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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욱 교수 Aug 31. 2022

너를 진즉 OOO 싶었다.

'존중' 같은 소리

P는 이 회사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었다.


주식회사 OO는 OO역 3번 출구에서 나와 우편집중국을 지나서 나오는 

대형 오피스 건물 O층에 있다. 지금도 그곳에 그 회사가 있다.

도로 쪽으로 나있는 창 밖으로는  큰 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옆 쪽에 있는 창 밖으로 작은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나름대로 뷰가 있는 회사였다.

건물 옥상에서는 공항 쪽으로 가는 항공기 항로라서 가끔 감성을 충전할 수 있었다.


ramuzin.co.kr

P는 K 대표의 술 한 잔 하자는 제안에 OO역 양꼬치집에 함께 갔다.

K 대표가 좋아한다는 한라산 소주 한 병을 시켜 양꼬치가 구워지는 연기 속에서 세상 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가볍게 나눴다. 


취기가 살짝 오를 때쯤 K 대표는 P에게 답이 정해진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직원 10명 정도의 소기업은 입사를 권하기 전 지원자 성향을 알아내는 방법으로 이런 술자리를 

갖는다는 것 정도는 P처럼 직장 생활 경력이 오래된 사람이면 이미 알고 있다.


회사 대표가 입사 지원자를
알아보기 위한 술자리


P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희망연봉 O천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회사 규모를 보고 나니 O천은 과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1천만 원을 다운하고도 이 정도의 성장성이 뚜렷한 회사라면 일하고 싶다 라며 

K 대표가 기분 좋아할 만한 멘트로 되돌려 치는 P는 프로였다.

K 대표는 '처음에 제시한 그대로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그 말 끝에 

그게 존중이죠.


K 대표는 상대방에게 '봤지? 난 이 정도야~' 의미가 담긴 강력한 멘트를 던졌다.


이때 알아봤어야 했다.


K 대표의 멘트 하나하나가 수십 년 영업 현장에서 다져진 방어용 지뢰라는 것을.


보통 처음 만나는 사람에 대해 갖게 되는 이미지는 한정된 짧은 시간 동안 교류할 수밖에 없기에

서로 간 오가는 개의 말과 분위기만으로 사람에 대한 이미지로 최적화되어 저장된다.


 P가 대표를 파악하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OO업무를 위해 입사했지만 그곳은 NOTHING, 아무런 인프라도 없었다.

'아차 싶었다.' 

돌이키기엔 적어도 두 발자국은 지나온 것 같았다.


이 회사는 무역회사와 기술영업을 하는 한국 에이전트 형태의 회사였다.


회사의 경영지원팀은 50살 여자가 4-5명의 젊은 직원들을 데리고 전화를 받고,

견적을 내며 영업적 대응을 하고 기술직들 피를 말리는 A/S 스케줄링 업무를 하고 있었다.


이 여자는 회사 직원이면서도 K 대표와 부산 OO대학교 동문이며 회사 지분을 30%나 

가지고 있었다. 부산에서부터 벌써 20년째 솥밥을 먹고 있었다.

결혼은 했지만 그 이후의 생활은 철저히 베일에 싸인 여자.


몇 가지 알려진 사실은 그녀는 수산어업을 전공했으며 OO백화점 VIP이고 

향수 수집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과

조직 운영에 대해 1도 모르는 자기 스트레스를 팀의 직원들에게 풀며

여직원에게 '자기 집에는 드레스 방 없어?'라고 되묻는 기본이 없는 사람이었다.


K 대표의 또 다른 날개는 역시 부산의 같은 대학 동문으로 15년째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남자다.

P는 입사한 지 삼일째 되는 날 물리학과를 나왔다는 이 남자로부터 

'OOO이 뭔지는 알아요?'라고 하는 모욕적인 질문을 들었어야 했다.

P의 영어로 된 답변에 이 남자는 움찔했다. 

그랬다.  이 남자는 경영지원팀의 여자와 같이 우물에 갇혀있던 개구리 중 한 마리였다.




K 대표는 모든 직원을 아우를 수 있는 큰 사람이 아니었다.

외부에서는 대범한 척, 스케일이 큰 척 하지만

내부에서는 쉽게도 삐치며 본인을 마음 상하게 만든 직원은 회식에 부르지 않는 작디작은 사람이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태에서 P는 최선을 다해 일했다.


