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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나이트 Nov 03. 2016

[소설] 64. 끝이 없는 이야기

Chapter 5. 끝이 없는 이야기 – 현욱 (1)

“예쁜아! 전화받을 꺼지?”


“...... 흠...... 알았어. 받을 께. 얼른 자.”


“알았어. 잘 자. 전화할게.”


“허허. 잘 자. 끊는다.”


“안녕.”


민영이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위를 쳐다봤다. 규칙적으로 줄 서있는 창문 중에 어느 창문이 민영이의 집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불 켜진 집 중 하나가 민영이의 집이겠거니 생각했다.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다시 만나자고 하지 말고, 그냥 결혼하자고 할 걸 그랬나 싶었다. 물론 민영이는 지금처럼, 됐다고 그만하라고

했겠지만. 그래도 결혼이란 단어로 내 마음을 더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무튼 우리는 또 전화 통화를 할 것이고, 주말이면 만나서 밥을 먹고, 맥주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또 산책을 하고, 웃을 것이다. 나는 이번에는 정말 자신이 있었다.






월요일 아침 10시, 핸드폰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핸드폰 화면에 [학원 오픈 날]이라는 글씨가 반짝거렸다.


나는 벌떡 일어나 깨끗하게 씻고, 며칠 전에 다려둔 옷을 입고 학원으로 갔다.


버스 좌석에 앉았다. 창문은 닫혀있었고, 에어컨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민영이에게 지금 전화를 하면 좋을 것 같았다. 일단 학원에 가면 전

화하는 것이 힘들지도 몰랐다. 하지만 버스에서 다른 사람이 통화내용을 듣는 것이 싫었다. 버스 소음에 방해받는 것도 싫었다. 아니, 버스 타고 다니는 걸 보이는 게 창피하기도 했다. 만났을 때 차가 없는 것을 말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되었다. 말해도 괜찮은 여자인 걸 알면서, 민영이는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여자인 것 알지만, 그래도 나는 그게 아니니까.


결국 나는 핸드폰을 가방에 다시 집어넣었다.


학원에 도착했다. 나는 비밀번호를 눌러, 학원 문을 열고, 책상에 가방을 올려놓고, 빗자루를 꺼냈다. 지난 금요일에 청소를 했지만, 다시 한번 먼지를 닦고 싶었다. 마지막 강의실을 청소하기 시작하는데 학원 전화가 울렸다.


“네, 논술 학원입니다.”


“꽃집인데요. 주소 확인하려고요.”


주소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화분이 하나도 오지 않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던 차에, 꽃집에서 전화가 오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누가 보내는 것일까? 학부모 설명회 전에 도착한다면, 개원 분위기도 살고 좋을 텐데 싶어 설레었다.


걸레질을 하는데 박 선생이 왔다.


“최샘, 아니 원장님, 안녕하세요. 호호.”


“원장님? 하하하. 박샘이 그렇게 말하니까 어색한데. 그냥 최샘이라고 불러요.”


“이젠 진짜 원장님 소리에 익숙해져야지요. 이제는 어쩔 수 없어요.”


“그건 그런데, 몇 번을 들어도 원장이란 말은 어색해서요. 지난 학원에서도 불편했어요. 아 참, 근데, 박샘도 원장님이라고 해야 하는 게 맞지 않아요? 보증금도 도와줬고, 학생도 데려왔고요. 동업이잖아요. 나 혼자 원장이라고 하는 게 그게 계속 걸려요. 미안하고.”


“나도 원장님은 부담스러워요. 그리고 이렇게 작은 학원에 원장이 둘이나 있는 것도 좀 별로지만, 나랑 최샘이랑 공동 원장이면, 다들 연인으로 보지 않겠어요? 그렇게 보는 거 괜찮아요?”


“아...... 그건 생각 못했어요...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 건 좀 불편하긴 하지요.”


나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좀 당황했다. 확실히 여자는 그런 점에서 불편하고, 생각이 많구나 싶었다.


