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6. 그만하자

Chapter 3. 손을 놓은 것은 누구일까

by 이그나이트

“내일 아침에 볼 건데 이제 전화 끊자.”


“시져 시져. 목소리라도 더 듣고 싶오. 내일까지 못 기다려요.”


“우리 애기. 그렇게 오빠가 쪼아?”


“웅.”


“우리 애기 쪽쪽쪽쪽.”


창수가 전화기에 대고 쪽쪽 소리를 냈다. 지나가던 현욱이가 뒤통수를 확 때렸다.


“아.. 씨발, 지은아 이제 진짜 끊어야겠다. 내일이면 제대니까 내가 하루 종일 안아줄게. 하하. 이제 코~잘 자. 우리 애기 잘 자. 빠빠이.”


창수가 뒤통수를 만지며 전화를 끊고, 내무반에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나온, 현욱이는 젖은 머리 상태로 베개를 베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야, 씨발 이제 진짜 제대다.”


창수가 현욱이 옆에 앉으면서 말했다.


내일은 창수와 현욱이가 제대하는 날이다. 사회에서는 1년 9개월 따위, 눈 깜빡하면 지나간다지만 군대에 갇혀 있는 두 사람에게는 인생에서 제일 긴 시간이었다.


“야, 내일 넌 민영이한테 갈 거냐?”


“그럼 보러 가야지. 일단 민영이부터 만나고, 그 담에 서산으로 엄마한테 가야지. 복학 전까지는 서산에 있어야 할 것 같아. 천천히 방도 구하고 해야지.”


“... 아버지는? 너 제대하는 건 아시냐?”


“...... 알게 뭐야.”


“.......”


“됐어 새꺄. 쫄긴. 나 방 구하기 전에 하루 이틀만 신세 좀 지자.”


“개새끼. 새삼스럽게 그런 말은 왜 하냐? 아무 때나 와서 알아서 자고 가. 난 사회 나가면 집에 안 들어가고 지은이랑 모텔에서 안 나올 거니까 키키키.”


“이 새끼 봐라. 아주 발정이 났구만. 야. 그냥 살림을 차려라. 모텔비가 더 나오겠다.”


현욱이 베개를 던지면서 말했다. 창수는 그 베개를 끌어안고 뽀뽀하는 척하며 낄낄낄 웃었다.


내부만 문이 열리고 담당자가 인터넷 편지를 나눠주었다. 창수는 편지를 받고, 또 좋아서 헤벌쭉 웃었다. 그리고 오늘도 현욱이의 편지는 없었다.


민영이는 제대 전날 전화도 안 받고, 인터넷 편지조차 보내지 않았다. 제대 전 마지막 일주일 휴가 때는 고작 하루만 만날 수 있었다. 시험이 코앞이라 바쁜 것은 알았지만 서운 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서운하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약간의 서운함이라도 비치게 되면 민영이는 둘의 미래를 위해 시험에 꼭 붙어야 한다. 그것도 이해 못해주냐면서 울면서 화를 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둘의 미래를 위해 시험을 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현욱은 더욱 기분이 씁쓸했다.


현욱이의 가진 것 없음을 강조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대 전날 취침에 들었다. 현욱은 뒤척이며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다. 이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어쩔 땐 군대가 좋았다. 때마다 밥 주고 따뜻한 이불을 덮고 내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있었으니까. 시키는 대로만 하면, 내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돼서 스트레스도 별로 없었다.


사실 졸업장이 필요할 것 같아서 삼수 끝에 장학생으로 학교에 갔고, 과외로 생활비를 해결하긴 했지만 좁은 반지하에서 생활비를 벌면서 공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이젠 예비역이다. 전에는 정말 돈이 급하면, 그래도 엄마에게 말이라도 했었는데, 왠지 더 이상은 돈 달라고는 말은 절대로 입밖에 내면 안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이제 복학하면 3학년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과외를 최대한 많이 해면서 학교를 다녀야 할지, 과외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취업을 준비해야 할지. 또 취업은 어디로 해야 할지. 내가 어떤 직업을 얻고 싶은지, 아님 사업을 해야 할지. 내가 원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당장 방 구하는 게 어렵다고들 하는데, 보증금 등은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렇게 밤을 꼴딱 새우고, 드디어 제대 날이 되었다.


