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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욱 교수 Apr 03. 2023

부탁해, 호흡기를 그만 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죽음'이라는 말은 커다란 돌덩어리로 가슴을 짓누르는 것처럼 무겁고 암울한 주제지만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어떤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건 스스로 선택할 수 없지만 현실의 삶을 종료하는 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내년 봄에도 함께 벚꽃을 못 본다는 건...
The last cherry blossom


스스로 삶을 끝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본인의 의지가 아님에도 여러 가지 사고나 뇌출혈, 심근경색, 노화, 지병 등 많은 이유들로 삶을 끝내지 못하고 스스로 자가호흡을 하지 못해 인공호흡기(콧줄)에 의지한 채 앙상한 뼈와 의식 없는 퀭한 눈으로 침대에 누워 삶 같지 않은 삶을 사는 환자들이 많다.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의학적으로 사망하지는 않았다는 사실 하나로 보호자는 눈물로 밤을 새우며 환자를 돌보지만 안타깝게도 회생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없다.


죽은 사람은 죽었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특히나 부모자식 관계라면 부모는 자식을 보내지 못하고 자식도 부모를 보내지 못한다. 일을 하지 못하고 환자를 돌보다 보면 번듯하던 아파트는 시간이 지나며 전세로, 월세로 줄어들고 통장잔고는 환자 간병비와 치료비로 금방 바닥이 드러난다. 의료보험은 최소한의 치료비만 보장해 줄 뿐 모든 보장을 해주지는 않는다.


난 남은 식구들의 짐이 되고 싶지 않다.


만약, 내가 그런 상태의 환자가 됐을 때, 남아있는 우리 식구들이 연명치료를 한다면 난 절대 반대다. 내가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라면 '연명치료'를 중단하자고 의사 표현을 할 수도 없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19세 이상의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향후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연명의료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향을 문서로 작성해 둘 수 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건복지부의 지정을 받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보건소, 보건의료원, 보건지소 및 건강생활지원센터)을 방문하여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작성해야 한다. 등록기관을 통해 작성·등록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되어야만 법적인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유언처럼 수기로 작성하거나,
음성 녹음으로 작성된 의사표현은 법적 효력이 없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의 담당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희망하는 사람에게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의의 및 작성 전 알아야 할 사항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고 상담일지를 작성한다. 담당자는 작성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듣고 이해한 후, 자발적으로 법정양식에 따라 유효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지원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한 설명 및 작성지원을 하도록 되어있다.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의 연명치료를 중단하겠다고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내가 미리 해놓는다면 자식의 큰 짐을 덜어주지 않을까?

병원에 오래 누워서 젊었을 때를 추억하면 죽을 때만 기다리는 건 아닌 것 같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할머니께서 '니들한테 짐이 되면 안될 텐데'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제서야 그 말 뜻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 것 같다.


술의 색도, 삶의 색도 모두 다른 것 같지만
결국엔 같은 색이다.



안산술공방 이정욱 의학전문작가

http://kwine911.modoo.at

reference image/text source: medicalbag.com / hankookilbo.com / junsung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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