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墺地利의 역사와 문화 -
오스트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논함에 있어서 음악이란 표제를 어찌 빼놓을 수 있을까. 오지리의 유구한 역사 속에 음악이 차지하는 연조는 비교적 짧으나 그 비중은 자못 크다. 뭇 위대한 음악가들이 유럽의 국경을 넘어 이 땅에 모여 활동을 펼쳤으니, 바로크 · 고전 · 낭만 · 20세기의 여러 악파와 현대음악으로 이어지는 서양음악의 명맥을 이은 곳이 여기 오스트리아이며, 그 중에서도 빈과 잘츠부르크에서의 역사는 파히 깊다. 모차르트와 하이든, 브루크너의 고국이며 빈에는 베토벤과 슈베르트를 비롯하여 브람스, 슈트라우스 문중 그리고 모차르트를 모신 중앙묘지가 있다. 그러한 오스트리아의 음악사에서 작년과 올해는 비교적 기념될 만한 해이다. 베토벤이 탄생한지 250주년이 되었고, 작년엔 Staatsoper가 또한 150주년을 맞았으며, 올해 1월 6일 빈 음악협회가 150주년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100주년을 맞이할 겹경사가 있으니 이를 살펴보려 한다.
올해는 Musikverein Wien, 빈 악우협회의 성지(聖地)가 창건 된지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1812년 빈 악우협회(Gesellschaft der Musikfreunde in Wien)가 창설된 이래로 빈의 음악인들은 음악 그 자체를 위한 공간을 필요로 했다. 1863년 빈의 링슈트라세 개건을 계기로 협회는 프란츠 요제프 1세에 청을 올렸고, 현재의 부지를 부여받아 3년의 공사 끝에 그 공간을 완공시켰다. 건축가 Theophil Hansen(1813~1891)은 고대 그리스 건축을 토대로 하여 Musikverein이 곧 음악의 신전임을 표방했고, 당시의 방문객들은 „wundervollen Harmonie der Architektur“라 평하며 악우협회의 새로운 공간에 대한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1870년 1월 6일 첫 공연으로 시작된 음악협회의 역사에는 요한 슈트라우스와 클라라 슈만 등이 함께 했다.
1941년 이래로 매해 정초에 신년음악회가 열리는 등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이 공간에서 수없이 많은 음악가들이 그 역사와 함께했고, 뭇 세계의 음악가들과 음악애호가들이 가장 아름다운 공연장으로 칭송하는 곳이 여기 음악협회이다. 2004년에는 지하에 네 개의 새로운 공연장을 개관하여 더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으며, 2012년엔 악우협회가 200주년 맞아 그를 기념하기도 했다.
요하네스 브람스는 1872년 악우협회의 예술감독으로 임명되기도 했고, 음악협회 내에는 Brahms-Saal이라 명명된 공간이 있는 등 여러모로 악우협회와 인연을 함께한 음악가이다. 브람스 사후, 자신의 작품을 비롯하여 그가 일생동안 모아온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등의 악보 초판본과 여러 문서들이 악우협회에 소장되게 되었는데, 이는 2005년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으로 등재되었다.
뿐 아니라 작년 5월 25일은 Wiener Staatsoper가 150주년을 맞은 날이기도 했다. „Erste Haus am Ring“이라는 별칭의 빈 국립 오페라는 건축가 August von Sicardsburg(1813~1868)이 실내는 Eduard van der Nüll(1812~1868)이 옛 양식을 모방 절충한 네오르네상스 양식을 주축으로 하여 8년에 걸쳐 완공했다. 1869년 5월 25일, 프란츠 요제프 1세와 황비의 친견아래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죠반니>를 시작으로 그 역사의 막을 올렸고, Hofoper로써의 역할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으로 상당부분 파괴되었고, 이에 정부와 시 당국 국민들이 한데 힘을 모아 10년의 공역을 거쳐 예대로 재건하였다. 외관은 옛 맵시를 여실히 살리고, 내관은 현대적 기술을 가미하여 지었으며 1955년 11월 5일 베토벤의 <피델리오>를 무대에 올리며 재개관했다.
구스타프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카를 뵘 그리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 당대에 명성을 떨친 음악가들이 예술감독을 맡았고, 그 중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가 말러와 카라얀이었다. 개종까지 하며 감독을 맡은 말러는 여러 방면에서 개혁을 시도했고 예술성을 한층 더 높이 끌어올렸다. 카라얀은 무대에 연출 개념을 도입하며 이를 위해 밀라노의 라 스칼라와도 협업했으며 무엇보다 오페라는 본래의 언어로 불려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 작품 본래의 예술성에 더욱 충실하게 했다. 유럽에서 가장 큰 무대와 높은 예술성을 자랑하며 밀라노의 라 스칼라, 빠리의 가르니에궁과 더불어 명실공히 유럽 3대 오페라, 세계 3대 오페라로써 150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에도 그 전통과 역사를 이어 나가고 있다.
