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유홍준 잡문집
누구나 예상하듯 이 책은 유익하다. 배울 게 많고 코끝 시큰할 정도로 감동적이기도 하고 우리 선현들에게 감사함까지 느끼게 된다. 한마디로 정말 재미있다. 특히 유홍준 선생님은 TV에서 많이 뵌 분이라 그런지 글에서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박물관에서 도슨트를 들을 때처럼 마치 그림과 설명을 함께 감상하는 느낌이었다.
옛 유적, 문화유산 등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와 연결되어 우리 삶을 투영하고 있다. 나와 상관없는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내가 한국이란 땅에서 편하게 누리며 살 수 있음에 감사해진다. 『조선왕조실록』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선조들 덕분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는 것이고 매일이 복잡한 서울에서 그나마 질서를 지키고 살 수 있는 건 우측통행을 원칙으로 만들기 위해 관심 갖고 노력한 분들 덕분이다. 책에서 「100년 뒤에 지정될 국보·보물이 있을까?」라고 하셨는데 나도 괜히 걱정이 됐다. 인류도, 대한민국도 대단한 발전을 했지만 옛 한국문화의 정서와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후대에 감동 줄 수 있을지를 떠올려보면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뾰족뾰족한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된 카페에서 이 책을 읽었다. 정이라고는 1도 없는 차가운 곳. 그러나 책 속에선 봄이 펼쳐졌고 향기도 나고 따뜻한 온도도 있었다. 문장에 쓰인 형용사와 부사들이 너무 예쁘고 그 모습이 그려질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선생님의 연세까지도 이런 감수성을 유지할 수 있다니! 너무 대단하고 멋지다.
- 서울의 남산은 벚꽃이 솜사탕 뭉치처럼 피어오른다.
- 책에서 삶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것만 같았다.
- 그 따뜻한 친숙함과 사랑스러운 정겨움이 조선 백자의 특질이다.
최근에 깨달은 건데 내가 은근 지식에 대한 욕구가 있는 것 같다. 학생 때는 공부하는 게 너무 싫었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는 왜 배우는 게 재미있을까? (예전에 못 배워서 그런가) 아무튼 이 책을 읽고 역사 공부를 더 하고 싶어 졌고 바둑, 미술, 서예도 배우고 싶어졌다. 바둑을 인생에 비유하는 걸 듣긴 했지만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처음이다. 바둑은 승패에 대한 군소리가 있을 수 없을 만큼 엄정하고 공정하다고 한다. 불공평과 부당함이 판치는 세상에서 그렇지 않은 것 하나쯤은 경험하고 싶은 마음일까? 무엇보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보고 싶다. 그러면 나도 좀 똑똑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부록에 있는 유홍준 선생님의 글쓰기 조언. 부록이라 하기엔 너무 유용해서 본문에 있어도 충분할 것 같다. 책에서는 15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1번은 주제가 명확하지 않으면 글이 흔들린다는 내용이다. 비유하자면 깍두기는 주제이고 소재는 무이며 양념의 배합은 글의 구성이라고 한다. 제목만으로 주제를 잘 전달할 수 있을 때 좋은 글이 된다고 하는데 나는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가능한 한 제목부터 짓지만 안 그런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2번째는 독자에 대한 내용인데 이게 정말 너무 어렵다. 「글이란 누군가가 읽어줄 것을 기대하고 쓴다는 점에서 공급자 입장이 아니라 소비자 입장을 염두에 두고 써야 한다」라고 하는데 확신이 없다. 아무도 관심 없는 남의 일기장처럼 보이면 안 될 텐데.. 이미 그런 것 같다.
1. 주제를 장악하라
2. 잠정적 독자를 상정하라
3. 기승전결을 갖추고, 유도동기를 활용하라
···
15.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점검하라
인왕산 등산을 가면 자주 보게 되는 독립문. 독립협회가 지었다는 것 정도만 알았다. 이 조차도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치고서야 한번 더 보며 인식하게 됐다. 그런데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에서 또 새로운 걸 배웠다. 독립문에 새겨진 한글 '독립문'과 한자 '獨立門'을 동농 김가진 선생님이 쓰신 것이라는 것을. 언젠가 김가진 선생님의 글자를 보러 창덕궁 관람정과 백운동천도 가봐야지.
그리고 읽어야 할 책들이 생겼다. 할 일 없는 백수에게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이 생기니 좋다.
『버선발 이야기』 - 백기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더불어 숲』 - 신영복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 홍세화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 홍세화
이와 같이 책 속에는 많은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모두가 소신을 갖고 대의를 위해 살아온 분들이다. 작은 것 하나에 이리 휘청 저리 휘청대는 나와는 너무나 다른 분들. '내가 그 시절에 살았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조금만 고통스러워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며 부끄러워졌다. 백남준, 신학철, 오윤, 김지하 선생님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서 볼 거다.
나의 하찮은 글솜씨와 부족한 표현력으로
이 책의 진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존경할만한 이 시대의 어른 유홍준 선생님! 귀한 경험들과 지식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곁에 더 오래오래 계셔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