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상한 말을 들으면 단답을 하는 버릇이 있어
여름의 끝물. 장마가 온다던 시기도 한참 지나, 그 망할 열돔 현상인지 뭔지가 사라지고 그간 밀린 폭풍우가 쏟아지던 날 오전이었다. 비 오는 날이면 늘 그랬듯 '에헤이 오늘 장사 조졌구나~' 하며 계산대 아래 쭈그려 앉아 쉬고 있을 때였다.
딸랑딸랑-
문에 달아 둔 종이 울렸다. 단발의 여자 손님이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들고 들어왔다. 내 기계적인 인사에 별 대꾸도 없이 키오스크를 툭툭 건드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했다. 그리고는 터벅터벅 뒷문을 향해 걸어갔다. 화장실 가려면 열쇠 가져가라는 내 말은 무시한 채로. 직원의 말 따위 귓구멍에 잘 안 집어넣는 손님은 천지삐까리라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뒤통수에 대고 크게 소리치면 불친절하다는 소리나 나오고 말이지. 어차피 화장실 앞에서 문 덜컹덜컹 흔들어본 다음에 돌아올 것이었다.
또다시 딸랑딸랑-. 단골손님들이 하나 둘 들어오고 나갔다. 잠깐 바쁘게 움직이고 있으려니, 생각보다 늦게 그녀가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돌아왔을 땐 이미 커피가 완성되어 픽업대에 대기 중이었다. 봉투에 담아드릴까 물어보려는데, 날 빤히 바라보더니 그녀가 대뜸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화장실 개방해 놓는 게 어떠세요?"
나 먹사남, 이상한 말을 들으면 아주아주 단호하게, 부연설명조차 없이 단답을 하는 버릇이 있다. 뇌가 정지해 버려서 고차원적인 언어활동을 수행할 수 없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러했다.
"안됩니다."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 카페의 화장실은, 카페 외부에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열어둘 수가 없다. 사실 비밀번호조차 없이 방치해 둔 적이 있는데, 체감상 이틀째에 이 카페 화장실은 24시간 활짝 열려 있다고 온 동네에 소문이 났던 것 같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청소를 해도, 새벽녘에 누군가가 와서 토해놓거나, 매우 이상한 각도로 똥을 변기에 펴 바르고 가거나 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낮에는 수시로 휴지를 털렸다.
한 번은 새벽 수영을 다녀와 가게에 도착하니 물소리가 나서 화장실을 열어보니 노숙자로 보이는 사람이 릴호스를 연결해서 세면대에 비치한 비누로 샤워하는 광경까지 보고 말았다. 비누는 바로 내다 버렸고, 그 이후엔 비밀번호를 걸어두고 가게 손님들이 번호 확인 후에 이용하도록 했는데, 그마저도 외워서 저녁에 술 처먹은 다음 새벽에 화장실을 이용하는 자들이 나오는 것이었다. 어휴 시발 진짜.
그래서 작금에는 커다란 부채에 손가락 반 만한 키카드를 달아놓았다. 저걸 들고 다니면 누가 봐도 저 사람 화장실 가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눈앞에서 '나 기분 상함. 졸라 상함.'이란 표정이 되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애써 안면 근육에 힘을 줘 보지만 이미 삔또가 나갔음이 확실했다. 아, 이 패턴 흔하다 흔해. 이제 소리 지르겠구먼.
"아 젊은 사람이 말을 기분 나쁘게 하네! 공익 몰라 공익!? 열어두면 여러 사람한테 도움 되고 좋잖아!"
이 공익레이디께서는 아무리 봐도 사익 추구 중이셨다. 내가 또 내 화장실에 똥칠하는 꼴을 보라고? 삿대질까지 하려 하기에 조금 세게 말해볼까 생각하는 찰나였다.
"그럼 당신 집 화장실이나 활짝 열어놔. 일하는 사장 귀찮게 하지 말고."
아, 나의 친애하는 단골 어르신. 당신께선 사이다패스셨군요! 간지 박살나네!
백발 성성한 영감님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툭 찌르니 공익레이디가 치명타를 입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인지, 공익운동가 정신인지, 턱에 힘을 팍 주고 이젠 영감님에게 뭐라 대꾸하려는 모습이었다.
나는 프로답게, 기계적으로 말을 한마디 건넸다.
"커피 나왔습니다. 봉투에 담아드릴까요?"
"됐어욧!!"
그리고 카페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밖엔 폭풍우를 동반한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공익레이디의 한 손엔 아직도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이 들려 있다. 그리고 그녀가 주문한 커피는 두 잔.
난 본능이 시키는 대로, 손님을 배웅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녀는 기어코 봉투를 달라고 하지 않았다. 낑낑대며 왼팔에 커피 두 잔을 끌어안고, 핸드백까지 손목에 건 채로 폭풍 속으로 나아가더라. 나는 사이다 영감님과 기꺼운 마음으로 그 뒤통수를 구경하며 잠시 뒷담화를 나누었고, 어르신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포인트 열 배 적립을 슬쩍 넣어드렸다.
장사는 조졌고 하늘은 우중충한데, 마음만은 이상하게 쾌청했다.