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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나이트 Aug 16. 2016

최고의 음악 장비

최신 장비를 구매하고 싶은 장비병 환자들에게

“어떤 장비가 제 수준에 맞는지,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음악으로 제일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이다.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항상 다음과 같다.


“가진 돈에 맞춰서 최대한 비싼 거 사던지. 아니면 돈에 맞는 것 중에 제일 예쁜 거 골라.”


내 대답에 대부분은 으잉?? 하는 표정을 짓곤 한다.


그리고는 투덜거린다.


“젠장 역시 음악도 비싼 장비일수록 좋은 거구나. 돈 없는 놈들은 음악도 못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말이다.  


정말 그럴까?






디지털 기기로 창작을 하는 작곡가들은 모두 장비병 환자일 것이다.


장비병 환자란 틈틈이 최신 장비 소식을 접하고, 구경할 수 있으면 구경 가고, 사용 후기를 보며 군침을 삼키다가 작업이 안 풀리는 날, 또는 동료의 최신 장비를 보고 와서는, 장비가 후져서 내 느낌이 표현이 안된다는 핑계로 신용카드를 들고 달려 나가는 사람들을 말한다.


아무래도 현대 음악 작업 특성상 창작 작업을 위해서는 컴퓨터 기기가 꼭 필요한데, 과도로 회를 뜨는 것과 최고급 사시미 칼로 회를 뜨는 것이 다른 것처럼, 보통은 좋은 장비일수록 내가 원하는 느낌을 구현해내기가 더 쉬운 것이 사실이기에 최신 장비를 추구하는 장비병에 걸리기가 쉽다.


진짜로 진실을 말하자면, 장비를 구입할 때는, 차를 구입하는 것처럼, 오래오래 만족하며 사용하려면 내 지갑 한도 내에서 최고로 무리를 하는 것이 좋긴 하다. 또는 돈이 없다면 그나마 예쁜 것이 만족도가 높을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예쁜 게 대부분 비싼 것은 안 비밀이다)


문제는 꼭! 비싼 장비를, 최신 장비를, 내 지불 능력의 최대치를 끌어내어 구매해야만 좋은 음악을 할 수 있는 가의 문제일 것이다.


또한

정말 돈이 없으면 음악 창작에 제한이 걸리는 것인가?



장비 업그레이드가 내 음악 수준의 업그레이드는 아니다


가끔, 아주 가끔, 최신 고가 장비 구입을 게임에서의 현질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게임에서 현금으로 아이템을 구매해서 실력을 확 늘리는 것처럼, 장비 구입으로 자신의 실력이 업그레이드되었다고 믿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헬스장에 10개월 무이자로 평생 회원권을 구매하면서 본인이 당장 모델 몸매가 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음악은 현질로 레벨업이 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사실 아무리 좋은 장비를 가지고 있어도 그 차이를 구분하는 귀를 가지지 못했다면, 또는 그 장비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그 장비가 아까울 뿐이다. 그러니, 음악 하는 사람이라면 사실 어떤 장비를 살지 고민할 시간에 내 실력을 높이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장비와 실력의 갭을 깨달은 것은 아주 예전에 후배를 통해서였다.


아주 오래전에 함께 일을 한 후배였는데, 만들어 온 사운드가 너무 좋았다. 마침 오랫동안 사용한 스피커에 질리기도 하고 더 좋은 스피커를 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할 때였다. 그 후배가 만들어 온 음악의 기가 막힌 사운드의 조화에 감동받아 무슨 스피커를 쓰는지 물어봤는데, 후배 왈, “20년 된, 인켈 전축 스피커요.”라고 하는 것이다.


잉? 전축 스피커? 게다가 20년? 그 정도면 사실 일반 청중도 듣자마자 낙후된 것을 느낄 수 있는 누가 봐도 후진 장비였다. 깜짝 놀라는 내게 후배가 하는 말을 듣고 무릎을 탁 쳤다.


“기본적으로 검증된 녹음실에서 듣는 사운드와 제 방에서 전축으로 듣는 사운드가 많이 다르잖아요. 몇 번 테스트한 결과 환경에 따른 차이를 알아낼 수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거 감안해서 작업해요. 지금은 형편이 안되니까 번거로워도 어쩔 수 없더라고요.”


그 순간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는 후배의 뒤통수에서 나는 재능인의 후광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장비를 뛰어넘는 재능이었다. 그리고 후배가 쓰는 스피커로 바꿔야지 하고 순간 마음먹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기본적인 장비만으로도 끝내주는 음악을 만들 수 있다


"그래도 맥북 프로 레티나 250만 원짜리 이상은 구입해야 그럴듯한 데모 시디는 만들 수 있다는데요."


"누가 그러디?"


"인터넷에서요. 그리고 저 같은 작곡가는 더더욱 섬세한 기능이 있어야 죽이는 사운드 잡아 낼 수 있다고 하던데요."


"돈 있으면 사. 비싼 거 사.


그런데 내가 장담하건대 넌 기본형으로 하나, 300만 원짜리 제일 비싼 노트북으로 하나 결과는 똑같을 거야. 노트북 성능이야 로직이나 큐베이스 움직일 수 있으면 다 똑같다고 보면 돼. 니가 지금 당장 혼자 100 트랙 넘는 작업까지 할 거 아니면 큰 상관없다니까.


작곡, 편곡할 때 좀 부족하다 싶은 사운드는 믹스, 마스터링에서 또 많이 잡을 수 있으니까 정말로 신경 안 써도 돼. 그러니까 돈이 없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기본만 준비해."


"기본형이 어느 정도예요?"


기본형이라... 작곡하는 사람마다 사실 기본형에 대한 기준은 다를 것이다. 여기서는 내 기준으로, 제자들에게 추천하는 기본 장비 세팅을 말하려고 한다.


랩탑 컴퓨터 (70만~90만 원), 로직이나 큐베이스 같은 메인 DAW 프로그램 (23~46만 원), 헤드폰(25만 원), 마스터 건반(20만 원)이다. '중고'로 장만한다면 모두 합쳐서 150만 원 내외일 것이다. (소프트웨어는 다연히 정품으로 구매하기로^^)


물론 백만 원이 넘는 단위가 적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이 금액으로 내 실력만 좋다면 최고급 스튜디오에 근접한 수준의 음악까지도 만들 수 있고, 최대 5년 이상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출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금액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컴퓨터 음악 제작 초기였던, 불과 15년 전만 하더라도 컴퓨터 하나에 몇 백만 원씩 하던 시기에 막노동으로 돈을 모아 컴퓨터와 악기를 구매했던 나를 생각하면, 꼰대 같지만, 그래도 음악을 하는 데 지금이 참 좋은 시대이긴 하다.


무엇보다. 이렇게 150만 원 정도로 핵심 장비를 구입하면 꽤 수준 높은 음악을 정말로 만들 수 있다.


의심하지 말고 생각해보라.


요즘 카메라가 워낙 좋아서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으로 전시회도 하는 시대 아닌가. 음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음악 관련의 핫이슈 키워드가 몇 년째 '홈레코딩'인 것이고 말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홈레코딩은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렇다고 장비병이 나쁜 것은 아니다. 아니, 음악적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장비병이 없으면 그것도 또 이상하다.


그만큼 관심이 있고, 추구하는 목표가 있다는 뜻일 테니까 말이다.


또 실력이 쌓였으면, 그 실력을 확인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된 장비로 확인도 해 봐야 할 것 아닌가.


그러니까. 혹 장비 관련 커뮤니티나, 중고 장터에서 저를 보게 되면 장비병 동지로서 반갑게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글, 작성 : 이그나이트, 성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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