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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초 Jul 15. 2022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디서 잘까?

눈물 나게 평범한 연애사

남자친구와 처음으로 뽀뽀한 곳은 대학교 캠퍼스의 비상계단이었다. 교내에서 가장 으슥한 곳이었다. 모서리에 처박힌 채 껴안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불청객과 눈이 마주쳤을 때, 온갖 생각이 주마등같이 스쳤다. 이렇게 외진 곳에도 사람이 다니다니. 아님 학교에서 갑자기 사생활이 필요해진 학생들이 죄다 여길 떠올리는 건가. 손잡고, 서로 농담하며 스스럼없이 웃는 연애는 밖에서 해도 된다. 남들 없는 데서 해야 하는 나머지 절반의 사랑이 문제다. 문득 궁금해졌다. 다들 어디서 입 맞추고, 껴안고, 맨살을 부비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들은 저들끼리 고립돼야 한다. 공공연하게 붙어있는 연인만큼 별꼴인 건 없다. 언젠가 카페에서 아무개의 무릎 위에 앉아 뽀뽀하는 아무개를 보고 한 생각이다. 그렇지만 남자친구와 나에겐 ‘우리만의 공간’이 없었다. 남자친구는 기숙사에, 나는 고시원에 살고 있어 서로 초대할 형편이 안 됐다. 대신 우리만 아는 곳이라도 만들자는 생각으로 인적 드문 곳을 찾아다녔다. 연애 초반, 우리의 낭만은 학교 뒤편에 있는 야트막한 숲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는 일이었다. 도시에 있는 숲치곤 나무가 우거진 데다, 중간부터 길이 끊겨 혼자서는 절대 가보지 않았을 곳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은 원래 물불 안 가리니까. 그래서 모텔도 어디에나 있는 게 아닌가. 골목길에도, 대로변에도, 대학 캠퍼스 근처에도, 노량진의 공무원 학원가에도, 장사가 될까 싶은 시골 길에도.          


모텔은 어디든 비슷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빨강·파랑·노랑의 원색 네온사인. 이름은 ‘러브(love)’처럼 노골적이거나, ‘드림(dream)’, ‘뉴(new)’ 같이 철 지난 영어 단어를 써서 하나같이 촌스러웠다. 데이트할 때 모텔에 가는 것만큼 뻔한 연애도 없다고 생각했다. 거긴 자취방과 달리 너와 내가 아니어도 누구든 드나드니까. 우리 연애가 그렇게 되도록 두진 않을 거라며 애써 지나치는 동안 여름이 무르익었다. 밖은 살 맞대고 걷기엔 너무 더웠다. 모텔 대신 에어비앤비 방을 빌렸다. 일반인이 자기 소유 방을 타인에게 빌려주는 거라 건물 외관도, 인테리어도 제각각이었다. 모텔보단 덜 뻔하고 사람 사는 곳 같았다. 서로의 자취방에 놀러 가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매번 새 방이라 가도 가도 낯설긴 했지만.            


에어비앤비로 빌린 방엔 세면도구가 없을 때도 있었다. 남자친구는 뭘 쓰든 상관 않는 쪽이라, 아무거나 쓰는 게 싫은 내가 이것저것 챙겨갔다. 처음엔 트리트먼트나 고데기를 비롯해 토너, 화장 솜, 에센스까지 한가득이었다. 일일이 챙기기도 귀찮았고, 무엇보다 무거웠다. 외박하는 날이 늘수록 내 짐도 단출해졌다. 나중엔 샴푸, 칫솔, 로션뿐이었다. 대충 씻어 꾀죄죄한 모습으로 함께 있다 보니 서로의 민낯에 지나치게 익숙해졌다. 나는 남자친구가 잠옷으로 입는 체크무늬 반바지를 보고 촌스럽다며 놀렸다. 내가 어디로 튈 줄 모르겠다던 그는 이젠 내가 뭘 하든 ‘그럴 줄 알았다’고 했다. 내 옆에 누워 유튜브를 보는 그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볕이 은은하던 한낮의 숲 속에서, 내가 넋 놓고 올려다보던 얼굴은 아니었다. 그가 바라본 나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우리는 모텔로 가기 시작했다. 누구도 의도치 않았으나 어느새 그렇게 됐다. 자주 보는 사이에 같이 있는 게 거추장스러우면 안 되니까. 거기선 샴푸도, 로션도 챙길 필요 없어 함께 있는 일이 사소해지니까. 청춘 영화 속 주인공을 보면 가끔 연애 초반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에선 사랑이던 것이 여기서는 현실. 그곳에선 한 편의 사랑 시였던 연애편지도, 우리가 쓰면 ‘같은 반 친구에게 한 마디’ 코너에 나오는 말로 가득한 게 당연하지. 만나서 반가워. 앞으로도 잘 지내자. 그래서 나에게 사랑의 도피란, 손에 손잡은 두 사람이 모텔이 즐비한 골목길로 슬쩍 사라지는 것. 사랑의 짜릿함이란, 모텔 샴푸로 감아 버석거리는 머리에서 생긴 정전기. 사랑의 뜨거움이란, 같은 이불을 덮고 자며 따끈해진 옆 사람의 뺨. 내가 그에게서 확신하는 건, 함께 먹을 사람이 있어 오늘은 배달음식을 덜 남기리라는 것.               




사실 난 알았다. 우린 시작부터 평범했다. 운명을 만나면 뎅-하고 종소리가 들린다는 건 남 얘기다. 처음으로 마주 앉은 카페, 커피가 나왔음을 알리는 진동벨이 지잉- 울리는 순간, 나는 우리가 서로의 운명이긴 이미 글렀다는 생각을 했다. 한 해 입학하는 인원만 해도 약 4,000명인 학교인데, 비상계단에서 뽀뽀한 사람이 우리뿐이었을까. 그보다 더한 것까지 한 연인도 있지 않을까. 서두르지 않으면 크리스마스이브 숙소가 매진되기 일쑤지만, 죽고 못 살던 사람들도 남보다 못한 사이로 헤어지는 세상이지만, 지금 맞잡은 손이 얼마나 부드러운진 나와 너만 알지. 그러니 우리의 연애사는 뭔가 다른 구석이 있을 거란 일말의 기대로, 흩날리는 벚꽃 아래 수많은 연인 속에 섞여든다. 이내 구분할 수 없다.




외줄타기 인류애:

17살부터 26살까지 이사를 10번 했다. 기숙사·고시원·셰어하우스를 전전하다 가족 아닌 남과 10년을 부대꼈다. 남은 진절머리 나고 방구석은 우울하다. 아직도 발 하나 헛디디면 ‘아 진짜 싫다’의 늪으로 떨어질 것만 같다. 인류애는 외줄타기, 사람과 간신히 더불어 사는 법을 쓴다.


이정표:

    2013년~2015년) 대구외고 기숙사

    2016년) 중앙대 서울캠퍼스 기숙사

    2017년) 학교 후문 H 고시원

    2018년) 학교 후문 L 고시원

    2019년 상반기) 중앙대 서울캠퍼스 기숙사

    2019년 하반기) 학교 후문 B 고시원

    2020년~2021년 4월) 학교 후문 L 고시원 (▶현위치◀)

    2021년 4월 둘째 주) 일산 S 고시원

    2021년 4월 셋째 주~2022년 1월) 일산 변두리 셰어하우스

    2022년 2월~현재) 서울 중랑구 원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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