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가서 OOO라고 하지 마세요.

그렇다. 난 OOO이 아니었다.

by 이정욱 교수

몰랐었다.


수녀님도 인스타그램을 하시는지.


술 공방을 차리면서 안산술공방이라는 인스타 계정을 만들어서

일반인은 쉽게 볼 수 없는 사진들을 하나 둘 올리는 재미에

빠져서 산지 수개월째.


낯선 아이디가 인친을 신청했다.

프로필을 살펴봤다.

안산에 계시는 수녀님이셨다.

'아~ 수녀님도 인스타를 하시는구나'


수녀님의 프로필에는 다가오는 추석 때 소외된 이웃들에게

전달해 드릴 소소한 음식(전, 식혜, 떡) 나눔을 위해 도움을 손길을 원하는 내용이 있었다.


'뭘 도와드릴 수 있을까?'

'아! 술 만드는 공방에서 드릴 수 있는 건 술인데... 괜찮을까?'


금욕의 생활을 하시는 성직자에게 '술'을 드린다고 하다니...

'이선생! 정신 차려라.'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냐. 본인이 드시는 게 아니라 소외된 이웃들에게 드린다고 하잖아?'

'포도주도 주님이 피인데'

'게다가 추석 때 차례상을 차리는데 쓰시라고 드리면 되는 거잖아?'

스스로 열심히 명분을 만들고 확신이 섰을 때 조심스레 몇 자를 적었다.


'술 공방 하는 사람이에요. 택배 보내고 싶은데 주소 좀 부탁드려요'

짧은 시간에 답장이 왔다.

'감사해요. 직접 갈게요'


그렇게 해서 늦은 오후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긴장했다.

성당 안나 간지 십 년은 넘은 것 같은데...

수녀님이 나를 혼내러 오시는 건 아닌지.

보자마자 기도하자고 하시는 건 아닌지.

머릿속으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gettyimagesbank


베일, 회색 노비씨아를 쓰신 수녀님이 들어오신다.

얼굴이 옛 되시다.

OOO 마리아 수녀님이시다.

깔깔깔 웃음소리도 환하신 모습이 내가 어릴 적 엄숙하게 보아왔던

연세 드신 수녀님의 고정된 틀 속에서 답답하게 있던 나를 꺼내 주는 환한 웃음이었다.


공방에서 5분 정도의 거리에 3분의 수녀님들이 함께 아파트 공동생활을 하신다고 한다.

이곳에 수녀님들이 오시게 된 이유는 4.16 세월호 때문이라고 한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힘든 사람들,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고통을 공유하고 먼저 떠나간 아이들을 위해 기도를 같이 해줄 사람들이 필요해서

교구 차원에서 결정하고 그룹을 만들어 파견하셨다고 한다.


'이제 그만하지'

'벌써 몇 년째야 세월호는 지겹다'라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고

은근슬쩍 동조하는 쪽으로

기울어가던 내 가슴이라는 호수 가운데

아이를 키우는 아비로써 작은 감정의 물결, 그 요동이 인다.


꽃동네대학교에서 의료 복지학을 전공해서 병원에 대해 잘 알고 계셨다.

특히나 요즘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


고아원, 보육원의 위탁 기간이 종료되어 사회로 나오는 애들.

기껏해야 20살인데 그 애들 혼자서 자립하라고 등 떠미는 사회 복지 시스템

문제에 대해 깊은 공감을 했다.


부모님이 계시고
부모가 지원을 풍부하게 해 주던
나 자신도 20살은 두려웠다.



나도 모르게 고해성사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가족이 없고 부모가 없는 20살 애들을 사회로 억지로 밀어대는 건

내 기준에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누구에게나 두렵다.
가족이 없다면 더


그렇다고 나한테 뭔가 뾰족한 대책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면서.


수녀님은 13년 차 막내 수녀님이라고 하신다.

성격이 밝고 쾌활해서 선배 수녀님들이 걱정을 많이 해주셨고, 기도도 많이 해주셨다고 한다.

수녀님이 직접 기도를 해주신다니...


신림동에 사시는 고모님이 가끔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다고 하시면

그냥 감사해요라고만 건성으로 대답했었는데.

저 수녀님이 받은 기도와 내가 받은 기도에는 차이가 없는데.

바로 옆에 있는 벅찬 행복의 가치를 이 나이가 되도록 몰랐었다보다.

나이를 헛 먹었나 보다.


신학대를 졸업해야 사제가 되는데

이번에 부천에 있는 서울신학대 신입생 지원자가 30명도 아니고

겨우 3명뿐이었다고 한다. 충격이었다.

내가 10대 일때는 그래도 열심히 성당을 다니던 몇 명은 나중에 신학대에 간다 안 간다 하는

이야기들이 들렸었는데...

지금은 학생수도 없을뿐더러 사회 분위기가 종교적 가치보다 경제적 실리 추구 가치가

더 비중이 커서 수도회 내부에서 신앙 활동에 대해 전반적으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 듯하다.


공방에서 가장 큰 사이즈의 1.8리터 술, 커피와 생강을 넣어 만든 내 마음대로 이름 붙인

'스타OO 술' 이름을 붙인 '스타술' 한 병을 꺼내서 얼음과 같이 꼼꼼하게 포장을 해드렸다.

이 한 병으로 부족하지 않을는지.

몇 명에게 나눠드리는지는 모르지만 소분해서 나누면 양이 적지 않을까 걱정도 들었다.

이번에는 그냥 있는 술 중에서 한 병을 드리는데

내년에도 공방을 계속하고 있다면 내년에는 수녀님께 드릴 술 아니 수녀님이 소외된 이웃들에게

나눠 드릴 술, 차례주를 큰 통으로 하나를 맞춰서 드리고 싶다고 했다.


수녀님이 내게 '성직자가 돼보라고 권유받으신 적 없으세요?'라고 물어오신다.

깜짝 놀랐다. 노는 것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고 금욕과는 거리가 먼 내가???

손사례를 쳤다.


수녀님이 내게 주신 좋은 말씀은 민망해서 여기에 차마 쓰지는 못하겠다.

조용히 나 혼자서 갖고서 꺼내서 다시 생각하고 또 꺼내보고 싶다.

수녀님의 한 말씀, 한 말씀이 차디 찬 계곡물로 팔을 씻을 때처럼 가슴속을 흘러내렸다.


안산 옆 시흥에 수녀님들이 농사짓는 포도밭이 있다고 한 번 구경 오라고 하신다.

아마 포동 부근에 포도밭이 많은데 그쯤 어디에 밭이 있으신가 보다.

포도밭에서 수녀님들과 포도를 따는 내 모습이 머릿 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나는 자전거를 좋아한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고 청계산의 하우현 성당,

용인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성당,

김수환 추기경이 잠들어계시는 분당 근처의 천주교 용인 묘원,

성북구의 성당, 성북구의 프란체스카 수도원 등에 혼자 자전거 타고 찾아가서

사진 찍고 다니는 걸 좋아한다고 했더니

수녀님이 그러신다.

'어디 가서 냉담자라고 하지 마세요!' 하고 웃으신다.


그렇구나.

나는 매주 성당에 나가지만 않았을 뿐이지 분명한 천주교 신자였었다.


그래, 오늘부터 나는 냉담자가 아니다.





- 안산술공방 이정욱 작가

- 공방 주소 http://kwine911.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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