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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사남 May 18. 2022

나보다는 당신을 위해서, 스테이크

같이 먹을 사람이 있어야 내가 행복해지는

"어떻게 구워드릴까요?"

"추천하시는 굽기가 있나요?"

"저희는 기본적으로 미디엄 웰 정도로 준비해 드립니다."

"그러면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오기 전부터 생각했던 멘트가 끝났다. 이제부터 잠시 기다리는 시간. 두둑한 통장 장고에 한껏 기분을 내러 온 날이다. 저 멀리 오픈 주방의 그릴에 불꽃이 피어오르지만, 내 시선은 앞에 있는 그녀에게로 향한다. 원체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보다는 오래간만에 '고기를 썰러' 왔다는 것 자체에 기분이 업되어 있다는 것이 티가 난다. 앞서 서빙된 수프를 한 스푼 떠먹으면서 음료나 사이드 메뉴 따위를 세세하게 신경 써주는 것으로 내 나의 다정함도 어필해야 한다. 함께 주문한 파스타 따위가 먼저 서빙되어 한껏 굶주린 우리의 뱃속을 달래준다. 그러나 매장의 조용하고 오붓한 분위기에 바삐 움직이려는 포크를 진정시키면서 상대에게 즐거운 얘기를 건네 이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하려 애를 쓴다. 이윽고 세련된 접시에 열기 모락모락 올라오는 근사한 고기 한 덩이가 몇몇 가니시에 얹혀 눈앞에 놓인다. 이제 세련된 손놀림을 보일 시간이다.


사실 그냥 고깃덩어리, 그런데 이제 연인을 곁들인

근사한 다이아몬드 모양 그릴 자국이 새겨진 쇠고기에 처음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대었던 것은 스물다섯의 끝무렵이었다. 대학 시절엔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이유로 여자를 멀리했기 때문이었다. 1학년 초에 고백했던 여자아이에게 대차게 차이기도 했고, 그 후 맘에 둔 이성 몇은 날 아예 남자로도 보지 않았던 데다, 학업과 학비를 벌기 위한 방과 후 생활이 몹시 빡빡해지면서 시간조차 여의치 않게 되었다.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자는 일이 드물다 보니 늘 피곤에 절어 있었고, 그래서 주변에 있었던 좋은 사람 몇몇을 알아보지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성적을 조금 포기하고 공부를 조금 덜 하고 일을 약간 줄이는 것으로 충분했을 텐데. 병신 새끼 내심 스테이크는 여자 친구랑 먹고 싶단 생각이 있었던 나는, 그렇게 여자 친구 없는 청춘의 마지막 학창생활을 학업으로만 채워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학논문을 앞두고, 쓸데없이 학업에 진심이었던 나는 그간 모아둔 돈과 남은 시간을 면밀히 따져본 뒤에야 생활에 여유를 만들었다. 그렇게 죽도록 공부하고도 중국어로 써야 하는 논문은 내게 너무 버거운 것이었기 때문에 연구를 하기 위한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짬짬이 남의 논문과 국내외의 자료를 뒤져가던 나날, 잠시 얇아졌던 나의 담벼락을 세 살 연하의 당돌한 후배가 깨부수고 들어왔다. 직선적인 호감 표현에 속 보이는 꿍꿍이를 보란 듯 들이미는 그녀에게 난 결국 항복했고, 반쯤 강요당한 고백의 끝에 애정으로 가득 찬 대학의 말미를 보냈다. 난 대학 졸업까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서 100일 정도 밀도 있는 연애를 하다가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를 해야 했는데, 스테이크는 입대 전 머리를 밀기 전에 모 유명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그녀와 함께 먹었다. 그녀에겐 부끄러워 말은 못 했지만,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었다. 여자 친구와 스테이크 먹기.


