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선착장, 물속으로 간 남자

그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by 이정욱 교수

왕복 6시간, 86km


분당 집에서 팔당대교까지 왕복에 걸리는 시간 그리고 거리다.


처서가 지나고 여름과 가을이 공존하는 지금 계절은

이어폰으로 좋아하는 Yamazaki masyoshi(야마자키 마사요시)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노래를 들으며 자도(자전거 도로)를 달릴 생각만 해도

흥분에 몸서리가 쳐진다.

(일본에서는 야마자키 마사요시 전, 후로 음악이 나뉜다고 할 정도로 음악 장르를 뒤집은 가수다.)


게다가 토요일.

모든 조건이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이런 날에 피곤하다는 핑계로 집에서 TV 리모컨만

만지작 거리며 시간을 보낸다는 건 계절과 날씨에 대한 심한 모독이다.


1시간 반 정도를 달려 가을 오후 햇빛에 반사되는 롯데타워의 거대한 몸집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잠실선착장에 도착했다.

한강을 보며 웅성거리며 몰려있는 사람들.


뒷 골을 지나는 싸한 느낌. 맞다. 자살자였다.


수상구조대 보트에서는 산소통을 맨 구조대가 물속으로 수색을 위한 입수를 하고

바로 옆에는 경찰과 119 구조대 20여 명이 익숙한 듯이 직벽에서 시신을 인양할 수 있도록 작은

사다리 도르래를 설치하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페달을 멈추고 그들을 지켜보는 한 무리의 사람들 틈에 끼어들었다.

내 왼쪽에 구릿빛 얼굴의 남자 한 분이 내 오른쪽에 있는 연세 좀 있어 보이는

여자분에게 물었다.


남자: '자기 여자 친구면 같이 뛰어 들어가지. 남자 친구나 동료니깐 옆에서 그냥 서있지. 안 그래요?'

여자: '모르겠어요. 저는 상황이 벌어진 후에 와서요'

남자: '죽을 용기로 살지 왜 죽어'


나도 모르게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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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그분이 나를 보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꺼낸다.


'내가 올해 60인데요.

잠실 신천동 이 근처가 집이에요. 지금은 옆으로 옮겼지만...

한 때는 나도 살면서 너무 힘들고 지친 때가 있어서 몽촌토성 공원 벤치에서 앉아있다 굴러가는

낙엽을 보며 생을 마감할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종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오후 5시~6시쯤 되면 이 동네는 성당인가 교회인가에서

종을 쳐요. 지금도 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종소리를 들으니깐 눈물이 나는 거야.

그래 저 종소리 나는데 가서 한 번 기도나 해보고 나서 죽더라도 죽자며

그곳을 찾아갔고 그 이후엔 그곳에서 긍정의 기운을 얻어 기도의 힘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예상치 못하게 사고 현장에서 만난

생판 초면인 남자분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전 같으면 '별 이야기를 다 듣네...'라고 지나쳤겠지만

오늘은 공감이 됐다.


실제로 신천동엔 신천 성당이 있고, 지금은 모르겠지만 옛날엔 종을 쳤다.

그 소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종소리가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사람 마음을 훑고 지나가는지 안다.

어슴푸레한 오후, 저녁 식사 시간 때쯤 울리는 성당의 종소리는

들어왔던 어떤 음악보다 감동스러웠다.


내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건가?

얼마 전 수녀님을 만난 이후로 다시 신앙의 불씨가 살아나는 건가?

60세 남자분이라고는 하지만 건장한 체구의 희끗희끗한 머리가 내겐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 역시 내가 그만큼 익어서일까.

그 남자분은 내 나이도 모를뿐더러

모자에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쓴 내 얼굴도 모른다.

내 말투에 나이가 묻어 나왔을 수도 있다.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선생님.'


인생을 살면서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의 아픈 목격자가 된 아픈 자리에서

낯선 이와 나눴던 짧지만 속 깊은 대화가 그 자리를 벗어나 팔당대교까지 페달을 굴리며

가는 혼자만의 자전거 길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돌아와서 '잠실선착장'으로 검색을 해보니

내가 그 자리를 벗어난 한 참 후인 5시경에 시신을 인양했고

회사 동료와 술을 마신 후 더워서 수영을 한다며 들어가면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팩트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젊은 친구가

안타깝게도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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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당대교는 서울이 아닌 하남시에 있다.

지난 폭우에 가는 다리 몇몇이 유실돼서 복구 중이었지만 알록달록한

자전거 복장의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힘이 넘치는 자전거 동호회의 젊은 친구들은

'지나갑니다 아~' 외치며 위협스럽게 곁을 스쳐 지나가고

아빠 앞에서 작은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재잘대고

기력이 없어 보이는 노인은 내려서 낡은 자전거를 끌며 간다.


우리 곁에, 늘 오는 자전거 도로에도 인생이 그대로 지나가고 있다.

언젠가 작은 자전거를 타던 아이가 로드 사이클을 탈 것이고,

로드 사이클을 타던 젊은이가 노인이 돼서 낡은 자전거를 타며

한강의 상류, 하남의 팔당대교를 또 올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 길을 나는 어떤 모습으로 찾을까.

물속에 가라앉은 시신은 찾았을까. 잘 수습했을까.

가족들에게 연락은 했을까. 가족들은 어떤 마음일까.


따뜻한 집으로 되돌아가며 다시 지나가는 잠실선착장,

그 자리는 마리나에서 빌린 카약을 타고 노를 젓는 20여 명의 커플과

굉음을 내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제트스키를 타는 젊은이들.

그 건너편 잔디밭에서는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사람들.

붉게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캠핑 의자에 앉아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할 필요도

궁금할 이유도 없는 사람들이 그 자리를 완전히 차지하고 있었고

내 자전거도 빠르게 그 자리를 지나쳐왔다.


내가 뭘 안다고 오늘 본 사건 하나로 인생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다소 길었단 라이딩으로 뻑뻑한

허벅지처럼 젊은 사람의 허망한 죽음 그리고 너무나 빠른 상황 변화가

가슴도 뻑뻑하게 만든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

혹시 내가 과거에서 현재로 온 시간 여행자는 아닌지.

아니면 미래에서 현재로 온 시간 여행자는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미래에서 현재로 왔다면 더 맛있는 술, 더 향기좋은 술, 더 재밌는 술을

만드는 방법을 가지고 왔으리라.


- 안산술공방 이정욱 작가

- 공방 주소 http://kwine911.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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