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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나이트 Sep 08. 2016

[소설] 57. 끝이 없는 이야기

Chapter 1. 내가 진짜 향하고 있는 곳은 (2)

버스가 정류장에 설 때마다 많은 할머니들이 보따리를 들고 내렸다. 그러고 보니 거리에 차들도 많이 오고가고, 사람들도 복작이기 시작했다. 이제야 주말 장터 냄새가 나면서 여행지에 온 기분에 새삼 설레였다.


편의점 직원이 알려준 버스가 왔다. 다들 하차하고, 승차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나는 한적한 버스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버스 안은 조용했고,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나는 살짝 선잠이 들었다.


잠시 뒤, 버스기사가 ‘무진강입니다. 내릴 사람있어요?’하고 소리쳤다. 나는 눈을 번쩍 뜨고 ‘네’ 대답하며 일어섰다.


내가 내리자 버스가 출발했다. 2차선 도로에는 아무것도 없이 버스정류소임을 알리는 막대기 하나만 꽂혀있을 뿐이었다.


블로그에는 숨은 경관이 아름다운, 조용한 강이라고 했는데, 결국 아무도 오지 않는 이름 없는 강에 불과했나 싶어 실망스러웠다.


나는 검정 비닐봉지를 꼭 잡고 강가로 갔다. 강에 다가갈수록 너무 눈부셔서 미간이 찌푸러졌다.


강은 생각보다 작았다. 강이라기보다 저수지에 가까웠다. 강가에 낚시 도구와 먹을 것을 파는 작은 구멍가게가 하나 덩그러니 있을 뿐 사방에는 낚시꾼하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겨우 아침 9시였다. 너무 이른 시간인 것이다.


나는 강가를 좀 걷다가 구석에 앉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뭔가 감흥이 있으면 좋은데, 햇살에 눈뜨기 힘들기만 할 뿐 딱히 멋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어떻든 강을 보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얼굴을 찌푸리며 강을 바라보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미어캣처럼 자꾸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강 기슭 흙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강아지풀이나 뜯고 있는 내 모습이 여행객이 아니라 백수 같았다. 여행객답게 모자나 가방이라도 들고 올 걸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뭔가 여행객 답게 노래래도 듣자는 생각으로 핸드폰을 꺼내 음악을 틀었다.


“you are so beauful"이었다. 이 노래는 민영이에게 반지를 줄 때 틀었던 노래였다. 몇 년동안 핸드폰의 음악을 듣지도 않고 새로 업데이트도 하지 않고 있던 것이다. '정말 내가 바삐 살았구나. 장하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갔던 죽도정도 이렇게 반짝였었다. 그녀는 반짝이는 바다보다 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녀의 하얀 손의 감촉이 느껴지고, 그녀의 입술과 사랑스럽게 날 보던 그 눈 빛이 떠올랐다.


그녀와 아니, 아니다 그냥 아무라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싶었다. 괜히 혼자여행을 와서 쓸데없이 첫 사랑이나 떠올리기나 하고 주책인 것 같았다.


나는 괜히 작은 돌을 하나 집어들어 강으로 던졌다.


검정 비닐봉지 속에서 오렌지 주스를 꺼내 마셨다. 순식간에 음료수를 다 마시고 병을 다시 비닐봉지에 넣고 일어섰다.


더 볼 것도, 할 것도 없었다. 예쁘지도 않은 곳에서 민영이와의 추억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구멍가게 앞 쓰레기통에 음료수병을 넣고, 빵은 잠바 주머니에 넣고 다시 버스 정류장에 갔다. 바스 정류장인 막대기 옆에 서서 핸드폰을 꺼내 웹툰을 보며 다음 목적지인 절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계곡이 흐르는 산에서 하이킹을 하고, 암자의 고즈넉함을 구경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버스는 20분 뒤에 왔다. 나는 기사님께 무진암자에 갈 수 있는 정류장에서 말 좀 해달라고 부탁하고 기사님 바로 뒤에 앉았다.


전원일기 드라마 속 배경같은 익숙한 시골 풍경이 움직이지도 않고 계속 복사해서 이어 붙인 듯 지루한 시골 풍경이 지나갔다.


