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끔한 폐허. 신도시 가장자리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봄이면 깐 지 얼마 안 된 보도블록 틈새로 어린 잡초가 솟는다. 몇 주 후면 이미 무성하다. 오가는 발걸음으로 길 닦을 행인이 모자란 탓에, 가끔은 시에서 고용한 일꾼들이 풀을 베러 찾아왔다. 수건 달린 농사용 챙모자를 쓰고, 윙- 돌아가는 벌초기를 든 채였다. 여긴 도시고 사람 사는 곳이라며 한나절 영역표시를 해도, 얼마 후면 풀은 다시 원래만큼 자랐다. ‘인류가 사라지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라는 다큐멘터리에 나올 법한 풍경이 됐다.
당시 나는 일산 변두리에 살았다. 자취방이 있는 건물을 기준으로, 앞에는 회색 신도시가, 뒤에는 길가 풀이 제멋대로인 1차선 도로가 있었다. 시골 길이 흔히 그렇듯 그 길은 도로와 인도가 구분돼있지 않았다. 덕분에 집 뒤편 길을 따라 걸어가 본 적도 없었다. 봄밤에 창문을 열면, 가본 적 없는 곳에서부터 갖은 소리가 들려왔다. 개구리와 귀뚜라미가 잔잔히 끓는 물처럼 울었고, 매일 새벽 세 네 시쯤 우는 수탉도 저 멀리 있었다. 때론 서로 다른 집에 사는 마당 개들이 대화하듯 짖기도 했다. 한쪽에서 먼저 컹-컹- 하면 다른 쪽에서 월월- 하는 식이었다. 침대에 누워서 ‘그 개들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멀까’ 생각하면, MP3로 빗소리를 듣는 우주인이 된 것 같았다. 소리로 들을 뿐 직접 보거나 만질 수는 없는, 가깝지만 먼 것들이어서였다.
자연이 보기보다 더 가까이 있다는 건 여름에 알았다.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던 아침. 페달을 밟고 가는데, 자전거 바퀴 앞에 커다란 풀잎 같은 게 꼿꼿이 서 있었다. 두 팔을 쳐든 사마귀였다. 뭉개지 않으려고 핸들을 꺾다 그만 옆으로 넘어질 뻔했다. 여름은 수풀에 숨어있던 게 밖으로 몰려나오는 계절이었다. 길 한가운데 우두커니 선 사마귀를 마주치는 날이 늘었다. 비 온 뒤마다 거리 곳곳엔 갈색 실금이 생겼다. 말라죽은 지렁이 떼였다. 그 많은 지렁인 다 어디서 온 건지, 이번 비에 그렇게 죽고도 다음 비에 또 그만큼 죽었다. 나는 걸으며 바닥을 자주 내려다보게 됐다. 별생각 없이 걷다가 벌레라도 밟을까 싶어서였다. 죽을 예정이거나 이미 죽은 것들이 눈에 띄곤 했다. 턱이 모로 돌아간 사마귀. 근처에 풀숲 하나 없는 돌다리로 기어가는 지렁이, 어디 깔려 찌그러진 귀뚜라미, 내 방 책꽂이에 집을 지은 거미.
차도로 달려드는 개구리를 신발 앞 코로 걷어낸 날엔 약간 짜증이 났다. 개구리의 눈은 움직이는 것만 볼 수 있다던데, 이 앞으로 지나가는 트럭은 왜 못 보는 걸까. 보고서도 뛰는 걸까? 그렇다면 개구린 저 차가 무엇인지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닐까. 저만한 속도면 내 뜀뛰기로 피해 갈 수 있겠다며 자만했거나. “저 어릴 때까지만 해도 여기 주변에 다 논밭이었어요.” 일산 토박이라 도시와 함께 커왔다는 같은 팀 조연출은 스물여덟이었다. 개구리의 한살이엔 10년이 필요하다. 1990년대 초 일산이 들어선 후 몇 세대 되풀이하지 않은 셈이다. 도시에 적응하긴 짧은 시간이다. 차도로 뛰어들면 죽는다는 걸 아는 개구리만 살아남으면, 그들이 새끼를 치고 또 쳐서 일산에 사는 개구리 대부분이 차도로 뛰어들지 않게 될까. 물론 개구리 사는 곳이 그때까지 남아있을진 모른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지나가는 동안, 우리 집 근처에만 건물이 두 개는 더 지어졌다. 몇 년째 미분양 상태인 상가가 넘쳐나도 새 건물은 꾸준히 들어섰다. 사람은 오라 해도 안 오는데, 사람 아닌 것들이 갈 곳은 점점 사라졌다.
비가 그친 저녁. 길에서 빌린 공유자전거를 타고 일산 변두리를 돌아다닌다. 물에 젖은 도로 위로 가로등 빛이 번들거렸다. 도시에 남은 마지막 공터에선 짙은 풀냄새가 난다. 건물이 없어 공터라 부르곤 있어도 풀이나 나무 같은 게 제멋대로 우거진지 오래라 그렇다. 공터 앞 인도엔 물방울무늬가 촘촘하다. 누가 뱉은 껌 자국이 아니다. 공터에서 오래 살아 덩치 커진 달팽이들이다. 반납한 자전거를 세워두고 그 사이를 걸어간다. 한 걸음당 지나치는 달팽이만 너덧이다. 앞만 보고 자전거를 탔다간 다 밟아 죽였을 것들이다. 도시가 커지는 걸 나는 막을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이기심인지, 나조차도 도시에 사는 게 더 편하다. 그러니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닥을 보며 걸을 수밖에. 이건 아직 살아 버티는 것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다. 멀리서 보면 겸손해 보일지, 잘못한 사람 같을지 모르겠다.
직접 찍은 사마귀
외줄타기 인류애:
17살부터 26살까지 이사를 10번 했다. 기숙사·고시원·셰어하우스를 전전하다 가족 아닌 남과 10년을 부대꼈다. 남은 진절머리 나고 방구석은 우울하다. 아직도 발 하나 헛디디면 ‘아 진짜 싫다’의 늪으로 떨어질 것만 같다. 인류애는 외줄타기, 사람과 간신히 더불어 사는 법을 쓴다.
이정표:
2013년~2015년) 대구외고 기숙사
2016년) 중앙대 서울캠퍼스 기숙사
2017년) 학교 후문 H 고시원
2018년) 학교 후문 L 고시원
2019년 상반기) 중앙대 서울캠퍼스 기숙사
2019년 하반기) 학교 후문 B 고시원
2020년~2021년 4월) 학교 후문 L 고시원
2021년 4월 둘째 주) 일산 S 고시원
2021년 4월 셋째 주~2022년 1월) 일산 변두리 셰어하우스 (▶현위치◀)
2022년 2월~현재) 서울 중랑구 원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