 켜지는 ‘6번가의 빗자루’, 쓰레기 배출 시간을 알려주는 ‘쓰레기 배출 신호등’, 같은 건물에 사는 세입자끼리 소통을 돕는 ‘세입자 소통 게시판’ 등은 마을의 환경 개선, 범죄예방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방법이다.
단순히 설치되고 끝나는 시설물이 아닌 주민들이 완성해 나가는 이러한 형태의 시설물을 제공함으로써 주민들의 지속적인 참여를 유도하였다.


‘함께하는 6번가’의 핵심은 단지 니즈 파악의 목적으로서 역할을 했던 주민들이 더 나아가 프로젝트가 종료된 이후에는 솔루션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주체가 되었다는 점이다.
프로젝트가 종료된 이후 대문현판과 LED 방범등은 추가로 제작되어 더 많은 주민이 참여하는 성과로 이어졌고, 쓰레기 배출 신호등은 조금 변형된 형태로 다양한 동네에 추가 제작되었다.
또한, 주민 스스로 안전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웃에 대한 신뢰도가 전에 비해 높아진 점도 주목할만한 성과로 보인다.


결국, 안전이란건 누군가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닌 주민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디자이너는 지역사회가 변화할 수 있도록 플랫폼(토대)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과연 ‘함께하는 6번가’가 얼마나 지속적으로 그리고 더 끈끈한 안전마을이 되는지는 두고 봐야 하겠다.


*

(주)샘파트너스,http://sampartners.co.kr/portfolio-item/%ed%95%a8%ea%bb%98%ed%95%98%eb%8a%94-6%eb%b2%88%ea%b0%80re-town-branding-andservice-design/

(주)샘파트너스, http://sampartners.co.kr/portfolio-item/design-for-crime-prevention/

시대가 바뀌어도 결국 우리가 모여 사는 마을, 마을을 구성하는 구성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서로에 대한 작은 관심, 소통 그리고 배려입니다.

BXRS | 안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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