군대 정문에는 제대하는 군인들을 맞이하러 가족들이 나와 있었다. 창수도 창수 부모님과 누나, 지은이까지 나와서 창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수는 함박웃음을 띄며 부대 정문을 나왔다. 창수 어머님이 눈물을 흘리면서 아들을 안고 울었다. 창수 아버님과 누나는 창수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을 했다. 지은이는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가족들 뒤에서 뻘쭘하게 얼쩡거렸다.


현욱은 그 옆에서 어정쩡하게 서서 창수네 가족의 상봉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가족들과 지은이의 상봉까지 끝난 후에야 현욱은 창수네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이거 민영이가 전해 달래요.”


지은이가 쇼핑백을 줬다. 쇼핑 백안에 현욱의 핸드폰과 통장과 카드가 있었다. 현욱은 신이 나서 핸드폰의 전원을 켰다. 그리고 얼른 1번을 꾹 눌렀다. 화면에 [예쁜이]가 떴다. 뚜르르 신호가 한번 울리더니 ‘전원이 꺼져있어......’라는 성우 목소리가 나왔다.


현욱은 전화를 끊었다. 고개를 들자, 지은이와 창수, 그리고 가족들이 왠지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현욱을 보고 있었다. 현욱은 괜히 멋쩍어하며 말했다.


“오늘 모의고사 보는 날이라고 했었어요. 전화기 꺼둔다고 했던 것을 깜빡했네요.”


현욱이가 괜히 변명스럽게 말했다. 모두들 헛기침을 하며 다시 창수의 어깨를 두드리고 사진을 찍었다.


현욱은 같이 차를 타고 가자는 창수의 권유를 굳이 뿌리치고 버스 터미널로 갔다. 어차피 민영의 수업이 끝나는 저녁까지 할 일도 없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현욱은 근처 은행에 가서 통장의 잔액을 확인하기로 했다. 그동안 민영이가 관리해온 데이트 비용을 모은 통장이었다. 현욱이는 군대 가기 전에 그 통장에 목돈을 넣어두었었다. 그동안 휴가나 면회 때마다 틈틈이 썼기 때문에 잔액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ATM기에 카드를 넣고 잔액을 조회했다. 그런데 잔액이 2년 전과 똑같았다. 그대로였다. 현욱은 몇 번이나 확인했다. 역시나 그대로였다. 민영이가 돈을 하나도 쓰지 않은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현욱이가 돈을 쓸 때마다 채워 넣었다.


그동안 데이트할 때마다 모든 비용을 민영이가 냈다는 뜻이다. 현욱은 멍하니 잔액을 확인하다. 부르르 몸을 떨었다.


깜깜한 저녁이 되었다. 민영의 학원 건물에서 학생들이 우르르 나왔다. 민영이는 맨 뒤에 천천히 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현욱은 멀리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청바지에 잠바를 입고 머리는 아무렇게나 질끈 하나로 묶고, 안경을 쓴 민영은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손목시계를 봤다. 양 겨드랑이에 두 팔을 끼워 넣고, 추운지 발을 동동 구르며 민영이는 계속 건물 입구에 서 있었다. 잠시 후, 민영이는 손목시계를 한 번 더 보고는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현욱이가 민영이를 불렀다.


“민영아.”


“오빠?”


창백한 얼굴의 민영이가 웃는 건지 찡그리는 건지 모르겠는 표정을 지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연락도 없고.”


“너야말로 고작 몇 분 기다리고 바로 가려고 하는 거야? 전화기도 하루 종일 꺼놓고는.”


