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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나이트 Aug 31. 2016

[소설] 55. 사랑이 다 그렇지 뭐

Chapter  1. 외로움이 외롭지 않은 나 (2)

나는 침대에 누웠다. AICPA? 변호사? 로스쿨은 한 번도 생각 안해봤지만, 미국 회계사는 좀 관심이 있긴 했다. 이직이나 승진에 큰 도움이 되는 자격증이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승진 같은 것에 목을 메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딱히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미국 회계사라... 타이틀은 멋진데 말이다.






뭔가 도전하고 싶기는 했다. 딱히 취미 삼아 노는 것도 없는 현실 속에서 취미로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는 것만큼 남는 장사도 없었다. 게다가 매일 신문에서 자기 개발을 해야 한다. 발전하는 삶을 살아야 뒤처지지 않는다는 말들을 듣다보니 위기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아쉬웠다. 수험생이 된다는 것은 일단 회사를 다니는 시간, 혹은 먹고 자는 시간을 빼면 시험 공부에 모두 올인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제대로 할 거 아니면, 안하느니만 못하니까. 그렇다면 뭔가를 해 놓고 수험생이 되야 잡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치 삼겹살을 마지막으로 먹고 나서야 후회없이 다이어트를 시작할 마음이 드는 기분이랄까.


문제는 뭘 해야 다시 시험에 도전 하고 싶은 기분이 들 것인지, 그것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나의 마지막 삼겹살이 여행인지. 다이어트인지. 뭔지 말이다. 사실 다이어트도 더 이상 딱히 해야할 필요도 없고, 여행은 더 이상 흥미롭지도 않았다. 쇼핑은 공부하면서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짬짬이 하면 되고 말이다.


사실은 결혼에 대한 마음을 정하고 시험 공부를 시작하고 싶은 것 같았다. 결혼을 하게 된다면 애기 낳고, 애기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전업을 할 생각이라 굳이 시험을 볼 필요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엄마 말대로, 육아 휴직 기간에 엄마 도움 받아서 공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 같기도 했다. 어쨌던 결혼에 시험이 방해되거나. 시험에 결혼이 방해되는 상황의 가능성 자체가 싫었다.


결국 시험 공부를 한다는 것은, 반쯤은 독신주의를 선언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결혼이란 이슈 자체를 시험 이후로 밀어야 하고, 그것은 시험에 언제 붙는 지에 따라 나는 30대 후반에야 결혼을 생각할 여유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을 뜻하니까 말이다.


사실 언니를 보면서 애를 일단 낳으면 무엇이든지 커리어를 시작한 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많이 깨달았다. 아무리 친정 엄마가 도와준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 엄마는 엄마인 것이다.

물론 많은 여성들이 애도 낳고,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살림도 하고 다 잘하고 사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잘난 여자가 아니었다. 독립해서 살면서 느끼는 건데 목표를 제시해주고, 관리해주고, 환경을 만들어주며 용기를 준 부자 부모님 덕분에 전문직 여성으로 살게 된 것이지. 이렇게 좋은 부모님과 환경이 아니었으면 나는 그저 그런 대학 겨우 졸업하고, 그저 그런 사무일을 전전하면서 그저 그렇게 먼지처럼 살았을 주제 밖에 안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남자친구 하나 없으면서, 미래의 계획을 세울 때 연애니 결혼 등을 염두에 두고 고민하는 내 꼴이 너무 웃겼다. 결혼에 안달나서 미리 신혼여행계획까지 혼자 세워둔 모태솔로 영국 노처녀 같았다.


나는 생각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일단 잠을 자기로 했다. 급할 것은 없었다. 내일은 느긋한 주말을 즐기고 천천히 결정해도 된다.






조카는 냉탕에서 처음 만난 애들하고, 바가지를 장난감 삼아 신나게 놀고 있었다. 엄마와 언니와 나는 온탕에 나란히 앉아 조카를 지켜보며 이런 저런 수다를 떨었다.


“넌 근데 진짜 아무도 없냐?”


"없어요.”


“독립하면 일 년 안에 애 생겨서 결혼 한다고, 니 언니가 그랬는데 너 진짜 아무도 없어?”


