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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욱 교수 Mar 18. 2023

나는 겨울이 너무 싫어요. SAD

계절성우울증(SAD, Seasonal Affective Disorder)

난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너무 싫다.

추운 겨울엔 실내, 외 온도변화를 막기 위해 귀까지 덮는 비니모자,

기모 장갑과 겨울 옷 사이를 파고드는 핀셋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손목 토시,

기모바지 안에 내복을 입어도 내복과 양말 사이를 파고드는 찬바람을 막을 수 있는 발토시까지.

옷장 한 구석엔 어떻게 하면 찬 바람으로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찾은 나만의 겨울용 핫-아이템들이 가득하다.



봄, 가을도 좋지만 난 달궈진 프라이팬 위에 서있는 것 같은 여름이 더 좋다.

더운 날씨엔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들어가도 좋고,

에어컨의 시원한 냉기가 도는 사무실에 있어도 좋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계곡물로 세수를 해도 행복하고,

러닝셔츠가 축축할 정도로 땀에 젖은 채 수 십 킬로미터 자전거를 타도 기분이 좋다.

선글라스 너머로 푸르고 눈부신 하늘을 보는 것도 좋다. 여름엔 어디서 무엇을 해도 기분이 좋다.


여름아, 너는 무슨 일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어.

여름을 좋아하는 내 성향으로 계절과 관련된 몇 가지 경험치들이 생겼다.


겨울은 돈 먹는 괴물이다.


첫째, 겨울은 옷, 난방용품, 가스비, 등유비를 포함 각종 소모품이나 난방 관련 수리비 지출이 크다. 겨울이 없었다면 우리 삶은 조금 더 편안해지고 인간관계도 이렇게 팍팍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도시가스를 사용하는 아파트야 조금 덜하지만 시골에 있는 주택의 경우에는 겨울을 나기 위해 등유 120만 원 이상 넣어야 한다. 심지어 두꺼운 겨울옷을 세탁하는 전기, 수도비용도 훨씬 많이 나온다.

둘째, 겨울은 초록초록한 자연의 색을 메마른 사막처럼 건조하게 만든다. 혹자는 겨울이 있어야 봄에 피는 꽃이 예쁘다고 말하지만 겨울이 없다면 언제나 꽃들이 만발하고 중국에서 넘어오는 황사와 미세먼지, 난방연기는 함께 하지 않아도 된다.

셋째, 겨울은 늘어나는 1인 가구와 노인들, 아이들 그리고 넉넉지 않은 사람들을 여름보다 더 힘들게 만든다.  더운 여름에 냉방을 제대로 못해서 느끼는 고통보다 온몸을 파고드는 칼바람에 난방을 제대로 못해 느끼는 고통이 더 강하다.


넷째, 겨울 동안은 실내에 갇혀있어야 한다. 추위, 눈, 미끄러움, 결빙, 블랙 아이스, 미세먼지 같은 환경적 요인들이 외출을 포기하게 한다. 실내에 갇혀있어야만 하는 데다가 낮이 짧고 밤이 길다. 이것은 '계절성 우울증', '계절성 정서장애(SAD)'을 만든다. '겨울이라고 집에 틀어박혀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운동하고 돌아다녀라'라고 하는 말은 오지랖이다. 미끄러운 길에 잘못했다가 주저앉아 엉치뼈라도 부러지면 쉽게 낫지도 않는다. 그렇게 강제적으로 몰아내는 것도 이제는 '학대'에 해당한다.

다섯째, 우리나라는 12월부터 1,2,3월 중순까지 3.5개월(100일 동안)은 '겨울시즌'이다. 365일 중 100일은 너무할 정도로 길다.


여섯째, 겨울과 여름의 큰 온도차이는 지출하지 않아도 될 돈이 많이 들게 한다. 우리나라는 한 여름에는 38도, 한 겨울에는 -20도까지 온도차이가 50도 이상이다. 이렇게 넓은 폭의 온도차이는 차량, 건물의 내구성을 약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지출 비용을 늘게 한다.

일곱째, 겨울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비타민D는 햇볕에 최소 15분 이상 노출돼야 생성된다. 그렇지 않아도 구릿빛 몸은 좋아하지만 얼굴 타는 건 싫어해 햇볕을 싫어하는 한국사람들의 비타민D 수치가 낮은 편인데 겨울을 지나면서 더 낮아진다. 비타민 D 결핍은 피로, 두통, 근육통, 우울증, 인지 장애와 같은 증상과 관련이 있다. 비타민 D가 부족하면 골연화증, 골감소증, 골다공증과 같은 뼈 이상을 일으키고 근력을 저하시켜 극심한 피로를 유발한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피곤한 이유에 겨울도 한몫을 한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셨다면 겨울을 싫어하는 분일 거라 추측된다.

나처럼 초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도 겨울 동안은 정신적 평온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겨울도 행복하고 긍정적이 되려면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겨울이 없어질 수 없다면 겨울을 피해서 따뜻한 나라에서 지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과감하게 포기했다. 대신 겨울에 마실 K-사케를 지금부터 가득 빚어놓고 지인들 초대해서 길고 긴 겨울밤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우리는 혼자 있을 때 추위를 더 느낀다.

K-사케, 함께 드릴 분?



- 안산술공방 이정욱 작가

- 공방 주소: http://kwine911.modoo.at

reference image source: Getty Images / blogwhiteoaks.com / Marco Kelecevic / Getty Image bank / 조선일보 조인원기자 / 매일일보 김도훈기자 / totalhealthchiropractic.com.au / japanlivingguid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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