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하려면 얼마나 걸리려나
면접을 보고 나서 실수한 것만 떠오르고 떨어질 것 같은 예감에 단념하는 글을 썼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나서 며칠 뒤 근무 조건을 제안하는 연락이 왔다. 정규직 자리가 아닌 계약직으로 지원한 것이기에 출근일 수와 급여 조정이 필요했다. 제안받은 조건이 나쁘지 않아 오케이 했고, 그다음 날 최종 합격 전화를 받았다. 그러고 나서 출근일까지 몇 주가 흘렀다. 그 사이 명절이 있었는데 다행히 명절 전에 합격 연락을 받아서 가족들에게 그나마 할 말이 있었다. 이제 월급 따박따박 받는 일을 구했다고. (자세한 조건은 말하지 않았지만)
설렘보다 앞선 걱정들
마지막 퇴사 이후 간간히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과는 다른 환경이었다. 카페에서 일할 때는 근무시간이 짧았고, 30분~1시간 단위로 업무 로테이션이 됐다. 그리고 최근까지 일한 마트에서는 계속 움직이는 일이라 직원들과 소통할 일이 많이 없었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일을 한다는 건, 앞뒤양옆에 있는 사람들과 무려 8시간을 함께 앉아 있어야 한다. 인사도 해야 하고 회의나 보고도 해야 하며, 밥도 같이 먹어야 한다. 입사하기 전 내가 가장 걱정된 부분이 같이 점심을 먹는 거였다. 알바를 할 때는 휴게 시간이 다르니까 누구랑 같이 먹을 일이 없었다. 그래서 혼자 핸드폰을 하며 아무 말도 안 하고 밥만 먹으면 됐는데, 회사에서는 같이 메뉴를 정하고 뻘쭘하게 식당으로 걸어가야 하며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의 침묵을 버텨야 한다. 궁금하지 않은 일상도 물어봐야 하고, 말하고 싶지 않은 개인사에 대한 질문에도 모나지 않게 대답해야 한다. 그런데 막상 몇번 함께 해보니 괜찮았다. 그동안 회사 생활을 쉬다보니 낯선 사람에 대한 과한 긴장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분들의 일상에 내가 슬쩍 숟가락 하나 얻은거니까 그 속에 잘 스며들면 되는 거였다. 이렇게 점심 시간에 대한 스트레스는 점차 해소가 되어 가고 있다. 그 외 업무적인 부분은 아직잘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르며 저절로 해결되는 것들
출근한 지 1개월이 다 되어 간다. 나는 주 5일 풀출근을 하진 않는다. 그리고 회사에서 유일한 계약직이다. 이런 조건으로 근무를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가 가장 어려웠다. 정직원처럼 적극적으로 애사심을 갖고 일하기는 오버스럽고, 반대로 너무 선 긋고 일하는 것도 애매했다. 어쨌든 출근을 해서 직원들과 같이 생활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입사한 지 며칠 안 됐을 때 적응은 잘하고 있냐는 상사의 질문에 "일할 때 선을 어디까지 지켜야 할지 어렵네요"라고 흘러가듯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은 하지 말 걸 하는 후회가 된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판단했어도 되는 것인데 말이다. 몇 주간 일을 해보니 오히려 내가 정한 틀에 나를 가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A업무만 하러 왔는데 B업무를 하는 건 억울해. 왜 나에게 쥐꼬리 월급을 주며 나의 십수 년 경력을 헐값에 빼먹으려고 하는 거지?'라고 비약했던 것 같다. 텍스트로 적고 보니 많이 못나 보이네. 아무튼 일을 하다 보니 내가 굳이 나의 가치를 낮출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정받고 싶어서가 아니다! 내가 필요해서 나의 의견과 스킬을 원한다면 기꺼이 응해주면 될 것이고 만약 물리적으로 도저히 무리가 된다면 그건 그때 요구하면 될 것 같다는 결론이다.
백수 때 보다 외로운 건 왜일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주말에만 알바를 하고 평일에는 백수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엄습해오기도 했지만 한 달의 한두 번 정도였지 매일 마음이 힘든 건 아니었다. 좋아하는 영화 대사 중에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완벽한 심심합니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딱 그런 날들을 보냈다. 그런데 회사를 다니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일을 하고 퇴근을 하는 건데 왜 기쁘지 않고 외로운 감정이 더 큰지 모르겠다. 어서 퇴근해서 저녁을 먹고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며 쉬면 되는데 왜 그런 공허함이 몰려오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첫 출근을 한 주에는 친구와 몇 번이나 만나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매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이제는 이 감정에 익숙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일단 톡 하는 걸 참고, 혼자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저녁 메뉴를 고른다. 편의점이나 배달로 대충 때우지는 않으려 한다. 그리고 정기적이며 강제성이 있는 운동도 다니려고 한다. 어제 눈물을 머금고 테니스 레슨을 등록했다. 다른 운동에 비해 비싸지만 재밌음 마지막으로 연애를... 좀 해야겠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를 부지런히 모색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