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B 아빠 to J 아빠] 다섯 번째 편지

때론 아이가 부모보다 강하다.

by thankyouseo


누가 그러더라고. 30대 중반 남자들이 꼭 한 번씩 크게 아프대. 그 이유를 들어보니 이제 직장생활 10년 가까이, 건강을 챙기지 않고 일만 하다 보면 신체적 기능이 하락할 시기에 신경을 못 써줘서 크게 아픈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 실제로 내 주변에서도 많이 아픈 사람들이 많단다. 내가 작년에 담낭절제 수술받았던 거 너 기억하지? 결국은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었어. 친구야 건강 찰 챙겨야 한다. 우리는 가장이잖니. 좋은 음식으로 잘 챙겨 먹고, 운동도 조금씩 꾸준히 꼭 하자!


B 가 한국이 아닌 스웨덴에서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가뜩이나 낯을 많이 가리고 예민한 애라서 그런지 초반에는 정말 많이 힘들어했었어. 그래서 어린이집 가는걸 극도로 싫어하고, 그렇다고 어린이집도 안 보내니 아내가 하루 종일 B와 있는 것이 너무 힘들고… 당연히 아이는 그 어떤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않았단다. 기본적으로 B는 지는 걸 싫어하는 친구인데, 일단 대화도 안 통화고 낯을 많이 가리다 보니, 어린이집에 가서도 친구들 눈치만 살피곤 했었어.


같은 어린이집을 이제 2년 정도 보내다 보니, 이제는 B가 현지 언어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한 모양이야. 예전과는 다르게 자신감도 넘치고, 친구들과 대화도 곧잘 하더라고. 예전에는 항상 눈치를 봤었는데, 이제는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친구들이 B의 이름을 부르면서 찾아오기도 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것 같아 나 역시 기분이 너무 좋아.


어떤 육아책에서 봤을 때 아빠 육아의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가 아빠 육아를 경험한 아이들이 대체적으로 사회성이 높아진다고 하더라. 육아휴직을 하고 B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특히나 어린이집 등 하원을 내가 책임지면서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는데, B가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을 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단다.


사실 나는 지난 5년간 일만 하느라 현지 언어는 하나도 못해. 그래서 나 같은 경우에는 영어를 쓸 줄 모르는 어린이집 선생님과는 한 마디로 나누지 못하고, 눈치만 보게 되는데. 오히려 B가 적극적으로 소통을 하고 나에게 통역을 해 주기도 한단다.


심지어 그동안 일하느라 진짜 몸이 축 났는지 육아휴직하고 나서도 감기몸살 등에 여러 번 걸리기도 했어. 아내도 아파서 우리 집에서 안 아픈 사람이 B 밖에 없었던 적도 꽤 된단다. 요즘은 오히려 ‘아이가 부모보다 강하다’라는 절실히 느끼는 중이야.


조금 더 아이를 성숙한 인격체로서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B의 경우 신체발달이 느려서 걷거나 서는 게 매우 느렸던 반면에, 언어 습득이 굉장히 빨라서 한국말과 스웨덴어를 매우 잘 쓰는 편이야. 움직이는 것보다 말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정말 많은 것을 물어본단다. 처음에는 그게 너무 귀찮고, 말도 안 되는 것을 우긴다고 생각해서 아이의 말을 무시하거나 못 들은 척하고, 다른 말을 했던 적이 많아. 정말 놀랐던 부분이, 아이가 내가 그랬던 것들을 다 기억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요즘은 아이의 말을 적극적으로 경청해주고, 정말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도 열심히 아이의 말을 들어 주려 노력하고 있어.


내가 조금 더 노력하니 아이가 밝아지는 것이 보이는 것 같아서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도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여전하지만, 아이의 밝은 미소를 보며 더 큰 행복을 느끼려 노력 중이란다.


너에게 전해 주고픈 좋은 조언이 하나 생겼어. 어린이집에서 보니까 다른 학부모들은 같은 반의 아이들 이름을 대략적으로 외워서, 아침마다 아이들을 보면 꼭 이름을 불러주며 인사를 하더라고. ‘안녕 B야’ 이런 식으로 말이야. 나는 다른 아이들 이름도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어서 계속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고 인사만 하다가, 최근에 아이들 이름을 대충 외워서 이름을 불러주며 인사를 해줬어. 그랬더니 아이들이 나를 보면 B 아빠 왔다고 B를 불러와 주기도 하고 B에게 더욱 살갑게 대해주는 게 크게 느껴지더라고. B도 내가 친구들 이름을 불러주고 하니까 오히려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많이 하곤 해. 별건 아닐지 모르겠지만 J가 어린이집을 갔을 때 같은 반 친구들 이름을 대충 외워서 아이들에게 이름을 불러주며 인사해 줘 보렴. 내 생각에는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야!


B는 먹탐이 심하지는 않은데, 단거를 좋아하고 양치를 싫어하다 보니, 충치가 몇 개 생겨서 결국 치료를 해야 했단다. 아이의 경우 마취를 할 수가 없다고 해서 마취도 없이 충치 치료를 하는데, 아이를 간호사와 함께 누르고, 우는 아이를 지켜보는 게 진짜 마음이 찢어지더라고….


J는 단 음식을 많이 먹곤 하니? 단 음식을 좀 적게 주는 너만의 노하우라던가? 아니면 양치를 싫어하는 B를 잘 구슬려서 양치를 좀 잘하게 할 수 있는 노하우가 있을까? 게다가 B는 정말 씻는 걸 싫어해서 한 번 목욕을 시키는 게 너무 힘들어. 양치를 하거나, 목욕을 재밌게 할 수 있는 너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꼭 좀 알려 주라!


등원 준비 관련 노하우는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어. 안 그래도 요즘 B의 자립심을 좀 키워줘야 할 것 같은 시기라 나도 고민이 많았거든


육아휴직이라 시간이 많으면서도 육아와 주부생활을 해 보니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


바깥일, 집안일 둘 다 해내는 널 보며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 하지만 그만큼 더욱 체력적, 정신적으로도 네가 얼마나 고달픈지 요즘 편지를 통해 잘 알게 되니, 그동안 너를 너무 대단하게만 보고, 내가 뭐라도 도와줄 생각을 왜못 했었나 라는 후회도 든다.


우리가 육아를 하며 사실 말할 곳도 없고, 답답함을 혼자서 그냥 삭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편지로라도 털어놓고 속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으니 좋다. 너 역시도 혼자 쌓아두지 말고 이렇게 털어내며 조금이나마 속이 시원해졌으면 좋겠다. 건강하자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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