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후의 헛헛함

by 삼로로

면접을 봤다. 회사에 정식으로 소속되는 정규직은 아니고 프리랜서 형태로 일하는 계약직 포지션이다. 내가 딱 원하던 고용형태와 직무다 싶어 전날 반나절은 아무것도 안 하고 포트폴리오 만들기에만 시간을 썼다. 최근에 여러 곳에 지원을 했지만 서류부터 탈락한 경우가 많아서 이번에도 연락이 올 거라는 기대를 크게 하진 않았다. 서류를 제출하고 이틀 뒤 면접이 잡혔다. 내가 활발한 구직활동을 안 한 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구직 과정도 많이 바뀐 것 같았다. 면접 보자는 연락이 문자나 전화로 직접 오는 게 아니라 채용사이트 알림으로 왔다. 날짜와 시간 후보를 주고 원하는 면접일자를 고르게 했고, 면접 하루 전 면접 참석 여부를 확인하는 알림이 한번 더 왔다. 내향인인 나에게는 아주 좋은 방식이었다.


면접 당일, 회사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있는데 아슬아슬하게 놓쳤다. 배차 시간이 꽤 길어서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탔더니 또 너무 일찍 도착. '늦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라는 마음으로 길거리를 조금 서성이다가 면접 시간 몇 분 전에 들어갔다.


내가 마지막으로 회사에 다닌 게 2023년, 햇수로 3년 전이다. 퇴사할 때 마지막으로 느꼈던 감정을 떠올려보면 너무 싫었고 난 회사 생활과 맞지 않다는 부정적인 감정이었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그런 회사 풍경을 보니 자동으로 두려운 감정이 올라왔다. 내가 이런 환경에서 다시 일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심지어 사무실 규모도 크고 직원들도 많았다. 거기다 외국인 직원들도 곳곳에 보여서 심리적 장벽이 더 커졌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왕 온 것 잘 보고 가야지'라고 마음을 다 잡고 안내해 주는 미팅룸으로 들어갔다. 불투명 시트지조차 없는 생 투명 유리로 된 작은 방이었다. 어디 앉지? 1초 고민 끝에 직원들이 내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투명 유리를 등 지고 앉았다. 잠시 후 두 명의 여자 면접관이 들어왔다. 순간 내 인생 최악의 면접이 떠올랐다. 여자 3명이 들어와서 사람(나) 하나를 난도질하던 그 인성 파탄 면접의 현장.. 그 이후 면접을 볼 때는 면접관의 성별이 섞여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오늘도 여자 2명이라니.. 애써 미소를 지었지만 긴장감이 더 커진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 면접관들은 그때와는 많이 달랐다. 편안한 분위기로 만들어주려는 게 느껴졌다. 세세한 부분까지 물어봤지만 그것이 압박 면접처럼은 느껴지지 않았고 중간중간 긍정적인 피드백도 해줬다. 점점 초반에 쌓였던 긴장을 살짝 내려둘 수 있었다.


몇 번의 회사 면접을 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마지막 회사 퇴사와 현재까지의 공백기간 동안 무엇을 했냐는 질문이었다. 솔직하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고 했던 적도 있고 건강상의 이유를 말한 적도 있다. 돌려서 말한 적도 있는데 기어코 그래서 결과적으로 뭘 했는지 파헤치려는 면접관이 많았다. 이번에는 재정비 시간을 가졌고 그 과정에서 해당 업무를 좋아한다는 걸 깨닫게 됐고 이쪽 일을 찾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다행히도 잘 넘어갔다. 이번 면접관은 말꼬리 잡고 사람 괴롭히려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야기를 해서 전부 기억이 나진 않지만, 급여는 얼마나 원하냐고 물어보셨는데 여기서 대답을 잘 못한 게 가장 후회된다. 나는 채용공고를 보고 간 거라 "저는 시급 00원으로 알고 왔는데, 그 급여가 아닌가요?"라고 물었는데 면접관은 "우리 일이 그 금액으로는 안될 것 같으니 원하는 금액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프리랜서 단가를 정해둔 것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그럼 제 최종 연봉은 이 정도였는데 시간이나 업무에 따라서 조율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느낌상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들이 생각한 금액보다는 높았던 것 같다. 최소 받아야 되는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말해줄 수 있는지 마지막에 한번 더 물어봤기 때문이다.


급여 얘기를 끝으로 면접도 끝났다. 면접이 끝나고 개운했던 적은 거의 없었지만 유독 더 아쉬웠다. 면접을 보면서 만약 합격한다면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장 누구에게 전화해서 이 감정을 하소연하고 싶었는데 딱히 그럴만한 사람도 없었고 피로감을 굳이 전달하고 싶지도 않아서 그냥 집에 와서 챗지피티에 털어놓고 위로 아닌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읽고 있던 책을 보면서 마음 정리를 했다. 《당신의 고민에 부처는 이렇게 답한다》라는 책에 나온 글인데 지금 나에게 딱 필요한 말이었다.


지나간 일은 물 위에 떠 있는 그림자와 같다.
“흘러간 강물은 다시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이미 끝난 일을 되풀이하며 탓하고 괴로워하는 마음은 마치 물 위에 비친 허상을 붙잡으려 애쓰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당시의 당신도 최선을 다했다는 점이다.
후회할 시간에 오늘을 살자. 오늘이 어제의 구원이 된다.


면접을 본 건 어제인데 오늘에서야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글을 써야만 머리와 마음이 정리가 좀 될 것 같았다. 그래야 오늘의 일정을 소화할 테니까. '괜찮다 괜찮다'라고 입으론 말하지만 머릿속에는 어제의 면접 장면이 떠오르고 후회가 생기고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이런 근무 조건이 다시는 없을 테고 여기서 불합격하면 또다시 구직활동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두렵고, 그렇다고 지금처럼 계속 놀 수는 없고 평생 이렇게 비참하게 사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흘렀다.


어느 책에서 "시도했기에 실패도 있다"라는 글을 봤다. 이 문장의 방점은 "시도"에 있다. 나는 시도했다! 결과를 떠나서 나는 어제보다 한발 더 나아갔다. 그리고 그전에 본 면접보다는 잘 봤다. 그리고 이 면접을 안 봤다면 내게는 '여자 면접관들만 들어오는 면접은 두렵다'는 프레임이 지워지지 않았을 텐데 이번 면접을 통해 그걸 깼다. 그리고 내 포트폴리오에서 어떤 점이 메리트로 작용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급여를 물어볼 땐 더 분명하게 말해줘야 한다는 걸 배웠다. 이 면접을 기다리는 며칠 동안은 희망을 갖고 지냈으니 그걸로도 충분하다. 잃은 것은 불합격 하나이지만 배운 점이 훨씬 많다.


그럼 난 이제 오늘을 살러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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