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사진을 찍는다며 수업을 조금 일찍 끝마쳐주길 원하는 학생들의 요청에 궁금함을 못 참고 물었다.
내가 강의하는 OO여대는 졸업 사진을 봄, 가을 두 번 찍는다고 했다.
남녀가 자유롭게 다니는 일반 대학처럼 생각했었던 찰나에 든 생각,
참! 여긴 여자들만 다니지!
여자들은 군대에 가지 않기에 특별한 개인 사정이 있지 않은 한 휴학은 거의 하지 않고 졸업하고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쉬는 시간에 평소 말을 잘하던 여학생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졸업사진을 두 번이나 찍어요?
'참~ 교수님도~ 여긴 여대잖아용!'
여대는 졸업 사진에 공을 많이 들이나 보다.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내게 여학생의 이어지는
이야기는 나만 모르고 있었던 세상 이야기처럼 흥미로웠다.
"졸업 사진 촬영 비용이 얼마인지 아세요?"
"20~30만 원 정도 아니에요?"
"헐~ 그건 아주 옛날이구요~ 교수님~ 요즘은 100만 원이 넘어요."
"게다가 사진 촬영 때 입을 옷, 구두, 메이크업, 머리까지 하는데 봄, 가을 두 번하면
300~400만 원은 금방 넘어요"
"네?? 왜 그렇게 비싸요? 거의 한 학기 등록금 정도네요? 그렇게 공을 들이는 이유가 있어요?"
"여대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요~ 저희 졸업 앨범이 중매 회사에 넘어간다는 말이 있어요~
중매 회사에서 남자 쪽에 건네주고 남자들이 픽해서 만남을 주선하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예전부터 전통적으로 이렇게 하나 봐요~"
이 세상엔 내가 모르는 일들이 참 많았다.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게 한심했다.
그 순간 들었던 생각은
딸 키우는 것도 참 힘들다.
졸업 사진을 찍기 위해서 드는 돈 항목에 빠진 게 하나 있다.
명품백
(나는 남자라 잘 모르지만) 여자들은 예쁜 옷에 어울리는 예쁜 백(가방)이 반드시 있어야 하나보다.
그냥 어울리기만 하는 정도로는 안되고 있어 보이는 명품백도 사야 한다고 그 여학생은 말했다.
여학생에게 물었다.
'너무 돈이 많이 드는데? 돈 없는 학생이 거기에 명품백까지 하려면...?'
그 정도 돈도 없으면 여기 오면 안 되죠.
충격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대학교는 등록금만 있다고 다닐 수 있는 건 아니다.
물론, 방학 때는 알바도 뛰면서 학비를 보태는 건 당연하지만 학기 중에는 알바를 해내면서 학업에 집중을 하기는 어렵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는 없다. 곰팡이 냄새나는 반지하 단칸방보다는 이왕이면 역세권의 깔끔한 오피스텔 원룸에서 살기 위해서는 보증금, 월세를 낼 수 있어야 하고 밥을 안 굶고 다니려면 생활비도 있어야 하고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친구들하고 한 잔 하면서 친분을 다질 정도의 돈은 있어야 한다. 대학생이 돈이 어디 있을까. 등골이 휘게 벌어다 자식한테 쏟아붓는 부모의 돈 아니면 나올 데가 없다.
'돈 없으면 이 학교 오지 말아야죠'라고 말했던 여학생은
지금은 결혼해서 애 둘을 낳고 잘살고 있다.
옛날에 나한테 했던 말을 전혀 기억 못 하겠지만
분명 애 둘을 낳고 키우다 보면 스스로 느끼고 깨닫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동안 부모님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고 아꼈는지,
남의 돈을 버는 게 얼마나 어렵고 치사하고 어려운지,
왜 내 자식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그렇게 하나씩 배우면서 우리들은 진짜 어른이 된다.
그렇게 하나씩 실패를 경험하고 만들어진 '진짜버터막걸리'에는 큼지막한 진짜 버터가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