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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선 Jul 27. 2019

별을 굽다

샘의 글

지하철은 당산을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퇴근시간 신도림 역에서 치이다가 간신히 지하철에 올라탔다. 사람들이 빈틈없이 가득 차 있었다. 앞 양복쟁이 아저씨 뒤 클럽 가는 새내기, 양 옆 지친 퇴근과 하교와 하루 마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등을 둥근 벽 삼아 끼어서 갔다. 담배냄새와 머리냄새, 분 냄새, 김치찌개 냄새, 각자의 하루를 짐작할 수 있게 밖의 냄새가 꾸덕꾸덕 묻은 등이었다. 냄새를 분간해서 싫은 냄새를 묻힌 등은 피하려다그만두었다. 발 옮길 틈 없이 모두 지그시 서로를 누른 채였다. 지하철에서 본 사람들이 모두 붉은 흙 가면 같다던 어느 시의 말처럼 다들 갓 만들어진 도자기 같았다. 최대한 접촉면과 불쾌함을 늘리지 않으려고 모두 표정도 몸짓도 미동 없이 가만했다. 나도 내내 붉은 흙 가면이었다. 내 숨 들이 마실 틈 없는 차칸에서는 서로의 숨을 공유해야했다. 들이마셔보면 남의 숨 같아서 최대한 숨을 참다가 뱉었다.     


그렇게 다들 참을 수 있을 만큼의 불쾌함을 간당하게 유지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살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 때 지하철이 당산을 들어섰다. 


햇볕이 쏟아졌다.      


와아. 뒤에서 작은 탄성이 터졌다. 더하거나 덜지 않고 마음에서 터져 나온 탄성이었다. 나는 그 작고 진심인 탄성의 주인이 궁금해서 발을 꼼지락 꼼지락 움직여 뒤를 돌았다. 작고 하얀 할아버지였다.     


몇 가닥 남지 않은 새하얀 머리를 얌전하게 2대 8로 쓸어 넘긴 할아버지가 입을 작게 열고 한강의 봄 해질녘을 보고 있었다. 자글자글한 강 주름에 봄볕이 빈틈없이 끼어 반짝거렸다. 입가 주름이 동그래진 할아버지가 빛나는 강에 눈을 떼지 못했다. 해질녘이나 봄, 강은 세상 처음 본다는 듯이. 할아버지 눈도 반짝거렸다.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짧은 한강 구간이 지나자 지하철엔 다시 어둠이 깔렸다. 햇볕을 거두어 낸 할아버지 얼굴도 다시 검버섯 핀 지친 노인이 됐다. 잊었던 김치찌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피로가 몰려왔다. 방금까지 봄볕에 적셔져서 몸이 노곤해졌던 것이었다. 빈틈없는 차칸에선 아무나에게 슬쩍 기대도 모를 것 같았다. 한 정거장이 더 남아있었다. 나는 나머지 한 정거장은 눈을 감고 살그머니 김치찌개, 담배, 화장품, 사무실 중 하나의 등에 기대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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