잠시 뒤, 기사님이 내리라고 했다.  시골 동네였다. 물건도 없어보이는 구멍가게 옆에 작은 오솔길이 있고 ‘무진암자’ 화살표가 달린 막대기가 꽂혀있었다.


작은 오솔길은 무성한 나무들이 아치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흡사 작은 동굴 같았다. 저 오솔길을 따라가다가는 정글에 빠질 것 같았다.


나는 그다지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인생에 첫 여행인데, 오솔길 하나 무섭다고 돌아가는 건 멍청한 짓 같았다.


결국 나는 잠바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오솔길로 들어갔다. 시원하다 못해 서늘한 숲속 작은 길은 꼬불꼬불 계속 이어졌다. 멀리서 쫄쫄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보이지는 않았다. 무서웠다.


예쁜 계곡 옆을 상쾌하게 하이킹하는 것을 생각했는데, 혼자 스릴러를 찍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나는 일부러 무표정하게 안 무어운 척 나 자신을 속이며 길을 따라 걸어갔다.


어느 순간 길이 점차 커졌고, 환해졌다. 그제서야 나는 얼굴 근육을 풀고,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걸었다.


작은 절이 나타났다. 정문이 아니고, 담벼락에 붙은 쪽문이 있었다. 나는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도 놀라 소리를 같이 질렀다.


아주머니들과 스님들 여럿이 토끼눈을 뜨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누구세요? 왜 거기서 나와요?”


“네? 전 그냥 여행 왔는데요. 버스에서 내려서 팻말보고 왔는데요.”


“어머나... 그 슈퍼집 팻말을 없애든지 해야지 꼭 이렇게 뒷문으로 들어와서 놀래킨다니까”


스님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여자 스님이었다.


“죄송합니다.”


나는 괜히 미안했다.


“저쪽으로 나가면 대웅전 앞이예요. 둘러보실 수 있어요. 여긴 뒷채 부엌이예요. 여기는 관광객이 들어오는 데가 아니니까 저쪽으로 가셔서 구경하세요.

그래도 내일이 부처님 오신 날이라, 구경할 것도 많고 등불도 밝히고 좋은 날 오셨네요. 천천히 둘러봐요."


스님이 마당으로 안내해주었다.


“네, 고맙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알록 달록 등불이 쭉 늘어서 걸려있는 마당은 조그맣고 조용했다. 나는 절 한 쪽 구석 약수터에 가서 목을 축였다. 생각보다 오솔길이 꽤 길었던 것이다. 나는 주머니에서 빵을 꺼내 약수와 함께 마셨다.


나는 구석에 나무위자 위에 앉았다.


작은 건물 3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아늑하고 평화로워보였다. 등불들이 알록달록 걸려있지 않으면 더 보기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고요한 틈 사이로 아주머니들의 깔깔 거리는 웃음 소리가 울렸다.


생각해보면 크리스마스처럼 불교에서는 들뜬 축제니 웃음 소리가 들리는 것이 맞는데 절간에 웃음 소리가 나에게는 어색했다.


나는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듯 그냥 멍 하니 절을 바라봤다. 그러고보니 등불마다 뭐라고 적혀있었다. 가까이가서 보니 사람들 이름이었다.


“총각도 등불 하나 달아요. 만원이야. 온 가족 이름 다 적어도 돼."


할머니가 쟁반을 들고 마당을 지나가다 말을 걸었다. 나는 그냥 웃는 척을 했다.


그때 스님이 나왔다.


“총각, 여기 와서 밥 먹어요.”


“네? 아닙니다. 먹었어요. 괜찮습니다.”


“그러지말고 와요. 점심때 절 손님을 그냥 보내면 예의가 아니예요. 게다가 내일 부처님 오신 날이야. 이런 날 굶고 가면 나 부처님께 혼나."


“정말 괜찮습니다.”


나는 부끄럽고 어색해서 사양했지만. 할머니 한 분이 손목을 덥석 잡고 끌고 가셨다. 얼결에 나는 처음으로 절에서 밥을 먹게 되었다.