새카만 자국이 난 얌스톤 스테이크에 능숙한 칼질을 얹는다. 입이 크지 않은 친구라 적당한 두께와 크기로 나누어 우선 한 조각을 전하고, 그녀가 맛보는 동안 최대한 능숙한 척 고기를 썰었다. 흘끗 눈치를 보니, 나와 달리 스테이크를 처음 먹는 건 아닌 눈치다. 서울 아가씨니 당연한가. 하지만 나와 눈을 마주치니 맛있다며 살포시 웃는데 마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사실 나는 연어라던가 다른 바비큐 종류가 더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빠도 한 입 먹어보라며 포크에 찍어 내민 고기 한 조각만큼은 왜 그렇게 기억에 남는지. 말랑말랑 탄력 있고, 혓바닥과 헷갈릴 정도로 부드럽고, 탄 자국에서 나는 다소 강한 탄 향기까지도 맘에 들었다.


지금도 스테이크를 종종 먹을 때마다 생각한다. 이건 그냥 고기고, 솔직히 삼겹살이 더 맛있지 않은가 하고. 하지만 누가 애정 어린 눈으로 한 공간에 같이 있어주거나, 그저 근사한 사진 한 장을 위해 찾아와서 밝은 분위기라도 내뿜는 일행이 함께 있다면 스테이크는 그것으로 충분한 맛을 낸다고.



고기 교향곡에 어울리는 다양한 변주를, 가니시.


당돌했던 그녀는 찾아올 때와 마찬가지로 어느 날 갑자기 이별을 통보하고 내 곁을 떠났다. 중국과 한국으로 떨어져 그녀의 방학에만 만나는 연애는 쉽지 않았던 것이었다. 내 곁엔 남은 거라곤 스테이크의 추억뿐이라, 방황하는 한동안 혼자 스테이크나 그 비슷한 거라도 먹으러 다니곤 했다. 막 소집해제를 했으니 돈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었겠느냐마는, 잘 찾아보면 점심에 조금 애매한 부위로 싸게 내놓는 부챗살 스테이크라던가, 디너에서 먹었던 것보다 조그만 안심 스테이크, 안심이 아니고 쁘띠 필레 따위가 제법 그럴싸하게 내 앞에 펼쳐지곤 했다. 


아쉽게도 맛은 좀 애매했다. 소스 맛이 조금 아쉬운 날에는 조금 화가 난다고 할까. 빡빡한 주머니 사정을 쪼개어 나를 달래러 온 만큼 실망도 컸다. 그러다 어느 날, 스테이크 곁에 놓인 다른 곁들임들이 눈에 들어왔다. 흔하게는 아스파라거스 구운 것에 토마토, 매시드 포테이토. 찔끔찔끔 먹기는 하였으나 '고기 미만 잡'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라 큰 감흥은 없던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런 것을 '가니시'라고 부르고, 보통은 셰프가 여럿을 한꺼번에 먹으라고 조합한 것이라는 얘길 들은 기억이 났다. 


고기 한 점을 잘라내어, 소스를 머금은 매시드 포테이토를 듬뿍 얹고, 미리 잘라둔 아스파라거스 한 조각을 힘겹게 포크 끝에 꽂는다. 토마토까지는 무리니까 따로 입에 넣기로 하고 한 입. 토마토도 얼른 날름. 효과는 대단했다!