“근데, 선생님, 아니 원장님 정말 말 안 놓을 거예요? 우리 동갑에 알고 지낸 지가 몇 년인데, 이젠 동업까지 하는 사이잖아요. 말 편하게 놓고 친구 하면 안 돼?”


“그건...... 쫌......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말 놓아야 친구인가요. 이렇게 말 높여도 편하게 할 말 다 하니까 친구 맞잖아요. 새삼스럽게 왜 그래요? 이정재, 정우성도 십 년 넘는 친구인데 서로 말 높인데요. 우리도 이정재, 정우성이라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하하하. 뭐야. 최샘 정말 날 남자로 보는 거 맞나 봐요. 이정재, 정우성이 뭐야. 그럼 내가 이정 재고, 원장님이 정우성이에요? 후후. 하기는, 최쌤이 이런 사람이니까 내 남자 친구도 안심하고 믿고 이 학원 시작한 거 동의하긴 했지만요. 그래도 좀 섭섭해. 이정재, 정우성이 뭐야. 정유미, 유아인도 아니고.”


“유아인? 정유미? 그 사람들이 누군데요?”


“아이고... 선생님 요즘 애들이랑 놀려면, 연예가 중계라도 보세요. 배우들인데, 남녀 사이지만, 엄청 친하데요. 스캔들도 신경 안 쓰고, 둘이 친구라고 공개적으로 응원하고요.”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이정재, 정우성 싫으면, 정유미, 유아인 해요. 하하하 그럼 내가 유아인? 유아인이 남자 맞지요?”


“네, 하하하. 그럼 난 앞으로 정유미 예요. 하하하.”


박샘이 화통하게 웃었다. 박샘 기분이 좋아 보여서 안심이 되었다. 학원 개업할 때, 고민스러웠던 보증금 일부도 해결해주고, 무엇보다 수업이랑 상담 모두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끝까지 함께 잘 가고 싶었다.


청소 마무리를 하고, 자리에 앉자. 이선생이 출근했다. 모두 자기 자리에 앉아 어색하게 인터넷을 켠 시간은 이제 겨우 1시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할 말을 정리한 후, 이선생에게 학부모 설명회 준비가 다 되었는지 확인했다.


“학부모들에게 문자 다 넣었나요?”


“네. 예약 문자가 아침에 다 도착했을 거예요. 확실히 오신다는 분은 10명이고, 3명은 올지 안 올지 모르겠어요.”


“그중에, 등록 안 한 분이 몇 명이지요?”


“4명이요.”


“4명에게는 전화를 한 번 다시 넣으세요. 그리고 기존 학부모들에게도 오픈 기념 이벤트 문자 다시 한번 알리고요. 음료수랑 나눠줄 자료들은 다 정리 해 놨지요?”


“네, 다 정리 해 놨어요. ppt 세팅만 맞추면 돼요. 그런데요. 학원비 기념 이벤트요. 6개월 치를 한 번에 결제하면, 7개월 수강하는 것 맞아요? 중간에 특강은 제외하고요.”


“네, 시험 때도 휴강 없이 수업하는 것 강조하고요. 중 고등부도 내신 시험 기간 동안 휴강 없는 것 꼭 말해야 합니다. 대신 국어 교과 지문으로 수업한다고 강조하시고요. 앞으로도 우리는 6개월 결제, 12개월 결제 식으로 한 번에 결제하는 시스템으로 갈 거니까. 미리미리 상담 때 이야기해주세요. 다음 주에, 기존 학부형들에게도 전화로 시스템 안내 하구요. 물론 기존 학부형들은 원래대로 매달 결제해도 상관없지만, 일 년치 결제하면 할인이 있다는 것을 강조해주세요.”


“네, 알았습니다.”


“그럼, 준비 다 되었으니까. 우리 밥 먹고 옵시다.”


“좋아요. 밥 먹어요.”


우리는 학원 아래층에 있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박샘과 이샘은 며칠 전에 회식을 해서 그런지, 제법 수다를 떨면서 친해진 듯 보였다.