뒷편의 식당은 절이라기보다 6시 내고향의 마을회관 같은 분위기였다. 파마머리의 할머니인 듯, 아주머니 인듯한 분들과 스님들과 다 같이 동그란 밥상에 둘러 앉았다.


밥을 한 입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생각해보니 이런 집 밥을 먹은게 몇 년만인 것 같았다. 엄마를 만날 때도 그냥 외식을 해서, 집 밥을 먹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양했던 것이 무색하게 나는 열심히 밥을 먹었다.


“스님 이번엔 김치가 아주 잘 됐어요. 잔칫날에는 아주 맛나겠어요,”


“그쵸? 올해는 음식들이 아주 맛나게 잘 될 것 같네요. 내일 떡만 잘 나오면 되겠어."


“절밥이 심심해서 맛이 없을텐데 잘 먹네. 아이고 예뻐라.”


옆에 앉은 할머니가 등을 두드려주며 칭찬해 주었다. 나는 씩 웃으며 대답 대신 밥을 크게 또 한입 먹었다.


“근데 총각 맞아? 혹시 무슨 이 절에서 언약식이라도 하고 뭐 그런 추억있는 사람 아닌가?”


한 아줌마가 왠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봤다.


“아니요. 그냥 총각인데요. 그냥 심심해서 여행 온거예요.”


“아이고 보살님이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벼.”


깔깔깔 아줌마들이 웃었다.


“근데 회사는 다녀?”


“네, 그냥 작은 회사 다녀요.”


“몇 살이야?”


“서른 네살이요.”


“아따 우리 손녀 소개시켜주면 좋겠구만 인물도 훤하고.”


나는 밥을 먹고 싶은데 자꾸 말을 시키니 곤란했다.


“보살님, 총각 체하겠어요. 그만들 하세요. 밥 먹고 있는데 뭘 자꾸 물어요. 총각 신경쓰지 말고 천천히 먹어요.”


스님이 눈치 빠르게 할머니들의 질문을 막아주었다. 밥을 다 먹고, 스님이 주신 식혜까지 한 그릇 마시고 나니 이번 여행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거지를 도와드릴려고 했지만 신기하게도 식혜를 다 먹는 동안 이미 끝나있었다. 다들 손이 엄청 빠른 듯 했다.


“설거지도 못 도와드리고 죄송합니다. 이거 시주하고 싶은데요”


나는 지갑에서 현금을 꺼냈다.


“아이구, 고마워요. 하지만 이렇게 주지 말고. 다 같이 부처님께 절 할거거든요. 그러니 나가서 절 하고, 등불달고 직접 시주함에 넣으세요. 다 같이 절하러 갑시다.”


스님의 말에 아주머니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종교가 없는 나는 괜히 불편했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


스님은 절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시키는 데로 여기저기 사방에 절을 했다. 절을 다 하자 한 아주머니께서 시주함을 손짓으로 알려주셔서 시주함에 3만원을 넣었다. 아주머니께서 종이를 주더니 가족 이름을 적으면 연등에 적어 밝혀준다고 하셨다.


나는 종이에 [최현욱, 최현욱의 논술학원]을 적고 잠시 고민했다. 3만원인데 이렇게만 적으면 왠지 돈이 아까웠다. 주저하다가 나는 옆에 하나 더 적었다.


[주민영]


아주머니들이 보따리들을 싸고 내려갈 준비를 했다. 나는 멍청하게 마당에 그냥 서 있었다.


“총각 여기 짐 좀 들어줘요. 그리고  같이 타고 내려가요. 아까처럼 스님 전용 뒷길로 내려가지말고. 여기 가는 길이 은근 멀어 차 있을 때 타고 가는게 좋을 거야."


스님의 말에 아주머니들이 또 까르르 웃으며 한소리씩 했다. 시끄럽고 뭔말인지 몰랐지만 일단 무거워 보이는 것들을 봉고차에 실어드렸다.


“다들 5일장에 가시는 길이거든요. 총각은 어디가요?”