“뭔 소리야. 혼자 사는 거랑 애인 생기는 거랑 뭔 상관이예요. 그리고 내가 무슨 마흔이야? 나 이제 서른 하나야. 징그럽게 왜 그래요!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어요!”


계속되는 결혼 독촉에 짜증이 나서 엄마에게 톡톡 쏘며 대꾸했다.


“그때 왜 그 집에 데려온다고 했다가 말았던 그 놈은 잘 지낸데?”


“아, 몰라. 학원 차리네 하는 거 같긴 한데.”


“그래? 그럼 원장이네... 그때 그냥 좀 한번 볼걸 그랬나......”


“엄마! 쫌! 보라는 선도 다 보는데 왜 그래요? 그때는 쳐진다고 보기도 싫다더니, 이젠 아무한테나 못 보내서 안달이예요? 요새 서른은 아주 젊어요. 아무 문제 없다구요. 정말 좀 그만해요. 내가 직업이 없어, 뭐가 없어. 왜 못 치워서 안달이냐구요. 에이 정말 짜증나서 못 있겠네.”


나는 벌떡 일어나 건식 사우나에 들어갔다.


엄마는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다. 드라마를 보면 20대에 직장에서 자리 잡고, 결혼하고, 결호나면 바로 3개월 만에 임신하고, 애 낳고, 전업이 돼서 맨날 화장하고 옷 차려입고 내조를 한다. 그게 말이 되는가? 솔직히 나는 부모 잘 만나서 이렇게 회사다니지만 많은 이들이 20대에는 직업조차 잘 못 잡고 방황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인데 말이다.

나는 한 숨을 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게다가 갑자기 현욱 오빠는 왜 물어보는지 원. 내가 무슨 폐기 시간이 임박한 썩어가는 고기도 아닌데, 이제는 헤어진 남자친구 다시 뒤져보라는 식의 말을 하는 게 속상했다.


물론 나는 독신주의는 분명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 맘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랑과 결혼이라는 추상적인 그 무엇인가가 내 현재 인생이 망가뜨리고 있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났다. 그렇다고 굳이 독신주의로 노선을 변경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때 조카가 벌컥 문을 열었다.


“이모, 여기서 뭐해? 앗 뜨거워. 아!!!!!!”


조카가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조심하지 않고 들어오다가 사우나 안의 벽을 만진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 조카를 안았다.


조카가 목욕탕이 떠내려가라고 소리지르며 울었다. 사람들이 달려왔다. 나는 어버버하면서 내가 한 거 아니라고 애가 혼자 그런 거라고 변명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다행히 조카는 많이 다치지 않았다. 손톱 반의 반 만한 화상 자국이 손바닥에 조금 남았을 뿐이다. 그렇지만 언니는 화상이라면서 후시딘을 찾고 형부에게 전화하고 난리가 났다. 흥분해서 높아진 언니의 목소리에 머리가 아팠다.


게다가 내 탓도 아니고, 별 것도 아닌 사건에 눈치보고 죄책감이 들어서 더 짜증났다. 엄마는 계속 언니 눈치를 보며 더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우리들은 얼른 옷을 입고 집에 왔다.


형부가 집에 와 있었다. 굳은 표정의 형부를 보자 겁이 덜컥 났다.


“형부 죄송해요. 예린이가 내가 사우나 안에 있는 거보고 문 열다가 그랬어요. 내가 더 잘 봤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아니야. 괜찮아. 처제”


형부는 입을 다물고 예린이의 상처를 자세히 보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꼼꼼히 살펴보던 형부는 별거 아니네 라고 중얼거리더니 예린이에게 방에 들어가 만화를 보라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언니랑 싸우기 시작했다.


“여보! 이런 별것도 아닌 걸로 일하는 사람 오라가라하면 어쩌자는 거야? 오늘 말일이라 장부 정리에, 회의에, 수술에 일이 얼마나 많은데. 사람 놀래키면서 부르면 어떡헤? 아무리 눈치가 없고, 생각이 없더라도, 남자 일하는 걸 방해하면 안돼잖아!

난 애가 잘못됐는 줄 알고 사색이 돼서 왔는데 지금 저게 상처라고 날 부른거야? 당신이 지금 생각이 있는 여자야?”


