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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욱 교수 Jan 16. 2024

우리가 친구였을까

우정의 재정의


과거와 현재, 친구 관계의 의미는 크게 변했다.


한때는 죽기 전에 단 3명의 친구만 있다면 그것이 성공적인 삶이라 믿어졌지만,

디지털 시대에 이런 라떼 생각은 변하고 있다.

죽기 전에 내 안부를 물어주는 단 1명의 친구가 있어도 좋고, 없어도 관계없고,

어떤 사람은 SNS에 사망소식을 알려 디지털 친구들로부터 잘가라, 행복해라고하는

댓글을 받고 싶어 할 수도 있다.


디지털 시대는 우리의 소통 방식이 현저하게 바뀌었다.

예전에는 대면 소통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SNS를 통한 온라인 소통이 일상을 넘서 삶, 그 자체다.

디지털이 세상에 나오면서 우리는 천리안, 하이텔, 세이클럽, 아이러브스쿨에서부터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텔레그램까지 다양한 플랫폼을 경험했고 그중에 몇 개를 통해 24시간 연결되어 있다.


SNS를 통해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지만,

이것이 반드시 깊은 의미를 가진 친구 관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서의 '친구'나 '팔로워'가 현실에서의 진짜 친구와 동등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도 없다.


가상 세계에서 만난 사람과 현실 세계에서의 친구 관계는 명확한 거리가 있다.

가상 세계에서는 주로 온라인상에서의 활동과 만남으로만 상대를 이해해야만 하며

실제 대화하거나 대면으로 만나는 횟수가 적다.

현실 세계에서의 친구 관계는 만나는 횟수는 더 적지만 더 깊고 감정이 요동치는

인간적 상호작용과 소통을 경험한다.


디지털 시대에 있어서 프렌드쉽을 나는 이렇게 정의한다.

어떤 면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지만, 그 소통은 깊지도 않고 특별한 의미도 없다.

오죽하면 'SNS는 시간낭비'라며 유명인들조차 날 선 비판을 해댈까.

디지털 친구들과 소통이 쉬워졌다고 해서 진정한 친구 관계도 쉬워진 것은 아니다.

디지털 시대를 살지만 우리는 인간관계에서는 항상 진실하고 의미 있는 아날로그 우정을 유지하고 찾고 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디지털친구는 디지털친구대로,

초등학교 친구는 초등학교 친구대로,

중고등학교 친구는 중고등학교 친구대로,

사회친구는 사회친구대로,

서로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를 가지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하면 된다.

위에서 말한 모든 친구들의 그룹마다 분명한 특성이 느껴질 것이다.

뭐가 좋고 뭐가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폭력적이거나 범죄적이거나 비상식적인 모임의 주제가 아니라면

우리는 디지털 친구든 실제 친구들 양쪽 모두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며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면 된다.


디지털을 즐기면서도 동시에 현실 세계에서 맺게 된 사람들과의 소중한 관계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

어느 날 문득 그 친구가 보고 싶어서 물어 물어 연락이 닿아도 그 친구가 세상에 없을 때가 있다.


아마 나이가 더 익어갈수록 빠지는 머리숱처럼 친구는 줄어들고

지인이나 친구의 이름도 잊어버리면서

삶에 치이며 늙어가고 기억을 잃어가면서

우리 모두는 평범하게 보낸 오늘 하루의 어떤 시간이

어쩌면 알고 지내던 소중한 사람의 마지막 시간이었을 수 있다.


내가 보고 싶더라도 상대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누가 먼저 선뜻 손을 내밀기가 껄끄러울 수도 있다.

누군가의 잘잘못이 아니다.

세상 바뀌는 속도는 사람 힘으로 막지 못한다.

사람이 바뀌는 게 아니라 세상이 바뀌게 만든다.


하루하루 따라가기 참 어렵다.

내가 먼저 보고 싶다고 연락하는 친구가 없는데

나를 보고 싶다고 연락하는 친구가 있을까.


인생은 꽉 찬 것 같지만 때론 헛헛하다.

미안하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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