밥 먹고, 올라오니 커다란 화분이 학원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최현욱 논술학원 개원을 축하합니다’라는 글귀와 함께 창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화분 하나로 학원 입구가 꽉 차면서, 뭔가 분위기가 사는 것 같았다. 부모님들도 안 챙겨주는데, 신경 써준 친구가 고마워서, 울컥 뭔가 감동이 올라왔다. 창수 학원에서 나오고 나서 거의 연락도 안 했고, 오늘 개업인 것도 지나가면서 말했는데 날짜도 잊지 않고 맞춰서 보내주다니 정말 고마웠다.


나는 창수에게 전화했다.


“창수야. 뭘 또 이런 걸 보냈어. 고마워.”


“어? 화분? 지은이가 챙긴 거지. 사실 난 봉투를 좀 하려고 했는데, 지은이가 봉투는 봉투대로 하고, 화분을 꼭 보내라고 하더라고, 마음에 들어?”


“응, 안 그래도 썰렁했는데. 덕분에 인테리어가 확 살았어. 고마워.”


“하하하. 다행이다. 시작은 어때? 좋아?”


“지금은 공부방 학생들 몇 명으로 시작하는 거라 미미하지. 이따가 학부모 설명회 하는데, 떨린다.”


“에이, 한 두 번이냐. 떨게.”


“그게, 아무리 해 봤었어도. 내가 단독으로 하니까 엄청 떨려.”


“새꺄 사내가 졸지 말고. 깡다구로 잘 해. 너야 실력 있고, 잘 생겨서 엄마들이 들러붙을 테니까 걱정 말고.”


“하하하. 너는 어때? 학원이랑 커피숍이랑 다 잘 돼?”


“나야 뭐, 다 오토로 돌리는 거라 힘들 거 없지. 너 나가고 학원이 조금 휘청했지만, 지금은 다 복구했어. 상담 실장이 귀신같이 몰고 오는데. 다행이지. 일단 터가 좋으니까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


“다행이야. 그리고 미안하다. 내 욕심 채우려고 나와서.”


“미안하기는, 너도 남잔데 언제까지 남 밑에 있을 수는 없잖아. 신경 쓰지 마. 대신 니 학원 망하면 다시 여기로 기어들어와. 엄한 데 가거나 하지 말고, 난 언제든 널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알았지? 참. 언제 한 번 아버지가 보자고 하시더라. 다음 주에 시간 어때?”


“나? 수요일은 8시에 강의 끝나.”


“그래? 그럼 수요일에 아빠 시간 되나 물어볼게. 오늘 개원 잘 해.”


“응, 고마워.”


잘 나가다가, 학원 망하면 기어 들어오니 어쩌니 하는 말에 기분이 잡쳤지만. 창수가 어디 달리 창수인가 싶어 다시 고마운 마음을 상기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끙끙대며, 커다란 화분을 적당한 자리로 옮겼다. 화분에 물을 흠뻑 주고, 이샘에게 이파리들 먼지 좀 닦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는 자리로 돌아와서 학부모 설명회를 준비했다. 그 사이, 수리 논술의 신 선생도 도착하고, 뭔가 잔치 분위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오후 4시 학부모들이 하나씩 오더니, 4시 30분이 되자 6명이 모였다. 15명까지 기대했는데, 너무 적은 수가 모여서 김이 빠지기는 했지만, 6명 중 수강하지 않은 학부모가 4명이나 돼서 의욕이 솟아났다. 4명이 다 등록하면 천만 원이 넘는다. 최선을 다 할 이유가 있었다.


이샘이 학부모들을 정렬시키고, 내가 앞으로 나갔다. 나는 선생님 한 분, 한 분을 인사시키고, 자기소개를 한 후, 학원의 목표, 교육의 방향성에 대해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 초등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 찾기 즉 독해입니다. 다양한 상황, 다양한 형태의 텍스트를 잘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만,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독해 능력, 텍스트를 이해 못하는 훈련은 의외로 많은 중고생 학생들에게도 필요하지요. 한국어를 읽는 것과 텍스트를 분석하는 것은 다른데, 의외로 많은 중고등부 학생들도 훈련이 안 되어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작문 훈련 중에 또 하나 강조할 부분은 문장 작문 시 주어와 동사의 호응이지요.