어느 날 회사 단톡에 '공휴일에 쉴 사람은 연차를 사용하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P는 단톡방에 '왜 본인의 연차를 본인이 쉬고 싶을 때 사용하지 못하는지?' 그리고

'왜 본인의 연차가 마이너스(-)로 시작하는가?'에 대한 평소 가졌던 질문을 올렸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출근 시간이 채되기도 전에 K 대표가 P를 호출했다.

P가 올린 질문에 대해 무척 불편한 심기를 가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다른 직원들은 P가 '용의 비늘을 건들었다.'며 걱정했고 어떤 직원들은 '속이 다 시원했다'라고 했다.

K 대표의 장황한 말을 듣고 나온 P는 그날 이후 어떤 회식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여름으로 넘어가는 날씨.

그동안 외국에서 수입, 판매하던 OOOO를 자체적으로 만들어서 판매하면 더 많은 이익이

남겠다는 의견들이 모아졌고 P에게 이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K 대표의 의견이 

한 축의 날개인 그 남자로부터 전달됐다. 


P는 본인이 하겠다고 했다. 

매일 출근 후 왕복 2시간 정도의 현장을 출퇴근하며 제품 개발에 매달린 끝에 완벽하게 완성했다. 

이 기간 동안 P는 K 대표로부터 끊임없이 '언제 완성되느냐' 질문을 받았고 P가 할 수 있는 말은 '뭐라고 말을 못 한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것이라 완벽하게 완성될 때 끝난 것이다.'라는 답을 수차례 반복하는 일방적 불신이 가득한 신경전을 벌였다.


제품 개발 시작 4개월 후 납기 기한 내 제품은 완벽하게 완료됐고 ,

모든 테스트도 이상이 없었다.


이제 남은 일은 '납품처 대표의 납품 완료 확인서'에 도장을 받는 일뿐이었다.

설치 기술팀과 영업팀 그리고 P는 대전의 A사로 가서 2박 3일 동안 설치와 시운전을 모두 끝냈다.

물론, 납품처로 부터 도장까지 받았다.


https://imageio.forbes.com


출장 후 회사로 복귀한 날 K 대표가 P를 불렀다.


'회사를 나가줘야겠다.
당신을 진즉 자르고 싶었다.'


P가 모든 프로젝트를 완료하고 복귀한 날 

K 대표는 작심한 듯 P를 보며 칼을 들이밀었다.


P는 예상했었지만 큰 일을 끝낸 날이 해고 통지를 받는 날이 될 줄은 몰랐다.

입사 제안을 받으면서 들었던 '존중'이란 말은 허공을 향해 젓는 주먹질, 발길질이 될 뿐이었다.


근로계약서에는 '1년 단위 연봉 갱신'에 대한 내용만 있을 뿐 '계약직'이라는 문구는 없었다.

P는 K 대표와의 면담에서 물었다.


'제가 계약직이었나요?'


K 대표는 '그건 아니지만.........'이라고 말했고,

이 내용은 고스란히 P의 전화에 녹음이 됐다.


P는 녹음 파일을 속기사에게 전달해 녹취록을 만들고 노무사를 통해 지방노동위에

부당해고 진정을 접수했다. 

진정을 접수한 이후로 K 대표와 P 사이 3-4번의 쌍방 의견 표명이 서류로

구체화되어 상호 교환되어 진행되던 중 K 대표는 노무사를 통해 스스로 '부당해고'를 인정하며 용돈 

정도의 보상금으로 '합의'를 시도했다. 


착각이었다. 

P는 강철 같은 전문가였다.

자기가 생각한 받아야 될 합의금을 모두 받아냈다. 

게다가 대전에 납품했던 제품의 '기능 추가 작업 비용'까지 착실하게 K 대표로부터 받아냈다.

P가 원직 복직되는 것이 자존심 상하도록 싫었던 K 대표는 상당한 금액을 P에게 지불하며 

부당해고 사건을 합의했다.


물론, 이 사건이 외부나 내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해주는 유치한 조건을 붙였다.




K 대표는 '돈'을 '사람'과 바꿨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낸다'라는 옛 말은 너무 당연한 옛말이 됐고,

지금은 달아도 뱉고, 써도 삼킨다.

좀처럼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속내를 듣고 싶다면 그 방법뿐이다.

술이다.



같이 마시는 정도로만으로는 부족하다.

위험하지 않게 무리하지 않게

적어도 3차까지는 해야 그 마음속 이야기, 담아왔던 이야기들이 나온다.

술이 깬 아침에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다'며 후회도 해보고.



3차를 언제 했는지 기억도 안나는

- 안산술공방 이정욱 작가

- 공방 주소 http://kwine911.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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