“춥잖아. 그리고 문자 남기면 되잖아. 수업 다 끝나면 한 번씩 확인한다니까.”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은 전원을 켜놨어야지.”


“그런 식으로 하루 빠지면 며칠을 버리게 돼서 안돼.”


현욱은 받아쳐서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한 마디 더 했다간 살이 쪽 빠져 얼굴이 반쪽이 된 민영이가 날카롭게 자기를 깨물 것만 같았다.


“됐다.”


현욱의 말에 민영이도 입을 다물었다. 현욱은 민영이의 가방을 뺏어 들고 민영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뭐 먹으러 갈까?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시험이 이제 두 달도 안 남아서, 페이스 유지하려고, 먹는 것도 조절하고 있어서. 커피숍 가서 간단히 커피 마시자.”


커피숍의 주황색 조명 아래에 민영의 얼굴을 보니, 까칠한 피부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하루 종일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하던 현욱은 퀭한 눈의 민영의 얼굴에 마음이 누그러졌다.


현욱이 테이블 위에 통장과 카드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최대한 부드럽게 질문을 했다.


“이거 왜 금액이 그대로야?”


민영이는 흘낏 통장을 보았다.


“안 썼으니까.”


“그러니까. 왜? 심지어 내가 쓰면 채워 넣기도 했던데. 왜 그랬어?”


“오빠 돈 없잖아.”


주저함 없이 던져진 민영의 말에 현욱이는 갑자기 숨이 턱 하고 멎는 것 같았다. 민영이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건조하게 말을 이었다.


“오빠 제대하면 방도 구해야 하고, 이것저것 돈 쓸 일 많잖아. 그러니까 아낄 수 있을 때 아끼라고. 나야 용돈도 많이 받고 하니까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어. 요새 월세가 많이 올랐다고 하니까 도움될 거야. 고맙다고 안 해도 돼.”


“내가 거지야?"


현욱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민영이의 얼굴이 굳었다.


침묵이 날카롭게 둘 위로 내리 꽂혔다.


민영은 팔짱을 끼더니 등을 뒤로 기대고 다리를 꼬았다. 감정 없는 눈으로 현욱을 쳐다봤다. 현욱의 얼굴이 발개졌다.


“내가 거지냐고.”


현욱이가 다시 말했다. 민영은 현욱을 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뒤, 현욱이가 입술을 깨물며, 숨을 가쁘게 쉬며 말했다.


“민영아...... 나 돈 많이 벌 거야. 나 아직은 학생이고, 가난한 집안이라 빽도 없지만, 그래도 나 너 하나는 보란 듯이 잘 살게 할 자신 있어. 나 그렇게 보지 마. 그리고 진짜로, 나 그 정도는 돈 있어. 정말 여자한테 빌붙어 먹고 그러지 않아.”


현욱은 갑자기 추위를 느꼈다. 몸이 으스스 떨렸다. 현욱은 민영의 눈을 보았다. 잠깐 두 눈을 마주 보다, 현욱이가 고개를 떨궜다.


“미안하다......”


현욱이가 고개를 숙이고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휴우~”


민영이가 한숨을 쉬면서 팔짱을 푸르고 안경을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눈을 지그시 눌렀다.


“됐어. 암튼. 제대 축하해요. 그리고 오빠 마음 잘 알았어. 오해하지 말고 들어. 그 돈은 안 써도 되니까 안 쓴 거야. 쓸데없이 나한테 자존심 내세우지 말아요. 오늘은 그냥 좋은 모텔 가서 푹 잡시다. 나 시험도 얼마 안 남아서 너무 힘들어.”


현욱은 민영을 보았다. 현욱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야. 모텔은 아니고.... 암튼...... 그래 내 생각해줘서 고맙다. 오늘은 집에 가자. 너무 늦었고....... 나도 본가 가야 해. 엄마가 기다리고 있거든. 서산 갔다가 언제 올지 모르겠다....”


현욱은 횡설수설 말을 끊지 못했다. 민영은 테이블에 팔을 올리고 턱을 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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