...... 이렇듯 우리 최현욱 논술 학원은 기초와 기본에 중심을 두고 즐겁게 수업을 해 나갈 것입니다. 즐겁게 수업한다. 이 말은 놀이를 접목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배움의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알아가게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소수 정예 수업에서만 가능한 즐거움이겠지요......”


장황하지 않게 설명하고 싶었지만, 초, 중, 고에 맞춘 시스템을 쭉 설명하고, 질문을 받고 나니 1시간이 훅 지나갔다. 의외로 열정적이고 수준 높은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질문에 흥이 난 나는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6시에 수업이 있기 때문에, 박샘에게 마이크를 넘기고 아쉽게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물 한잔 마시고, 화장실 한 번 가고, 강의실에 들어갔다. 중 2 학생 3명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올~~ 선생님 오늘 멋지세요.”


“그래도 개원이니까 좀 차려입었지. 어때 보기 좋냐?”


“사실 그동안 왠지 좀 후줄근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카라부터 옷에 힘이 빡 들었는데요. 키가 크니까 정장이 잘 어울리시네요.”


“맞아 맞아. 샘 그냥 매일 정장 입으세요.”


애들이 내 옷을 가지고 시간을 때우려는 작전을 편 모양이었다. 옷 기지가 어떠니, 색이 어떠니, 매일 정장을 입으면 세탁은 어쩌니 하나씩 미끼를 던지는 속내가 보여서 귀여웠다.


“이 놈들, 잡담 그만하고. 자 숙제는 다 해왔어? 오늘 책 읽어 오기로 한 것은 읽었냐?”


“에효... 그런 건 잊어버리지도 않아. 아 몰라요.”


“너 안 읽었냐? 난 읽었지.”


“저는요. 반 밖에 못 읽었어요. 아잉~~~”


“웩! 꼴에 여자라고 애교냐? 더러워, 우웩!”


숙제 검사 하나에 열 마디씩 하는 애들이었다.


“다들 그만해, 밖에 학부모님들도 계시는데 우리 점잖게 하자. 자. 읽어온 녀석 요약해봐. 그거 듣고 시작하자.”


숙제 해온 녀석이 어물거리며 말을 시작했다.


웃고 떠들며, 3시간의 강의가 끝나고 학생들을 돌려보냈다. 학부모님들도 이미 돌아간 뒤였다.


이샘은 흥분해서 웃으며 ‘원장님 3명이 1년 치 결제하고 갔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중등 1년이면 420만 원이었다. 3명이면 1260만 원이다. 일 년치 월세는 이미 뽑은 것이다.


“초등부예요. 월 20짜리.”


박샘의 말에, 순간 풍선이 폭 하고 꺼진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생각해보니 720만 원이었다.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나는 다시 방긋 웃었다.


“그게 어디예요. 당장 당분간 월세가 해결된 건데. 잘 됐어요. 잘 했어요.”


“그래요. 내일 저녁에는 중고등부 학부모 중심으로 모일 거니까. 내일이 대박일 거예요. 최쌤. 아니 원장님, 저는 집에서 과외 수업이 있어서 가 볼게요. 내일 오겠습니다.”


박샘이 먼저 가고, 나는 다음 수업을 준비했다. 9시 30분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에 나는 이샘에게 10시 퇴근 시간 되면 알아서 정리하고 가라고 말하고 수업에 들어갔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나니 11시였다. 학생이 돌아가고, 학원을 둘러보았다. 간단하게 바닥을 쓸고, 책상을 정리하고, 학원 문을 닫았다.


배도 고프고, 겨드랑이는 끈끈했으며, 졸렸다. 택시 안에서 나는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하기로 생각했다.


