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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나이트 Feb 23. 2016

가수를 찾습니다

작곡가 데뷔 이후, 수많은 보컬을 만나 곡 작업을 했다. 아이돌, 그룹, 솔로, 댄스 가수, 발라드 가수, 래퍼, 심지어 트랜스젠더 가수도 있었다. 모두 각자의 매력이 있었기에 항상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고, 모두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작곡가로서 곡을 의뢰받아 작업하던 것이 아닌, 이그나이트의 음악을 표현해 줄 보컬을 찾는 것은 많이 달랐다. 보컬이 바로 이그나이트의 얼굴이기에 보컬리스트를 선정하는 나만의 엄격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좋은 음색, 그리고 발성 등 보컬리스트로서의 자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음악적 취향이 이그나이트와 맞아야 하고, 무엇보다 성실해야 한다. 여기서 ‘성실’이란 점이 참 어렵고 유별난 부분이다.


일반적인 음반 제작의 수순을 보자면, 작곡가가 곡을 만들고 가이드 녹음이란 것을 한다. 가이드 전문 보컬리스트나 작곡가 본인이 컨셉에 맞게 노래를 녹음하는 것이다. 초안, 시안, 초벌 번역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녹음한 가이드 버전을 가수에게 이메일로 보내면, 가수가 듣고, 연습한다. 그리고 녹음실에서 만나 녹음하면 보컬 부분은 끝이다. 작곡가, 프로듀서 그리고 엔지니어가 감당해야 하는 엄청난 후반 작업이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보컬이 할 일은 여기서 끝인 것이다. 이런 일반적인 제작 방식에 따른다면 작곡가와 가수는 많아야 두세 번, 심지어 녹음 당일 녹음실에서 한 번만 만나도 아무 문제가 없다. 참 심플하다.


하지만, 이그나이트 앨범은 이런 방식으로 녹음하지 않는다. 인터뷰를 통해 보컬리스트를 정하면, 최소 주 1회 이상, 몇 달 동안 꾸준히 만나서 같이 연습하고 녹음을 해보고,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다.


보컬의 실력이 부족해서 연습을 시키는 것이 아니다. 연극배우가 실력이 부족해서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극의 전체를 함께 호흡하고, 본인이 맡은 캐릭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표현하여, 최고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 연습하는 것처럼. 이그나이트의 보컬이라면 곡을 보컬리스트 본인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곡의 화자가 되어서 표현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가사를 다 외우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것이고. (의외로 가사를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녹음을 해서 음반을 내는 가수들을 많이 봐왔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사를 완벽하게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녹음을 하는 것은 곡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음표 사이의 쉼표 하나라도 다 익혀서, 곡 전체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전주를 듣는 순간, 생각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몸이 반응하고 자연스럽게 곡에 몰입되어 막힘없이 한 곡을  마무리할 수 있는 순간이 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짧게는 2~3달, 길게는 1년여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시간과 정성을 들여 그 곡이 완전히 보컬리스트의 것이 되었다는 확신이 생기고 난 후, 나는 진짜 녹음에 들어간다.


사실 이그나이트 앨범의 곡들은 따로 행사 등의 활동을 약속할 수 없기에 본 녹음을 끝내고 나면, 두 번 다시 그 곡을 부르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보컬리스트 입장에서는 이런 연습이 매우 지루하고 답답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보컬들에게 계속  주지 시킨다. ‘바로 그 한 번의 녹음은 평생, 아니 너희가 죽고 난 후에도 남을 것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그 한 번의 기회를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 녹음이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바꿀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나의 이런 방식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 포기한 보컬들도 몇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나와 나의 음악을 믿고 함께 해주어서 지금까지 음악을 발표할 수 있었다.


제작 방식이 심플해지는 요즘, 굳이 혼자서 이렇게 많은 품을 들이고, 정을 붙여서 녹음을 해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다. 보컬과 오랜 시간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도 서로 쉬운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만의 정성을 쏟는 것을 포기해버리면, 그 순간 이그나이트라는 오리지널리티가 사라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이그나이트의 정수라고나 할까.


오늘 보컬들과의 약속을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잦은 만남에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쓴다. 함께 하고 있는 이그나이트의 보컬들이여. 우리들은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고, 훗날의 웃음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자구.




글, 작성 : 이그나이트, 성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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