“아. 저도 거기로 갑니다. 장 좀 구경하고 서울 다시 갈려구요.”


“어머 잘 됐네. 어서 타.”


“네, 고맙습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봉고에 올라탔다.


나이가 꽤 드신 아주머니께서 운전대를 잡으셨다. 나는 얌전히 문 옆에 앉았다. 시내로 가는 한 시간 동안 아주머니들의 질문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손녀에게 소개시켜주라는 둥, 또 오라는 둥 어색한데 재밌는 상황이 계속 되었다. 쫌 웃겼다.


차가 서자 나는 냉큼 내려서 짐도 내려드리고, 할머니들 한분씩 내리는 것을 도와드렸다.


“고마워요, 다음에 또 봐요.”


마지막 허리 굽은 할머니가 골골대며 말씀하셨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꼬깃한 뭘 꺼내면서 내 손에 쥐어주셨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할머니들이 다 가실때까지 지켜보다가 뒤돌아 손바닥을 폈다. 손바닥에는 땅콩카라멜 2개가 있었다. 나는 땅콩 카라멜을 곱게 주머니에 넣었다. 여행오길 잘했다.


5일장은 정말 볼만한 게 없었다. 뭐라도 이 좋은 기분을 유지하고, 기념이 될 만한 것을 사고 싶었지만 다들 금방 부서질 것만 같은 싸구려 고만고만한 중국산들뿐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돈이 아까운 것들 뿐이었다. 나는 작은 장터를 두어바퀴 둘러보다 편의점에 들러서 콜라나 하나 사들고 버스 터미널에 들어갔다.


이제 겨우 5시였다. 처음 여행을 떠날때는 심지어 월요일 아침에 올라와도 좋다고 기대 만땅이었지만 그때까지 할 게 없어 24시간도 못 채우고 돌아가게 생겼다.


좀 허탈했다. 민영이랑 여행갔을 때는 정말 꽉꽉 채워 여행 하고도 시간이 부족했는데, 역시 여행은 혼자 하는게 아닌갑다 싶었다.


나는 매표소로 갔다. 고개를 들어 버스 시간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버스도 몇 개 없었다.


“어디 가세요?”


매표소 여직원이 물었다.


순간 또 한 번 모험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영화 속 히치하이커 같은 인생이 이렇게 시작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디가세요?”


하지만 나에게는 이제 시작되는 또 다른 멋진 길이 있었다. 그건 영화가 아닌 진짜 삶이었다.


“서울이요.”


“20분뒤에 출발입니다.”


나는 버스표를 들고, 괜히 껌과 사탕을 사고, 주간 신문도 사고, 화장실에 들렸다 버스를 탔다.


그리고 서울로, 내  연립주택 1층의 단칸방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나는 실컷 잠을 잤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벌써 일요일 오후였다.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나 대충 먹고, 씻고 앉았다.


갑자기 방의 고요함이 귀를 간지럽혔다.


혼자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혼자 산지10년이 넘었는데, 왜 갑자기 혼자인 것이 신경쓰이고 이 집이 어색하게 느껴질까.


어제 여행을 다녀와서 그랬나 싶다. 생전 안하던 여행을 괜히 해서, 평화롭고 규칙적이던 일상이 무료하고 외롭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돈 쓰고 소중한 일상을 뺏긴 기분이라 나한테 삐지게 생겼다.


그래도 여행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좋긴 좋았다. 이유는 모르지만 또 가고 싶었다.


창가에 컵 안에 넣어 두었던 벚꽃 이파리가 눈에들어왔다. 이파리에게도 나에게도 바람이 필요할 것 같아서 창문을 열었다.


봄이 방에 들어왔다.


이 순간, 나는 수다가 떨고 싶어졌다.


봄이 왔다고.


그리고 나 꽤 잘 살고 있다고, 너는 어찌 지내냐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아직도 기억하는 그 번호 8자리를 하나씩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가고,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담담했다. 이렇게 통화를 해준 민영이가 고마웠다.


유리병 속의 벚꽃 이파리를 흔들었다. 이파리가 춤을 췄다.


민영이에게 꽃을 보내면, 웃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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