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잃은 소녀

그녀의 첫걸음

by 이정욱 교수
그 식당 밥이 맛있다고 했다.


그 말에 혹해 귀찮음을 이겨내고 찾아간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였다.

빨간 불을 받아 탄천이 내려다보이는 2차선 도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탁!' '탁!' '툭!'


KakaoTalk_20220907_161923064.jpg


땅바닥을 더듬는 얇은 막대 소리를 찾아 내 시선이 멈춘 곳에는

초등학생으로 돼 보이는 소녀가 학교 가방을 메고서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걷고 있었다.


소녀는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제 키만 한 기다란 지팡이를 들고

땅바닥을 더듬고 있었다.

그 옆에는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소녀의 지팡이를 이끌며 이곳저곳을 쳐주면서

'이건 OO야' '여기는 OO야'라고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뒤에는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소녀의 옷가지를 들고 천천히 따르고 있었다.


내겐 색다른 음식으로 혀 끝을 만족시키고 포만감을 느끼는 평범한 하루였지만


그 소녀에겐 오늘이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 세상 밖으로 첫걸음을 떼는 날이었다.


그녀에겐 세상 밖으로
첫걸음을 떼는 날이었다.



찰나에 많은 생각이 머리를 채웠다.


'아직 어린 저 애가 어째서 눈을 잃었을까?'

'자식에게 지팡이가 닿는 물건에 대해 설명해주는 부모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무엇보다 태풍이 지나간 후 눈이 부시다 못해 시리게도 파란 하늘을 소녀가 볼 수 없다는

생각에 턱 하니 말 문이 막혔다.


눈 부신 가을 하늘을
소녀도 볼 수 있게 되길



신호가 바뀌면서 그들을 뒤로하고 지나오면서 그 소녀의 첫걸음을 응원했다.

가능하다면 빠른 시간에 시력을 되찾아 우리처럼 푸른 가을 하늘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


우리가 쉽게 보는 높은 하늘, 아무렇지도 않게 걷는 보행자 도로, 익숙하게 먹는 음식

평범한 것들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큰 행복이고 축복이다.

모든 걸 감사하게 또 감사하게 생각하고 살자.


이름 모르는 그 소녀와 소녀의 부모님이 마음 편하게 행복하게 지내길 바라며 응원한다.


사무실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버튼에 양각된 점자 표지가 그 소녀의 손 끝에도

편안하게 느껴지길 바란다.



- 안산술공방 이정욱 작가

- 공방 주소: http://kwine911.modoo.at



이전 02화로또 당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