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사랑하세요?

남의 집 개와 '어쩔 수 없이' 반동거하기

by 산호초

나 살던 셰어하우스 근처 일산호수공원에선 이상한 유모차가 종종 보였다. 아기가 타고 있다기엔 지나치게 작다. 궁금한 마음에 그 사람을 앞지르며 옆을 흘깃하면, 그 안엔 나이들어 앙상한 개가 있었다. 일산엔 어디든지 개들이 돌아다녔다. 말티즈나 치와와같이 작은 종 말고, 난 이름조차 모르는 털북숭이 큰 개들도 많았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득시글한 세상, 여기서 유일한 외계인이 나다. 나는 이젠 거의 멸종해가는 문명에서 왔다. 개는 '동물이지 가족은 아닌' 세계다.




그 세계서 개는 험하게 키워졌다. 우리라고 개를 싫어하는 건 아녔다. 아버지는 시골 길을 가다가도 개가 보이면 '똥개야' 불러세워 같이 놀았다. 제기차기하듯 발을 높이 들어 올리면 개가 발을 물려 펄쩍 뛰는 식이었다. 그러나 개와 친하다고 해서 가족인 건 아니었다. 할아버지 집 큰 개는 목줄을 맨 채 마당에서 살았다. 봄에 현관문을 열어두면, 사람들이 안방에 늘어져 TV를 보는 새 고삐 풀린 개가 거실까지 들어왔다. 아버지가 몸을 일으켜 몰아내곤 했다. 집 안에 들어온 개를 내보내는 게 교양인 세계서 나는 자랐다. 네 자릴 지키란 명령이 그 목줄이었다.


그러나 남의 개에게 그럴 순 없다. 산책길에 끼어들지 말고, 밥풀 같은 이빨을 드러낸 채 으르렁대지 말라고. 일산호수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크고 작은 개들을 자주 마주쳤다. 개들은 나를 지나치는듯하다가도 별안간 몸을 틀어 발치로 달려들곤 했다. 닿기 싫어 뒷걸음질쳐도 목줄이 길면 소용없다. 대부분은 그러지 않았지만, 말로만 '하지 마' 하고 목줄은 건성으로 당기는 주인도 더러 있었다. 개가 바짓단 좀 물었기로서니 사람이 돼서 이를 드러내고 '아이씨' 하는 건 야만이겠지. 하지만 내가 개와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어도 험한 말이 나왔을 거다. 남의 가족이랑 굳이 얽히고 싶진 않다. 심지어 개들은 가끔 핥기까지 하는데. 침은 개가 아니라 남의 집 아기가 묻힌 거여도 찝찝한데.


그래도 개의 버르장머리를 탓할 순 없다. 저 맑은 눈 짐승에게 무슨 잘못이 있으랴. 잘못한 건 대개 인간이다. 셰어하우스 옆 주택에서 기르는 개는 가끔 허공에다 짖었다. 하필이면 큰 개라 말티즈처럼 알알알 거리는 게 아니라 단전에서 우러나는 컹컹 소리가 났다. 때는 새벽 세네 시. 도시 변두리라 그 시간이면 도로에 행인도 차도 코빼기 하나 안 보이는데, 주인을 데리러 온 저승사자한테 짖기라도 하는 걸까. 일주일에 두 세 번은 그러는데 주인이 '하지 마' 저지하는 소린 한 번도 안 들렸다. 민폐를 웃어넘기는 게 사랑이라지만, 나는 개를 사랑하지 않는데. 사람도 사랑하기 어려운 마당에 그것까진 무리일 듯한데. 나는 개와 척을 진 게 아니다. 내가 등 돌린 건 사람이다. 이건 '우리 애는 안 물어요 / 안 짖어요' 하는 당신과 '그쪽 개 그쪽한테나 이쁘지'하는 나 사이, 세계관의 충돌이니까.


아프리카 속담에 아이 하나를 기르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댔다. 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건 그를 만지고, 보고, 듣고, 서로 대화한다는 거다. 난 개를 만지지 않지만, 보고 듣고 소통하는 건 한다. 침대에 누워 쉬는데 개 짖는 소리가 들려도 참고, 인도 구석에 개가 오줌 누는 걸 봐도 지나가고, 남의 집 개가 가까이 오려 하면 개에게 경고하듯 '쓰읍-!' 한다. 사람은 하루의 절반을 집 밖에서 산다. 인간의 집은 온 지구다. 그러니 나도 외출한 동안은 온 동네 개들과 반동거하는 셈이다.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았건 간에.




이래도 개를 사랑하지 않는 내 맘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개가 내 산책길에 끼어들 때 목줄을 제대로 당기지 않는다면, 나라고 가만 있진 않을 것이다. 나는 개를 사랑하는 당신들의 마음을 이용하겠다. 내 경험상 애견인들은 '개'라는 주제에 대해 몇 시간이고 이야기할 준비가 돼 있다. 핸드폰 앨범에 자기 집 강아지 사진이 이 수십 장은 저장돼있기 때문이다. 자기 집 개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내 쪽에서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귀엽네요' '그랬군요' 맞장구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정말 당신네 집 개를 귀여워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이건 내 처세술일 뿐이다. 개에게 무관심한 사람이 개를 사랑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이다. 처음 보는 사람과 마주앉은 자리. 뭐라도 말을 해야 하지만 무거운 침묵만 흐를 때. 검은색 코트 깃에 미처 떼지 못한 밝은색 개털이 보일 때. 이거다. 나는 눈을 반짝이고 입을 연다.


"강아지, 좋아하세요?"




외줄타기 인류애:

17살부터 26살까지 이사를 10번 했다. 기숙사·고시원·셰어하우스를 전전하다 가족 아닌 남과 10년을 부대꼈다. 남은 진절머리 나고 방구석은 우울하다. 아직도 발 하나 헛디디면 ‘아 진짜 싫다’의 늪으로 떨어질 것만 같다. 인류애는 외줄타기, 사람과 간신히 더불어 사는 법을 쓴다.


이정표:

2013년~2015년) 대구외고 기숙사

2016년) 중앙대 서울캠퍼스 기숙사

2017년) 학교 후문 H 고시원

2018년) 학교 후문 L 고시원

2019년 상반기) 중앙대 서울캠퍼스 기숙사

2019년 하반기) 학교 후문 B 고시원

2020년~2021년 4월) 학교 후문 L 고시원

2021년 4월 둘째 주) 일산 S 고시원

2021년 4월 셋째 주~2022년 1월) 일산 변두리 셰어하우스 (▶현위치◀)

2022년 2월~현재) 서울 중랑구 원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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