평소 말도 없고, 차분한 형부라 이렇게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자 정말 무서웠다. 나는 쫄아서 눈치를 봤다. 온 가족이 깜짝 놀라 입을 다물고 형부만 쳐다봤다. 그런데 언니가 태연하게 말대꾸를 시작했다.


“애가 다치면 와야지. 죽을병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화상이예요. 흉지면 안돼잖아요. 저게 어떻게 작은 상처예요? 그리고 상처가 작으면 안 다쳤음에 안심하고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예요? 왜 화를 내요? 내가 언제 오랬어? 당신이 전화 받자마자 핑계삼아 일도 때려치고 온거면서. 지금 부모님 다 계신데 뭐가 문제라고 소리를 질러요?”


형부가 화가 나서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런 형부를 보고, 엄마 아빠가 정신을 차리고 둘을 뜯어 말리기 시작했다.


“김서방, 놀라서 그런거야. 좀 참아. 우리가 놀라서 경황이 없어서 그랬어. 미안해. 바쁜 사람 큰일 하는데 호들갑 떨면 안돼는 데. 할머니라고 내가 우리 예린이 크게 다친 것 같아서 주책을 부렸어. 미안해. 일단 앉고, 차 한잔 하면서 화 풀어.”


엄마의 말에 형부는 바로 정신을 차리고, 부모님께 사과했다. 그 와중에 예린이는 뛰어나와서 오줌마렵다고 소리쳤다. 엄마는 예린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갔고, 형부는 아빠와 서재에 갔고, 언니는 안방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거실에 혼자 남은 나는 한숨을 쉬었다. 집에 가기로 했다. 베란다에 널어둔 아직 덜 마른 빨래를 걷었다. 빨래는 집근처 세탁소에 다시 맡기면 된다. 예전에는 이 소란스러움 속에서 어떻게 같이 살았는지 기억도 안 났다.


나는 대강 인사하고, 예린이에게 용돈을 좀 주고 집을 나왔다.


내 집에 도착해서, 동네 세탁소에 빨랫감을 맡기고 집에 오는데 바람이 불었다. 나는 바람이 흐뜨려놓은 머리카락을 귀 뒤에 꽂고, 나 혼자 팔짱을 꼈다.


가을이 왔다. 생각해보니 벌써 9월 말이었다. 바람이 확실히 달랐다.


배가 고팠다. 집에 바로 가지 않고, 한 끼 가볍게 사먹고 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천천히 동네를 걸었다. 매일 차만 타고 오고가서 이렇게 걷고 산책하는 게 진짜 오랜만이었다. 약간 서늘했지만 상쾌했다.

엄마가 언급해서 그런지, 현욱 오빠가 생각났다.


현욱 오빠는 초가을인 9월이 생일이었다. 중간고사 기간이었지만 그래도 항상 시간을 내서 뭐라도 해줬었다. 현욱 오빠는 이렇게 생일을 챙겨준 것은 너 뿐이라며 항상 고마워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나는 것은 오빠가 군대에 있을 때였다. 케잌을 사들고, 버스타고 면회를 가는데 가는 길에 케익 상자를 떨어뜨려서 망가지고, 큰 맘 먹고 준비한, 아이팟 선물은 비에 젖어 고장 났었다. 준비한 이벤트가 망가져서 속상한 마음에 나는 엉엉 울었더랬다. 그런데 오빠는 PX에서 가져온 젓가락으로 케익이 진짜 맛있다면서, 앞으로는 일부러 비벼먹어야겠다고 이게 훨씬 더 맛있다고 능청을 부리며 날 꼭 안아주었었다. 그때 거친 군복의 느낌과 땀이 벤 겨드랑이 냄새가 지금도 기억난다.


이제는 그런 이벤트를 할 열정이 없다. 아마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 시절 사랑에만 충실했던 젊은 뜨거움은 다시는 내게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 감정을 다 알기에 호기심도, 설레임도 없으니까.


현욱 오빠는 이제 33살이 되겠지. 오빠도 내 기억속의 젊은 청년이 이젠 아니겠구나 싶어 기분이 이상했다.


이번 생일에 오빠는 누구랑 있을까. 설마 혼자는 아니겠지...... 만약 오빠가 혼자라면 지금 나랑 같이 밥 한 끼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이빨에 뭐가 끼는지, 밥풀을 묻이던지 신경쓰지 않고 편안하게 말이다.


