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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욱 교수 Sep 22. 2022

악마의 건전지

엄마의 무지

10년에 한 번이나 펴볼까 말까 한 낡고 오래된 책 냄새가 나는 앨범에는 

초등학교(국민학교) 입학식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다들 독일의 귀족 자녀처럼 남자애들은 머리를 2:8 정도 단정하게 빗었고

여자애들은 두 갈래로 머리를 땋아서 어깨 아래까지 내렸다.

그땐 왜 그렇게 콧물을 많이도 흘렸었는지 모두들 손수건을 

커다란 옷 핀으로 왼쪽 가슴에 매달고 있었다.


낯선 학교, 낯선 아이들, 낯선 선생님

모래 꺼끌꺼끌한 낯선 운동장에 서서 '도와달라'는 표정으로 아이들이 

카메라를 쳐다보는 순간들을 모든 우리들의 아버지들은 프로 사진작가처럼 

놓치지 않고 잘도 찍으셨다.


모든 아버지들은
프로 사진작가



가슴에 달았던 손수건을 우리 할머니는 행거치푸라고 말씀하시면서

손수건 하나하나를 다리미로 정성스럽게 다려 가지런히 개어놓으셨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행커치프(handkerchief)가 슈트 왼쪽 가슴에 멋스럽게 꽂는 손수건이라는 것을.


입학식 때 꽂은 손수건은 멋보다는 고점성, 고탄력성을 가진 누런 콧물이 턱 밑까지 떨어지다 

훌쩍이는 소리와 함께 다시 코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신기에 가까운 묘기를 해내는 친구들이

사용하기에 딱 좋았다.


요즘처럼 아파트가 아닌 같은 빵틀에서 찍어낸 듯한 주택 생활을 했었고 

이가 맞지 않는 나무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날카로운 겨울 찬바람이 

웃 풍과 아랫목을 갈랐놓았던 시절이었다.


겨울철 감기를 겪으며 아이들은 안타깝게도 자연 면역력을 길렀다.

일회용 주사기도 없어 유리주사기를 불에 달궈서 사용할 정도로 다들 없이 살던 시절이라

보건소도 백신도 의약품도 모든 게 다 부족했었다.


아이한테 나쁜 결과가 발생하는 원인은 오직 '보호자의 무지'로부터 시작된다.


보호자의 무지




이비인후과로 엄마가 코피와 콧물을 줄줄 흘리는 2~3살 정도 되는 아이를 안고 내원했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넘어가고 있었고, 엄마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코 안에 내시경을 넣어보니 아주 깊숙한 곳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물체가 보였다.

모니터에서 보이는 선명한 글자, 절대 콧 속에 넣어서는 안 되는 '수은전지'였다.


악마의 수은건전지


TMON

보통 2~5살 정도 아이들은 입 속이나 콧 속으로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집어넣는다.

보통 작은 장난감이나 블록인데 이 아이는 장난감에서 빠진 작은 수은전지 배터리를 

콧 속에 집어넣었나보다.

혼자 노는 아이를 두고 설거지를 하던 엄마는 이 사실을 몰랐다.

이물질 감을 느낀 아이는 손가락으로 코를 자꾸 더 쑤셨고 건전지는 더 

깊은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코 안에 들어간 수은전지는 양극(+)과 음극(-)이 콧 속의 점액질과 수분으로

이어지면서 전류가 흐르게 된다. 

아주 적은 양의 전류지만 콧 속에 들어가면 점막에 화상을 일으키고, 

코 안의 왼쪽과 오른쪽을 나누는 비중격(nasal septum) 막에 구멍이 뚫리는 

천공이 발생하면서 괴사가 발생한다.


아이는 금요일부터 코에 손을 넣는 반복적인 행동을 했었고,

엄마는 별일 아니게 생각했었다.

자꾸 보채는 아이를 3일이나 지난 월요일 아침에서야

허겁지겁 품에 안고 왔을 때 이미 아이의 부드러운 콧뼈는 전기 전류로 인해 

천공이 생겼고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비인후과, 성형외과, 피부과 공동으로 여러 의견을 교환한 결과

아이가 너무 어려 외과적 수술은 불가능했다.

코뼈가 없는 코는 성장 과정에서 주저앉게 될 것이고 아이는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성형외과적인 수술은 아이의 성장이 모두 끝난 후에야 가능했다.

성장 과정 동안은 안타깝게도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아이의 성격, 친구, 자존감, 교육, 관심사...... 

한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모든 부분이 화이트와 블랙의 그라데이션처럼 달라지게 된다. 

엄마가 그때 바로 왔었더라면 이런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아이의 이상 행동을 감지했었더라면.

아이가 성장하면서 후천적 장애를 가지고 자라면서

겪지 않아도 될 많은 불편과 아픔이 없었을 텐데 

잔인한 표현이지만 

이건 분명한 엄마의 무지가 그 원인이다.




나비효과(butterfly effect) : 아주 사소한 날갯짓이 뉴욕에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


50년 뒤, 전 세계인들이 모두 'NANA 와인'을 찾고

전 세계인들이 모두 '안산술공방'의 술만 찾는 나비효과가 있기를 바란다.



- 안산술공방 이정욱 작가

- 공방 주소: http://kwine911.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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