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문장(命章)

이름 없는 이름 - 『도덕경』 34장

by SANi

오늘의 명장(命章)


大道汎兮 其可左右(대도범혜 기가좌우)

萬物恃之而生而不辭 功成不名有(만물시지이생이불사 공성불명유)

衣養萬物而不爲主 常無欲 可名於小(의양만물이불위주 상무욕 가명어소)

萬物歸焉 而不爲主 可名爲大(만물귀언 이불위주 가명위대)

以其終不自爲大 故能成其大(이기종부자위대 고능성기대)


『도덕경』 34장


큰 도(道)는 넓어서 어디든 닿을 수 있다.

만물은 도(道)에 의지해 살아가지만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니, 도(道)는 모든 것을 이루고도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다.

만물을 거두어 입히고 먹여도 그 주인이 되려하지 않으며 늘 욕심이 없으니 언뜻 작다고 여겨질 수 있다.

허나 만물이 모두 도(道)로 귀일해도 그 주인이 되지 않는 것은 가히 크다고 할 것이다.

끝내 자신을 위대하게 만들지 않으니 진정으로 그 위대함을 이룰 수 있다.


단상


이름. 의미.

규정하는 순간, 가늠하게 된다.


『도덕경』이 말하는 “이름 없는 도(道)“와 김춘수가 <꽃>에서 노래한 애타는 "꽃의 이름",

두 개의 이름은 다르면서 하나다.

딱히 뭐라 부를 말이 없는 도는 모든 것이 가능성의 상태로 존재하는 무한한 본질이다.

그러다 이름이 주어진 순간, 그 가능성은 특정하고 구체적인 의미로 규정되어 세상에 드러나고자 한다.

김춘수는 <꽃>에서 이름을 부르는 행위, 그 존재가 단순한 몸짓에서 벗어나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으며 누구도 나의 이름을 불러주어 꽃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다만 이 부름은 단순히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 아닌 관계 속에서 존재를 의미 짓는 행위다.


이름이 관계 속에서 만들어질 때 존재는 비로소 꽃이 되고 그 의미는 특별해진다.

그것은 억지로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존재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누군가를 향한 인식과 애정을 넘어 그 관계 속에서 비로소 존재를 완전하게 한다.

『도덕경』은 이름 짓기의 행위와 그 한계를 짚어주고 김춘수의 <꽃>은 이름 부름이 관계 속에서 만들어내는 깊은 애정과 존재의 완성을 노래한다.


억지로

불러지지 않아서

기어이

얻어지는 이름도 있다.


관계 속에서 꽃피는,

가장 큰 가능성의 이름.


이름 없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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