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기에 함께 하고 싶어했던 학교
그들이 갖고 있는 문화는 나의 동공을 크게 만들기에 충분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고, 그게 과연 정답일까 최선일까라며 계속해서 더 나은 답을 찾도록 다독이는 교육법을 이끄셨으니까. 그렇게 자랐던 몇몇의 학생들은 미국의 대학에서 삶을 보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들의 졸업시험도 쉽지 않았다. 마치 대학교에서 논문을 쓴 뒤 졸업 심사를 받듯, 자신들이 선택한 자기들만의 프로젝트와 결과물로 심의 받고 합격해야만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이 곳에서 졸업을 준비하고 있는 한 학생은 자신의 졸업작품으로 ‘앞으로 100년의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제 책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내일학교는 본질적으로 각자의 ‘성장’을 북돋는 문화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성장이 어떤 지식만을 주입하는게 아니라, 각자가 갖고 있는 자기 자신만의 그 무엇을 틔우려는, 마치 농부가 싹이 날 때까지 기다려주듯이 곁에서 물을 주고 볕을 받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잘 자랄 수 있게 도와만 줄 뿐, 그 안의 성장은 씨앗에게 맡기는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이 곳의 선생님들을 ‘자람 도우미’라고 부를 뿐, ‘선생님’이라는 단어로 부르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졸업해 나온 학생들은 이 곳을 지키는 체인지 메이커로 학교 옆에 사무실을 차려 재정적으로 다시 일으키려했다. 내일학교가 길러낸 생명들은 다시 이곳을 살리는 공간으로 발돋움하고 있으니 이 순환의 모습들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학교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을 자본주의라는 세상에 몸소 부딪치며 배워나가는 성장의 기회라며 창업을 권한다는 내일학교.
학과 교육보다, 서로 토론하고 디베이트하며 인간이 갖고 있는 여러 주제들에 답을 알아내게 만드는 그들의 교육방식은, 내가 고민하고 알고 싶어하던 참교육의 진짜 모습과도 같았다. 그들은 AI와 빅데이터로 우리가 몇 초만 키보드를 뚝딱이면 알아낼 수 있는 ‘지식’을 배우는게 아니라, 그 가슴 깊은 곳에서 이 세상을 위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길어내는 사람들 저마다 갖고 있는 그 씨앗을 찾아내는 일을 도와주는 교육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씨앗이라는 것은 남이 일 깨워줄 수 없고, 그 스스로 찾아내는 수 밖에 없는 것. 그렇기에 그들은 ‘선생님’이라는 단어 대신 ‘자람 도우미’라는 단어로 아이들과 함께 자라나고 있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내기 위한 탄탄한 기초를 쌓게 해주는 이들의 교육방식이 나에게는 너무나 좋아 충격적이다. 일반학교들이 이 내일학교의 교육을 접목시킨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안의 질문을 만나 깨어나고, 자신의 일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어떨까.
’내일농장‘이라는 자연양계농장. 닭들의 건강을 생각해 너무 많은 닭을 하나의 비닐 하우스에 두지 않았다. 부엽토와 직접 만든 사료, 경북 산자락 이곳저곳에서 자라난 풀들을 뜯어 먹이시기도 하고, 시간별로 풀어두어 편안하게 신선한 자연의 풀 속서 자라도록 했다.
대안학교에서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건강과 때묻지 않은 식자재를 먹이고 싶어 이리저리 방법을 찾으시다 직접 닭을 기르시던게 그 출발이었다는 ’내일농장‘의 달걀. 그리고 하나의 젖줄처럼 이 곳 대안학교가 경제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지속가능해지도록 받쳐준 하나의 금전적 수단이기도 했다.
한 때는 그 농장의 이름이 ‘파아란 지구 농장’으로 지구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만든 농장이라고도 했다. ‘파아란’. ‘파란’ 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와과 ‘파아란’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의 두 느낌이 달랐다. ‘파아란’이 보다 하늘 구름의 순수하고 허옇지만 하늘 뿐만이 아닌 온 세상을 담는 큰 단어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이 두 단어처럼 섬세한 심상을 느끼고 ‘파란’이 아닌 ‘파아란’이라는 단어를 선택해 이름으로 지을 생각을 하셨을까?
그분들의 마주하면서 내가 느낀 건, 자연의 속도를 기다려주는 것이 사람을 기를 때나 동물을 기를 때나 모두에게 동일하다는 자연의 법칙이다. 내가 배운 건 단순히 몇십만원의 프리랜서 금액을 줄다리기 하듯 이렇게 저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과는 다르게 너무나 소중한 교훈을 배운 셈.
생명은 그 자연의 속도대로 기다려줘야한다는 점. 그들과의 인연이 앞으로 어찌 될지는 짐작할 수 없다. 그저 또 나의 길을 세상이 건네는대로 갈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