Salzburger Festspiele의 역사는 1920년 8월 22일 대성당광장(Domplatz)에서의 연극 <Jedermann>으로써 시작되는데, 그 연원은 여럿이다. 1856년의 모차르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음악제와, <마술피리>의 악보가 발견된 1870년 국제 모차르테움 재단이 발족되어 1877년부터 여덟 차례 개최한 음악제를 시초로 하며, 무엇보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을 표방하여 잘츠부르크에서도 마땅히 음악제가 열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에 1917년 축제극장조합(Salzburger Festspielhaus-Gemeinde)이 설립되고 황제 카를 1세의 지원을 받아, 1918년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Max Reinhardt, 1873 ~ 1943), 극작가 휴고 폰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nsthal, 1874 ~ 1929)과 음악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 ~ 1949) 등이 주축으로 기획하여 1920년 8월 22일 제1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막을 열었다. 처음 대성당 광장에서 호프만슈탈의 연극 <Jedermann>으로 막을 열었는데, 이것이 전통이 되어 오늘날까지도 변함이 없다.
1922년에 이르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모차르트의 <돈 죠반니>를 지휘하며 본격적으로 음악제의 기틀이 잡혀 가고,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 브루노 발터가 이끈 황금기를 거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카를 뵘 그리고 자신의 고향이었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 당대의 마에스트로들의 손을 거치며 유럽 최고의 축제, 세계 최고의 음악제로써 자리 잡아 나갔다. 특히 카라얀은 음악제를 30년간 진두지휘하며 기존의 여름 음악제와 더불어 부활절 음악제, 성령강림절 음악제 등을 더하여 발전시킨 일등공신이다. 주무대인 대축제극장(Groβes Festspielhaus)은 Mönchsberg 산기슭의 암벽을 파고서 지어졌는데, 1960년 카라얀의 지휘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를 무대에 올리며 개관했으며,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무대를 자랑했다. 이외로도 소축제극장과 모차르테움 등 잘츠부르크의 전역에서 축제가 진행된다.
100년의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경제적 여건으로 열리지 못한 1923년과 1924년을 제외하고, 세계대전 중에도 음악제는 개최되었었다. 그러나 현 시국의 여파로 일찍이 부활절 음악제와 성령강림절 음악제는 취소되었고, 지난 25일 이사회는 여름축제를 8월 1일부터 30일까지, 44일의 일정에서 30일로 200개의 공연을 90개로 축소하여 개최하기로 발표했다. 축소된 프로그램은 6월 초 발표될 예정이다. 이사회는 예술의 힘을 발휘하여 당면한 고비를 넘어, 100주년의 역사를 맞이할 것을 밝혔다.
2009년, 필자가 구라파의 땅에서 가장 먼저 관람한 공연이 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의 오페라였다. 당시의 감격과 자극은 필자를 지금 여기 빈에 있게끔 한 큰 연유 중 하나이다. 이듬해 집으로 배송된 2010년의 브로슈어를 아직 간직하고 있는데, 표지의 소나무가 눈에 익었었다. 분명 우리 땅의 소나무였다. 책자를 펼쳐 찾아보니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배병우 작가의 작품이었다. 유럽문화를 대표하는 최정상의 축제에서, 그것도 90주년을 맞은 기념적인 잔치의 표상을 우리네 소나무 숲으로 삼은 것이다. 충격이었다. 한편으론 기쁘고도 한편으론 놀라웠다. „Wo Gott und Mensch zusammenstoßen, entsteht Tragödie; 신과 인간이 마주치는 곳에서 비극이 발생한다.“라는 다소 심오한 주제가 당시의 표제였다. 저 소나무 사진이 찍힌 곳이 경주의 삼릉인데, 신라의 세 왕릉이 모셔져있고 마치 그를 호위하듯 소나무들이 신비로이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를 알고서 저 사진을 택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음악제 당국의 높은 안목이 또한 놀랍다.
이와 같은 오스트리아의 음악사를 돌이켜 보니, 문득 오스트리아인들에겐 음악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찍이 공자께선 예악을 중히 여기시어,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시로써 흥하고 예로서 바로서며 음악으로써 완성된다.”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음악으로 완성된다’는 그 말은 필자의 큰 화두 중 하나이다. 공자뿐 아니라 여러 사상가와 철학가들은 음악과 그 형태를 우러러 예찬했다. 무엇 때문일까. 찰나의 예술, 음악. 그 음악의 나라, 음악의 수도 빈에서 그 의의를 되뇌이며 또다른 화두를 던져본다. 그런 음악이 여실히 향유되니 빈과 잘츠부르크라는 공간이 더욱 아름다운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