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덕질의 연속이니까
원래 금사빠 기질이 있어 열정적으로 좋아하다가 금세 식곤 했다. 처음 한두 달, 좋아함의 강도가 가장 세고 이후는 시들해지는 패턴이었다. 처음에 너무 많이 보고 그 사람에 대해서만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질리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적당한 강도로 꾸준히 좋아하고 싶은데 나이가 들 수록 그런 자제가 더 안된다. 학생 땐 부모님이라는 감시자가 있었고 학교에 매여있으니 자유롭지 못했고 사회 초년생 때는 밥벌이가 더 중요했기에 다른데 깊이 빠질래도 빠져지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누가 터치하지도 않고 내 행복감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수 있다. 이렇게 보니 나이가 들어서 자제가 안된다기보다 자제할 필요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내가 입덕한 지도 어느덧 3개월이 됐다. 원래의 나라면 지금쯤 느낌이 와야 한다. 마음이 식어가는 전조 증상.. 그런데 어쩐지 그 반대다. 점점 더 좋다. 큰일이다. 최근 드라마와 영화가 겹쳐서 나왔고 영화 행사로 실물을 볼 기회가 있었던 게 가장 큰 것 같다. 이번 주에도 영화 무대인사가 있다. 집 근처 극장에서 4번이 있는데.. 3개를 다 예매했다. 배우 덕질을 하면 원체 실물 보기가 힘드니 기회 될 때 봐야 한다는 말도 들어서 더 가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나를 위해 해주는 게 아닌걸 알면서도 배우의 미소와 손짓 한 번에 팬심이 더 깊어진다. 보면 볼 수록 좋아지는 이 개미지옥을 어떡하면 좋을까.
행복하기만 하면 좋겠지만 덕질에도 비용이 따른다. 영화값도 만만치 않은데 요즘엔 카메라까지 빌려서 추가 비용이 뒤따른다. 내 폰은 아이폰 구구구시리즈라 도저히 봐줄 만한 화질이 아니라 어쩔 수가 없다. 이번에 가는 무대인사는 시간이 10분 내외니까 카메라까진 오버인 것 같고 덕질템으로 유명한 갤럭시를 빌리기로 했다. (기존에 빌린 곳보다 저렴한 데를 찾았다! 호갱 탈출.. 그나마 다행)
몇 년 전 어떤 뮤지컬에 빠져 그 공연을 보기 위해 살았던 적이 있다. 통장잔고 비어 가는 것도 잊은 채, 공연을 보러 가기 전 설렘과 보고 나서의 감상으로 매일을 살았다. 그러다 보니 그 공연이 끝날 때쯤엔 내 세상도 다 끝날 것 같은 허망함과 우울감이 몰려왔다. 그 당시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고 아무도, 아무것도 그걸 대체할 수 없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이 딱 그때 같다. 지난주 드라마 종영 시에도 너무 우울했고 이번 영화 홍보가 끝나면 이제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덕질이 없으면 일상에 아무 재미도 의욕도 없다. 팬카페에서 글을 보면 ‘현생 때문에 영화 보러 못 갔다’, ‘현생을 위해 일찍 잔다 ‘같은 글이 많은데 나는 현생이랄 게 따로 없다. 덕질하는 게 내 현생이다. 남들이 보면 한심 그 자체인 상태. 나름 일도 하고 사람도 만나지만 그런 곳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 가능한 한 최소화하고 싶다.
이런 마음과 상황이 언제까지 갈까. 지금 이렇게 미친 듯이 좋지만 지나고 보면 이 뜨거운 감정은 사라지고 기억으로만 남겠지? 좋아하는 마음이 끝나지 않고 싶으면서도 현실 세계에게 삶의 의욕을 주는 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둘 다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