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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욱 교수 Sep 24. 2022

자전거 사고

목격한 사고 이야기



중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에게서 처음 자전거를 배웠다.


난 친구에게 배웠지만 

자녀들에게 자전거 타는 방법을 가르치는 건 '아빠'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꼭 실천하고 싶었다.


자전거 타는 법은
 아빠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건 한 두 개가 아니겠지만 

내 기준에 가장 중요한 건 '자전거 타기'였다.


페달을 밟을수록 빠르게 달리는 자전거 매력에 푹 빠져 매일 등하교 때마다 타고 다녔다.

하교 시간에 자전거 거치대로 가는 길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자전거를 탈 생각에 그런 게 아니었다.

새 자전거를 채 하루도 되기 전에 도난당한 것도 몇 번 됐었고,

누군가 타이어를 칼로 찢어놓거나 큰 못을 박아놓는 바람에 자전거를 멀쩡하게 타고

하교하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학교 건물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학교 뒷 편의 자전거 거치대에서

망가진 자전거를 보는 허탈한 표정의 내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자전거가 멀쩡한 날이 없었다.


지금이야 비싸지 않고 흔한 MTB 자전거에 누가 신경이나 쓰겠냐만

그 시절에 번쩍거리는 새 자전거는 짧은 머리 남자 중학생들한테는 희귀 아이템이었으니 그럴만했다.  

바람 빠진 바퀴 자전거를 끌고 갈 생각을 하면 한숨부터 나왔다. 


그땐 왜 CCTV가 없었을까.

인터넷도, CCTV도, 휴대폰도 없던 그 시절을 

아날로그 시절의 감성이라고 그리워하고 싶지는 않다.


한 동안 자전거를 멀리하다 고등학교 때 받은 종친회 장학금 10만 원으로 

친구 둘과 같이 셋이서 사이클 자전거를 샀다. 

아버지 친구분이 하시던 자전거 가게에서 샀던 거라 기억이 생생하다.

가장 좋았던 자전거가 13만 원이었다.

그렇게 학창 시절 나와 함께한 자전거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잊혀갔다.


짧은 머리 중학생이었던 나는 어느새 중년이 되어있었다.

갑자기 자전거가 타고 싶었다.

싸늘한 아내의 눈초리를 모르는 척 100만 원이 훌쩍 넘는 자전거를 나를 위한 플렉스라며 일단 사버렸다.

새 타이어의 반짝거림이 너무 예뻐 현관 앞에 모셔만 두다

아이를 찾는다며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면서 숨어있던 자전거 DNA가 다시 살아났다.

매일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나서 조금씩 타다 주말은 서울 구석구석 안 다닌 곳이 없을 정도로 탔다.

그렇게 자전거 체력이 조금씩 길러지면서 동네를 벗어나 서울, 여주, 인천까지 제법 먼 거리 라이딩도 다녔다.

어느새 우리 집 자전거는 5개가 되어 있었다.


자전거가 많다 보니 손이 많이 갔다.

간단한 브레이크 조정이나 타이어 펑크가 날 때마다 자전거 가게가 열리는 시간에 맞춰 

움직인다는 게 무척 번거로웠다.

구하라 그러면 얻으리.

'자전거 정비사 과정'이 눈에 띄었다.

2개월 동안 저녁마다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왕복 2시간이 걸리는 곳까지 자전거 공부를

하러 다녔다. 낮에는 멸균 장갑, 저녁에는 기름 장갑을 끼고 자전거와 씨름했다.


낮에는 멸균 장갑,
저녁에는 기름 장갑을 끼고
자전거와 씨름했다.


생활 자전거 정비 코스를 끝내고 선수들이 탄다는 로드 자전거 정비 코스까지 공부해버렸다.

간단한 셀프 수리를 하는 목적이었는데 생각보다 일이 너무 커졌다.


일이 너무 커졌다.


빠른 손놀림으로 내 자전거 타이어를 벗겨내고 튜브를 교체하고 

컴프레셔로 바퀴 에어를 빵빵하게 넣고 나서야

난 비로소 중학교 시절 자전거 테러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전거 테러
 트라우마에서 벗어났다.


지인들은 은퇴하고 자전거 펑크 때우려고 하느냐고 깔깔댔지만 

내 목적은 '셀프수리'였다.



금요일 늦은 밤까지 청사과와 레몬을 넣어 만든 스파클링 화이트 와인 7병을 

다 만들어놨겠다 토요일 오전에 설레는 마음으로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자전거 도로에 할머니가 쓰러져있었다.


그 옆에는 자전거 복장의 남자 한 명이 멍하니 서있었다.


사고였다.


70대 할머님은 허리를 다쳤고 손과 무릎에 타박상이 보였다.

고가의 블랙 TREK 자전거를 탄 중년 남자도 타박상과 찰과상이 보였다.

아마 여름 폭우 때 망가진 도로를 빠른 속도로 지나면서 

요동 때문에 브레이크가 정상 동작을 못해 보행자 할머니와 부딧힌 것으로 보였다.


남자에게 119를 부른 후 112에 신고 접수를 하라고 했다.

다친 사람을 억지로 도로 밖으로 옮기다가 더 다칠 수가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양쪽으로 오가는 라이더들을 정리했다.


자전거와 보행자 간 사고는 법적으로 차량대 인사 사고가 되기 때문에

반드시 112로 접수시켜야 가해자와 피해자 간 다툼의 여지가 줄어든다.


이런 내용들을 설명해주고 내 번호도 알려주면서

'나중에 목격자 문제가 생기면 연락 주시라.'라고 했더니

'감사합니다.'

'혹시 보험 쪽에 종사하세요?'라고 묻는다.

'전혀 아니에요. 하하. 조심히 가세요. 잘 해결하세요'하고

오는 길에 오늘 또 좋은 일 하나 했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그동안 많은 자전거 사고를 많이 목격했다.


카카오 전기자전거로 도로 턱을 넘다가 앞으로 꼬꾸라지면서 이빨이 부러져 

많은 피를 흘리는 남자를 조치해주고 119를 불러서 이송시킨 일.


행인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사고를 피하기 위해 핸들을 돌렸다가

팔이 부러진 라이더.


택시를 불러 자전거를 뒷좌석에 싣기 위해 끙끙대던 자전거를 분해해줬던 일.


커브길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아 벽에 추돌하고 의식을 잃은 분.


엄마가 애들을 데리고 자전거를 타다가 빠진 체인을 끼워준 일.

낡은 자전거를 타다가 변속기 드레일러가 고장 나서 도와준 일 등

셀 수도 없다.


처음엔 도움을
줄까 말까 망설였었다.


처음엔 도움을 줄까 말까 망설였었다.

괜한 핀잔을 듣지는 않을지. 오버하는 건 아닐지.

하지만 핀잔은커녕 모두들 너무 고마워하고 기뻐했다.

특히, 아이들이 오랫만에 밖에 나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준게 가장 기뻤다.

지금은 도움 주는 것에 자신감도 붙고 약간의 요령도 생겼다.


사소한 고장은 얼마든지 도와드리겠지만 인사 사고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

가장 큰 원인은 '과속'이다.


제발 자전거 속도를 줄이세요.



- 안산술공방 이정욱 작가

- 공방 주소: http://kwine911.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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