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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나이트 May 10. 2016

지름길은 없다

“피디님, 오븐 없이 빵 굽는 방법 같은, 간편하게 음악 만드는 매뉴얼 없어요?”


또 또 또, 성실장이 이상한 안건을 냈다. 성실장은 아이디어는 많은데, 버려야 할 것도 그만큼 많은 게 흠이다.


“없습니다.”


내가 딱딱한 표정으로 말하자, 성실장은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다.


“학생들한테 그럼 어떻게 가르치나요? 어려운 것만 하나요? 쉬운 건 안 하나요? 흥!”


또 또 또, 말 그대로 실장이면서, 대표인 나에게 또 반항하는 하극상을 하려고 한다. 이래서 가족이랑은 일하는 게 아닌데 휴...


“여보, 초보 단계에서 쉬운 부분을 가르치긴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뭔가 쉬운 다른 방법이 있는 건 아니야.”


“그래도 뭔가 당신만의 노하우? 그런 거 없어? 요리 프로그램 보면 간단한 그런데 완전 좋은 팁 같은 거 알려주던지. 음악도 그런 거 있음 알려주면 좋잖아.”


“휴... 그런 거 없습니다. 요리는 집집마다 다들 어머니라는 요리사가 있잖아. 그러다 보니 약간 전문적인 내용이 들어가도 쉬운 팁이 되는 건데.

음악은 그렇지 않아. 쉬운 팁을 이해하려면 일단 화성학이나 하다못해 컴퓨터에 관련된 기본 지식이 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음악에 대한 그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은 전문가지, 그게 일반인이냐? 그리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팁이면 몰라도, 전문가를 대상으로 팁을 왜 줘? 전문가면 전문가답게 꼼꼼하게 정석으로 모든 것을 배워야지.

5살짜리 애들한테 음악의 흥미를 주기 위해 두드리고 때리면서 소리의 개념을 알려주는 정도가 아니고서야, 뭐 굳이 '간단하게 음악 만들어 보세요'라는 소리를 해.

널린 게 음악인데 그냥 들으면 되지, 뭣하러 만들라고 하냐고.

음악은 일단 기본 지식이나 장비부터, 다 취미로 하기가 좀 그래."


성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입이 툭 튀어나왔다.


“아! 뭐! 왜! 왜 그런 생각을 자꾸 하는데.”


“아니, 그래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 사람들에게 흥미를 줄 수 있는 읽을거리나, 영상이나 뭐 그런 걸 제공하면, 대중도 좋아하고, 이그나이트도 알리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근데 안된다니... 뭐... 어쩔 수 없지...”


나는 툴툴대는 성실장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돌아 하던 작업을 계속했다. 며칠 뒤면 또 새 노래가 나온다. 발매 직전까지 믹싱과 마스터링 등등을 끊임없이 점검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었다. 성실장을 달래 주거나 대꾸해줄 여유는 없었다.


“흥!”


코를 팽하니 풀고, 괜히 등 뒤에서 왔다 갔다 하는 아내를 느끼면서 (이럴 때면 직원 같지 않다. 그냥 답답한 마누라 같다) 한숨과 웃음이 동시에 나왔다.


나는 의자를 빙그르르 돌려 아내를 바라봤다.


“아이고 마누라님. 당신도 글쓰기 강의했었지요? 그때, 제자가 와서 꼼수부터 알려 달라고, 빨리 글 잘 쓰는 법 알려달라고 하면 해줄 말 있습니까?

뭐 굳이 꺼낸다면 없진 않겠지만요, 사실상 그런 방법 만으로만 정말 글을 잘 쓸 수 있게 되는 건 아니지요?

왜냐면, 결국 다 시간이 필요한 것이잖아요. 또 사실은, 그런 사람은 알려준다고 해도 어차피 못해요. 왜냐? 연습을 안 하니까. 알려주면 연습해야 하는데. 안 하거든. 그러니까 나는 알려주고 싶지도 않아요.

암튼, 지금 나 발매 날짜 맞추느라 바쁘니까. 당신은 가서 더 급한 일이나 하세요.

일단 지금 안건은 까인 거니까 다신 꺼내지 말구요."


말을 마친 나는 다시 의자를 돌려 모니터를 바라봤다.


“흥!” 아내는 할 말이 없어서인지, 마지막 삐침 소리와 함께, 자기 책상으로 건너갔다.


그래도 어째 한 번에 자기 책상에 갔다. 원래 아내는 한 번 고집을 부리면 3박 4일은 한 말 또 하고, 또 하는 성격인데 말이다.


아마 그새 아내를 설득하느라 내 말발이 늘었나 싶어 내심 뿌듯했다.


그런데 아내에게 컴퓨터로 카톡이 왔다.


[그럼, 전문가 입장에서 장비 리뷰나 프로그램이나 뭐 암튼 뭔가 곡을 만드는 과정을 좀 쓰던지, 찍던지 해봐요. 지름길이 아니면, 정식 길을 알려주면 되네.]


아이쿠...... 마누라는 어째 일하라고 데려왔더니, 나에게 일을 줄 생각만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시켰으니 해야겠지...


일이 또 늘었다.


그래도 마침 언젠가는 하고 싶은 일이었으니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글, 작성 : 이그나이트, 성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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