육즙이 다소 부족한 고기에 토마토의 쥬시함이 끼얹어진다. 조금 뻑뻑한 육질에 부드러운 감자와 소스가 스며든다. 질겅이는 고깃결에 아삭한 아스파라거스가 끼어들었다. 의외로 조화가 괜찮지 않은가? 하나만 더해 먹거나 따로따로 먹던 것과는 인상이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됐다. 조금 싸고 작은 부위라고 무시할 것이 아님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본격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세후 이백 초반도 월급이라고 씀씀이가 늘었다. 잘 먹고 돌아다니는 동안, 자랑은 아니지만 여자 친구도 여럿 만났다. 그들 모두와 두어 번은 분위기 내러 스테이크를 먹으러 다녔고, 근사한 고기를 썰어낸 다음에는 다양한 가니시를 즐겨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즈음부터 먹는 일에 관해서만큼은 정말 표현을 잘한다는 얘길 흔히 들었다. 여자 친구들은 대부분 내 이야기를 즐거워했고, 스테이크 아닌 다른 것이라도 좀 더 즐겁게, 다양하게 즐기기 위해 열심히 맛집을 찾아주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과한 업무에 치이기 시작하고, 야근이 연중 300일에 가까워지면서 그녀들은 또 떠나갔다. 그중 다수는 주님께서 당신의 전당(교회, 천국 말고)으로 데려가셨고, 둘은 바람을 피우다 걸렸다. 연애의 시작이나 기간과 관계없이 그들 모두에게 최선을 다했었기 때문에 내 마음은 서빙하다 실수한 접시처럼 와장창 깨어져나갔으나, 어찌어찌 잘 버텨나갔다. 그녀들은 내 인생이란 스테이크의 가니시 같은 것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향과 아삭함이 각별한 샬롯처럼 흔한 듯 남달랐던 그녀. 구워서 단맛을 끌어올린 레몬처럼 새콤달콤한 말을 속삭였던 그 애. 바삭하고 굵게 튀겨낸 감자튀김처럼 투박하지만 그래서 털털하고 매력적이었던 아이. 발사믹 소스를 머금은 샐러드처럼 고운 색의 옷을 잘 입던 그 누나. 설탕을 뿌려 구워낸 배추처럼 보기 드문 개성의 그 친구. 토마토처럼 탱글탱글한 얼굴을 잘 붉히던 부끄럼쟁이. 거기 바람 폈던 너희 두 년은 강렬한 것이 와사비 같았다, 특히 우리의 마지막이. 독하지만 좋아했었단 얘기다. 하지만 너희 둘은 행복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맛의 척도는 칼로리, 하지만 '맛있다'의 기준은 결국 취향


스테이크로 먹는 고기는 대부분 비슷비슷한 부위를 비슷한 품질로 가져다가 만드니, 그에 대한 감흥이 점차 감소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게다가 대한민국 남자의 사회생활이 길어지면 결국 고기는 제법 잘 굽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중에도 '집게 담당' 소리를 듣는 편이어서, 언젠가부터 집에서 직접 고기를 굽는 일이 늘어나게 됐다. 그렇게 고기를 직접 끊어다 먹기 시작하며 알게 된 것이 몇 가지 있다.


먼저, 고급 레스토랑에서 쓰는 상등품의 고기는 '나 혼자 먹을 만큼' 사다 먹기는 쉽지 않다는 거다. 그런 고기는 보통 좋은 값에 레스토랑에서 선점해뒀거나, 새벽같이 덩어리째 사갔기 때문이다. 자기 혼자 지방 다 먹은 것 같은 이기적인 마블링의 고깃덩이는 식당 가서 사 먹는 게 가장 쉬운 것이다. 좀 억울한 일이었다.


그다음으로는, 마블링이 적은 부위도 생각 이상으로 맛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토시살이나 설도가 그랬다. 횡격막에 붙은 토시는 강하게 색을 내서 쫄깃하게 구우면 칼로 써는 맛도 입으로 씹는 식감도 훌륭했다. 밑간만 잘했다면 어떤 소스나 가니시와도 좋은 궁합이었다. 여자 친구에게 먹여봤을 때 가장 좋았던 점은, 한 덩어리가 아니라 여러 조각으로 한꺼번에 나왔기 때문에 나눠먹기 편했다는 점일까. 고기가 여러 덩이라 플레이팅에 좀 더 재미가 있어 보였다. 설도는 또 어떤가. 얇게 썰어 불고기나 샤브 감으로도 좋지만, 다소 기름기가 있어 보인다면 두툼하게 썰어서 구운 다음 길쭉길쭉하게 썰어 먹으면 입이 즐거워진다. 입 안을 가득 채울 만큼 고기를 밀어 넣어도 가성비가 좋으니까. 가니시는 별것 없다. 구운 당근이나 양파, 버섯 따위. 소스는 다 필요 없고 불고기 소스에 설탕 더 넣고 졸인 것으로 충분하다. 레드와인 조금 들어가도 좋겠고. 그야말로 고기고기 한 맛이다.


