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9일, 사랑하는 나의 딸 (MyB)는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병원에서 자연분만으로 태어났다. 내가 상상했던 아기는 뽀송뽀송하고 뽀얗고 너무 사랑스러워 어찌할 줄을 몰라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드는 미약한 생물체일 거라 기대했건만, 쭈글쭈글 보라돌이 외계인이었다
아빠 육아를 시작하며, 벌 받아 마땅했던 아빠로서의 시작점을 떠올려본다
출산휴가 따위는 없이, 그다음 날부터 바로 회사로 출근을 했다. 스웨덴에 있었지만, 전혀 스웨덴스럽게 살지 못했던, 그렇다. 스웨덴 회사가 아닌 나는 한국 기업의 주재원이었다. 월화수목금금금, 회사가 나고, 내가 회사였던 시절. 나는 그러지 않으리라. 가족을 위해 살리다.라고 다짐했건만, 참 일만 하고 살았더랬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차라리 한국이었다면, 오히려 다들 비슷하게 힘들게, ‘힘들게?’ 살아가니까 라고 나름 위안을 삼았을 텐데, 아~ 스웨덴 사람들은 참 집에 일찍 가는구나… 이런 게 바로 풍요 속의 빈곤? 상대적 박탈감?
나 하나 믿고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스웨덴에 따라와 준 아내가, (심지어 당시 아내는 팀장, 나는 대리. 일개 대리 때문에 팀장이 회사를 그만뒀다니….) 한없이 밝고 명랑하던 아내가,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구김 없는 사람으로’ 나를 홀릭하게 만들었던 아내가 ‘독박 육아’를 경험하며 한없이 ‘어두워져만 갔다’ 한없이 ‘쭈글쭈글하게 구겨져 갔다’.
사실 처음에는 100%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나 스스로가 일을 하며 너무 힘들었기에. 육아는 일이 아니라 생각했지. 아빠 육아를, 육아휴직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육아가 훨씬 일보다 힘들다. 아니다. 이건 비교 자체를 할 수 없다.
당시 아내가 너무도 많이 울고, 너무 많이 우울해하니… 나도 우울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본사 발령을 받고 한국에 들어가게 되면, 내 꼭 육아휴직을 쓰고 내가 ‘육아’를 대신하리라… 그 어렵다는 육아, 내가 한 번 해 보겠어. 그렇게 나의 전투 육아가 이토록 ‘계획성’ 있게 시작되었다.
나 B 아빠. 철저한 자기 관리와 계획성 있는 촘촘한 업무 관리로, 일 좀 한다 자부하던 이 시대의 진정한 직장인. 훗. 육아 따위. 철저하게 해 주겠어. Professional 한 관리를 통해 순한 아가로 널 다시 태어나게끔 해줄 거야. 하지만 왠 걸. 이건 머 관심병사 수준 아빠. 하루 종일 뭘 해야 되나. 왜 이렇게 된 건가. 멍 때리다 보면 하루가 지나가기 일쑤.
나 B 아빠. 비록 태생 은경상도 남자 출신이지만, 뼈를 깎는 노력과 부단한 성실함으로 한 때 꽃을 든 남자, 로맨티 스트로 군림하던 때가 있었지. 이제 꽃과 손편지 대신, 무뚝뚝함과 노 센스로 아내에게 구박을 아주 가끔 받고는 하지만, 내 로맨티시스트로 다시 태어나리.. 사랑하는 딸에게 로맨틱한 아빠, 사랑받는 아빠! 하지만 왠 걸. 꿈꿨던 다정함과 Lovely 함은커녕, 현실은 습관성 분노조절 장애, 막말 아빠. 아이에게 화낼 땐 아마 호환마마보다, 내가 딸에게 더 괴물 같겠지.
나 B 아빠. 한 때 핸드폰 전화 목록 1천 명을 찍었을 만큼. 이 시대의 진정한 인싸. 친구로 가득 찼던 젊은 날들. 나는 친구들과 이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풀겠다 라고 생각해 보았건만. 아 생각보다 육아를 하는 아빠들이 없구나. 나와 함께 공감을 해 줄 이들이 생각보다 너무 없구나.
그러다가 J 아빠가 떠 올랐다. J를 직장 어린이집에 데리고 출근하며, 퇴근 후 저녁, 잠재우기까지 모든 걸을 혼자 해 내는 이 시대의 철인, 그렇다. 그래서 나는 J 아빠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주 가끔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육아 프로그램의 아빠들을 왜들 그렇게나 다정하고 사랑스러운지. 나는 정말 폐급 아빠인가. 생전 하지 않았던 비교, 비교, 비교만 가득. 아내와 딸에게 미안하고 초라해져만 갔다.
언제부터였을까. 한국에서는 남자들은 힘들어도 표현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자 멋짐이 되었고, 친한 친구들에게도 이러한 육아 이야기는 약간 부끄러운, ‘야 무슨 남자가’. ‘야 남자가’. 이렇게 흘러와 버린 것만 같다.
내게 J 아빠는 ‘야 무슨 남자가’를 서로 꺼내지 않을 수 있을 훌륭한 육아 친구이자 육아 선배였다. 이 시대의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평범한 가장으로서, 아빠에게도 육아 친구의 존재는 영화 친구에서 처럼 ‘그때 그 시절, 함께라면 무서운 것이 없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든든한 지원군이자 마음의 안식처였다.
J 아빠를 만나면서, 나에게는 이러한 확신이 생겼다. 아빠에게도 육아 친구가 필요해. J 아빠와, B 아빠를 통해 서툰 아빠로서의 첫걸음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평범한 우리들을 이야기를 전하고, 육아 친구가 되어주려 한다.
육아 친구가 얼마나 필요한지 우리 스스로가 뼈저리게 느꼈기에. 그리고 그대들에게도 육아 친구가 생기길 기도하고 응원한다.
아빠들이여 좌절하지 말라. 오늘 하루 빡침과 열 받음, 그리고 무기력함의 연속이었을지언정. 그대는 그대의 가정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아빠 괜찮아. 그래도 아빠가 우리 집에서 제일 (키가) 큰 사람이야’
–2018년 언젠가 사랑스러운 My B에게 감동받았던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