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하십니까?'의 함정
작은 글씨로 써진 '서비스 이용약관'에 동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면 10대부터 90대까지
카카오, 인스타그램, 네이버, 구글, 삼성 계정을 가지고 있다.
이 기업들의 계정에 가입할 때는 반드시 '서비스 이용약관'에 동의해야만 한다.
혹시 지금 그 기업들이 제공한다는 '서비스'가 어떤 내용인지,
어느 범위까지 '개인정보'를 수집한다고 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지랄 맞은 '서비스 이용약관'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법률가가 아닌 사람은 읽어도 정확하게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어렵게 되어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습관처럼 '체크' 버튼을 누르고 '동의합니다'를 누른다.
동의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가 없습니다.
동의하는 순간부터 당신의 모든 활동은 앱을 통해 서버에 기록되고 저장된다.
어떤 사이트에 접속했는지.
어떤 검색어를 찾아봤는지.
언제 누구에게 어떤 파일이 첨부된 이메일을 보냈는지.
어떤 상대와 부정행위를 하고 있는지.
어떤 상품을 검색했는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누구와 통화를 많이 하는지.
어떤 콘텐츠를 좋아하는지.
어느 Wifi로 세계 어느 지역에서 접속했는지.
언제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자주 먹는지
건강 상태는 어떤지
모든 디지털 기기(스마트폰, 태블릿, PC)를 쓰는 순간
그들은 티 내지 않고 숨어서 당신의 모든 움직임을 24시간 모니터링하고 있다.
서비스에 동의했기 때문에.
당신의 모든 행동방식, 취향, 패턴은 숫자 통계로 변환되거나
또는 변환되지 않은 상태로 대형 포털 기업들과 제휴를 맺은
제품 판매사(쿠팡, 알리, 지마켓 등)에 제공되고 판매사들의 광고에 활용된다.
관심으로 한 번 검색했던 제품 사진이 뉴스를 보거나 다른 검색을 할 때마다
'이거 찾았었지? 지금이 기회야 빨리 구입해'라며 반복해서 보여주는 건 우연이 아니다.
디지털 세상에 우연은 없다.
당신이 이미 동의했기 때문에 광고를 내보내는 기업들은 법적 문제가 없다.
지금은 광고에 건강상태(심박도), 생체정보(지문, 홍채, 안면인식), 얼굴 표정, 감정까지 수집된다.
토스 같은 앱은 돈 몇 십원으로 서로 간 네트워크를 만들며
대한민국의 모든 이들에게 자산을 관리해 준다는 명목으로 개인의
재산 상황(자산, 부채, 지출내역, 보험내역 등)을 자기 손바닥 보듯이 들여다보고 있다.
구글은 모든 휴대기기 제조사에게 안드로이드 OS 사용권을 무료로 주는 대가로
수많은 안드로이드 앱을 다운로드하여 사용하는 휴대기기 사용자의 행동 정보를 수집한다.
수집된 사용자 행동 정보는 어떻게 사용될까?
기업들의 수익을 높이는 데 사용된다.
21세기 자본주의는 디지털 정보를 바탕으로 정치, 경제, 사회, 통계에 당신의 정보를 이용한다.
수많은 사용자의 정보들은 어디로 흘러갈까?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지만
정보와 돈의 흐름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흘러간다.
정보와 돈이 모이는 곳은 소수의 자본가, 자본기업들이다.
90년대 전산학개론을 배웠던 세대가 알고 있는 '빅 브라더' 시대는 이미 지났고,
이에 저항하고자 했던 목소리는 기기의 편리함 속에 묻혀버렸다.
일개 하나의 기업에 불과한 카카오 먹통사태로 대한민국이 멈춰버렸다.
친숙한 캐릭터를 무료로 사용하게 뿌리면서 기업들은 오직 '돈'에 관심이 있는 그들의 모습을 감춘다.
이제 디지털 정보가 올무처럼 우리를 옥좨는 일들이 더 크게 벌어질 것이다.
카드 대금 연체를 한 사람은 신용도가 낮아지며 회사로 신용 등급이 통보될 수도 있다.
은행 잔고가 부족한 사람이 해외여행을 자주 나가면 국세청으로 출입국 기록과
카드 사용기록이 통보되며 자금 출처를 소명해야 한다.
평소 회사나 집 근처에서 소소한 비용을 카드로 지불하던 사람은 지방 출장을 가서 숙소 호텔을
결재하게 되면 특이동향으로 카드사에서 본인 확인 전화를 받을 수 있다.
인터넷에서 새로 나온 자동차를 검색했던 사람은 출, 퇴근 시 엘리베이터 광고에서 검색했던
자동차 세일 소식을 접할 수 있다.
임신 여부를 알고 싶은 미혼모가 검색한 정보로 마트의 유아용품 코너에서 출산준비 광고를 내보낸다.
인터넷으로 제주비행기를 예약하고 제주렌터카를 잡고, 숙소를 예약했던 사람은 제주행 비행기 안에서
숙소 근처의 수많은 맛집 광고를 접할 수 있다.
다양한 디지털 검색 정보와 위치 정보, 고성능화된 CCTV들이 범죄 수사에 활용되는 건 이미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반대로 우연이 겹치게 된다면 뜻하지 않게 피의자로 지목될 수도 있다.
21세기 자본주의가 개인에게 붙이는 태그(Tag)
'서비스 이용약관에 동의합니다.'
거부할 수 있을까?
누군가 내 정보를 모두 다 알고 있다는 건 부정적인 결과가 더 많다.
누군가가 마음만 먹으면 사는 곳, 다니는 직장, 자주 주문하는 물건, 주로 가는 식당,
주로 가는 장소와 이동수단, 가족관계, 출신학교와 전공, 과거 인연까지
마음만 먹으면 캐내지 못할 것이 없는 현실이다.
우리는 저항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술은 아직 유일무이한 아날로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