물론 분위기를 낼 때는 좀 좋은 부위를 먹는다. 대한민국 사람은 거의 다 알듯, 채끝은 짜파게티에 고명으로나 쓰는 것이지만 스테이크로 구워내도 풍미와 식감 모두 훌륭하다. 좋은 부위는 크기도 널찍하니 사람의 시야를 압도하는 감도 있고. 부드러운 식감을 원한다면 단연 안심, 그중에도 샤토브리앙이겠지만 이건 아기 주먹만 한 것이 일이십만 원을 호가하니 어지간한 각오로는 쉽지 않다. 텐더로인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지. 만약 두툼한 등심을 쓴다면, 기왕이면 새우살이 두툼하게 붙은 쪽이다. 알등심만 먹어도 고소하고 맛있지만, 새우살의 기름기는 포기할 수가 없다. 얇은 등심? 스테이크로는 논외다. 등심 안심 다 붙은 포터하우스나 티본도 좋고, 아예 촉촉한 스테이크를 원한다면 로스트비프도 괜찮다. 파는 곳은 드물지만 통고기를 원하는 두께로 받아서 특제 소스를 흠뻑 끼얹은 다음 양껏 썰어먹는 기쁨은 겪어본 사람만 알지. 이 모두를 나와 함께 먹어본 사람은 단 한 명뿐인데, 그야말로 행복하게 살찌는 방법이라며 엄지를 척 추켜올렸다.


결국 맛과 풍미를 많이 머금는 것은 기름이 많은 쪽, 즉 칼로리가 높은 것이다. 하지만 저 고기 가득한 향연 속에서 나는 설도를 꽤나 즐기고, 사진 찍는 것에 물려버린 여자 친구는 로스트비프나 안심을 더 즐겁게 먹기도 했다. 왜 자꾸 여자 타령이냐면, 남자와 단 둘이 스테이크를 먹은 경우는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남자의 감상에는 관심이 없다. 결국 '맛있다!'를 외치게 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 정하는 것이었다. 혹은 누구와 함께 먹느냐라거나.



스테이크는 먹는 생각만 해도 즐겁다. 색다른 가니시가 얹혀 나온다면 어딘가에 표시해뒀다가 기회가 닿는다면 가볼 생각이 가득하다. 홀그레인 머스터드(씨겨자)는 언제나 옳고, 와사비는 겨자와는 다른 방향성으로 고기의 맛을 풍성하게 만든다. 그릴을 잘하는 가게에서 가니시로 버섯이 나온다면, 냉장고 속 버섯볶음이 맨날 남아서 버려지게 되는 건 사실 어머니의 요리 솜씨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게 잘 좀 볶지 그랬어요, 악! 살려주세요. 구운 레몬이나 귤, 파인애플, 수박도 전부 스테이크와 함께 겪어봤는데, 식초와 와인 기반의 신 맛과는 다른 상큼함으로 식사를 즐겁게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앞서, 테이블의 맞은편에 파트너가 있는 것이, 기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인 것이 압도적으로 행복해지는 음식이 스테이크인 것 같다.


종업원이 굽기를 묻고, 우리의 취향에 맞게 주문을 넣는다.

균일하게 색이 난 표면 안에 핏기를 머금은 듯한 레어와 미디엄 레어.

속살이 핑크 핑크하고 부드러운 미디엄.

씹는 느낌이 강해지지만 오히려 고소해지는 미디엄 웰던.

고기의 잡내가 사라지고 강렬한 육향으로 화하는 웰던.


고기가 충분이 레스팅 되어 서빙될 때까지 즐거운 대화로 기다림을 채우고, 머릿속으로는 제일 맛있는 부위를 건네주겠다고 마음먹는다. 따뜻하게 데워진 접시 위, 화려한 가니시가 고깃덩어리를 감싸고, 무심히 우리 앞에 툭 놓인다. 


자, 내 맞은편을 채워준 당신을 위해,  이제 세련된 손놀림을 보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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