현관문을 열었다. 집은 껌껌했다. 나는 눈이 아파서 부엌 불 하나만 켜고 거실에 앉았다.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학부모에게서 카카오톡이 와 있었다. 오늘 상담하고 간 사람인데, 진도와 수업 내용에 대한 추가 질문이었다.


큰애가 중3, 둘째가 초6이라고 했다. 형제가 동시에 등록하면, 천만 원이 넘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면서 답문을 길게 작성했다.


몇 번이고 오타를 확인하고 문자를 보내고, 나는 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술을 마신 것처럼 머리가 핑 돌았다.


민영이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다.


“예쁜아, 예쁜이는 오늘 하루 어땠어? 별일 없었어?”


“응. 오빠는? 오늘 학원 오픈 잘 했어?”


“잘 했어. 사실 한 달 전부터 수업도 하고 있었고, 개원이라고 해봤자. 선생들 월급 주는 거 시작하는 거고, 설명회 하는 것뿐인데. 그게 뭐라고 개원이라고 이름 붙이니까 엄청 긴장되더라.”


“그럼, 이름 붙이는 게 그게 얼마나 중요한데. 이제 오늘 날짜 달력에 동그라미 쳐놓고, 내년부터 1주년 기념 파티할 건데, 긴장되고 그랬겠지. 그래도 별일 없이 잘 했을 거 아냐.”


“그렇지, 설명회도 잘 했어. 오늘 700만 원 넘게 매출 올렸고, 수업도 잘 했고. 미리 기존 학부모들 설명 듣고 온 것이겠지만, 그래도 와서 몇백만 원씩 결제하고 가니까 엄청 기분 좋아. 세상 부자들 정말 많더라.”


“오빠 말도 잘 하고, 인상도 좋고, 경력도 좋으니까. 결제를 안 할 이유가 없겠지. 앞으로도 잘 될 거야. 그런데 소개해준 분들 뭐 선물 챙겨줄 거야?”


“선물? 그런 건 정말 생각 못했는데.”


“뭐라도 줘야 또 소개해주지, 사실 학부모들 소개 잘 안 해주는 데, 해준 거니까.”


“그렇지, 역시 민영이, 예쁜이야. 이렇게 좋은 생각도 알려주고, 고마워.”


“호호 홍, 내가 그러고 보면 좀 사업가 기질이 있는 것 같아. 그나저나 많이 피곤했지?”


“응, 정말 엄청 피곤해. 막 술 먹은 것처럼 피곤하고, 머리도 멍하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어, 오늘 수업 두 개 했는데. 잘 했는지도 모르겠고. 참, 오늘 학생 하나가 엄마가 전해주라고 하면서 축하 선물로 와인 줬어. 그거 박샘이 가져가려고 하는 거 안 뺏기고 들고 왔어. 우리 같이 마시자.”


“호호, 그래 일단 자. 피곤할 거야. 푹 잘 자.”


“고마워, 너도 잘 자.”


민영이의 ‘잘 자’ 소리에 나는 바로 잠들려고 했다. 그런데 눈이 부셨다.


나는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렸다. 아침 햇살이 거실 안으로 들어와 나를 깨운 것이었다.


나는 전화기를 열었다. 민영이와 통화한 기록이 없었다.


민영이와 전화하는 꿈을 꾼 것이었다. 피곤해서 전화를 하려다가 잠이 들어 버려서, 꿈속에서 민영이와 통화를 한 것이었다.


나는 허허 웃었다. 참 내. 사춘기 몽정도 아니고, 여자 친구 꿈을 꾸다니, 다시 만난 민영이에게 정말 내가 마음을 다 주었구나 싶었다. 하긴, 한 번도 민영이에게 마음을 안 준 적은 없었다.


그리고 다시 핸드폰으로 시간을 보니, 12시였다. 1시에 회의가 있단 생각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 서둘러 씻고, 옷을 입고 택시를 잡았다.


택시 안에서 나는 핸드폰을 꺼내 민영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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