사실 길을 걸으며 아무리 둘러봐도 혼자 느긋하게 밥을 먹을 식당이 없었다.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데 밥을 먹을 만한 식당은 온통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소란스러웠고, 이른 저녁 벌써 술판을 벌인 식당도 많았다.


굳이 들어가자면, 김밥천국밖에 없는 것 같았다.


바람이 한 번 더 불었다. 길가의 나무에서 단풍잎도 아닌 그냥 마른 나뭇잎 하나가 떨어졌다.


나는 식당에 들리려던 생각을 바꾸고 뒤돌아 집으로 왔다.

쓸쓸함에 가디건을 꺼내 입고, 햇반을 데웠다. 엄마가 싸준 반찬들을 꺼내 뚜껑만 열어 식탁에 올려놓았다. 햇반 용기 그대로 밥을 한 술 떴다. 웬만한 식당 밥보다 맛있다고 요리 평론가가 말했다지만, 그릇때문인지 플라스틱을 씹는 것 같았다.


나는 나무젓가락을 내려놓고 핸드폰을 들었다. 스팸 리스트를 뒤져 현욱 오빠의 연락처를 찻았다. 아직 그의 연락처가 있었다.


통화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민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전화번호를 아예 삭제했다. 그리고 유트브로 재미있는 동영상이나 검색하기 시작했다.


전화를 해서, 오빠가 받아서. 대화를 나누다가. 그러다가 혹시나 아름다웠던 추억이 추한 악몽으로 바뀔까 두려웠다. 아니면 혹시 또 의미 없는 세 번째 만남이 될까 두려웠다.


사실 사과를 하고 싶었다. 사랑과 우정을 나눈 사람으로서, 배신할 수 밖에 없었던 그렇게라도 헤어짐을 선택했던 내 마음을 말하고 싶었다. 사랑의 상처보다, 인간적인 배신감에 더 힘들었을 테니까. 나 역시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사과 따위 의미 없었다. 사과를 하고, 용서를 받아봤자. 다시 친구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연인은 더더욱 아니었다. 우리 인연은 그때가 정말 끝이었다.


난 지금 간단한 수다를 나눌 친구가 필요할 뿐이다. 그냥 지금 이 순간 심심하고, 조금 외로울 뿐이었다. 이 정도는 코미디 빅리그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핸드폰으로 코메디 프로그램 동영상을 찾아 재생시켰다.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핸드폰에서 웃음 소리가 나왔다. 잡생각을 지우고 밥을 먹다보니 엄마가 해준 오징어채볶음이 새삼 맛있었다.


밥을 다 먹고 커피를 한잔 타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인터넷으로 AICPA를 검색해봤다. 하나씩 정보를 알아갈수록 할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애 아빠들도 회사에 다니면서 시험에 합격했다는 후기를 보니 더욱 시험이 만만해 보였다. 결혼도 안하고, 애도 없는 나라면 회사다니면서 충분히 합격이 가능해보였다.


나는 달력에 시험 일정 등을 체크했다. 학원 상담 문의도 남기고, 몇군데 방문 상담할 곳도 연락처를 저장했다.


내가 결정할 수 없는 결혼이란 옵션 때문에 내 미래의 한계를 짓는 바보 같은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을 하게 되건, 애가 생기건, 그래서 중간에 그만두더라도 공부 자체는 분명 눈꼽만큼 이라도 내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니 정말 손해보는 도전이 아니었다.


어차피 난 취미도 없고, 딱히 흥미 있는 분야도 없다. 이제부터 시험 공부나 자격증 취득을 내 취미로 생각하면 되지 싶다.


가슴이 두근 거렸다. 마라톤 대회를 앞둔 마라토너처럼, 콘서트 일정이 잡힌 연주자처럼 기대되고 긴장됐다. 잘 하고 싶었다. 생각할수록 더 나은 삶, 돈 같은 것을 따진 도전이 아니라. 이 시험이 정말 진정한 도전으로 보람차고 재미있는 도전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나는 어쩌면 처음으로 나 스스로에게 즐거운 도전 과제를 준 것이리라.

그리고 나는 성공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V9W1dHMviy0

[Music Video] 이그나이트 - 사랑이 다 그렇지 뭐 (Vocal by 유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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